‘깡촌’의 시골에서 저녁 먹고 방을 뒹굴 때, 밤은 왜 그렇게 길었던가. 그때의 어둠은 또 왜 그리 새까맣던가. 생쌀 먹으면 내 배가 아프단다, 어머니 말씀하셨지만 흔들리는 호롱불 아래 놀다가 몰래 한 줌 씹어먹기도 했다. 어쩌다 비닐장판을 들추어 바짝 마른 호박씨라도 하나 건지면 입이 벌어졌다. 좀체 잠은 아니 오고 까까머리 사촌들과 이런저런 놀이도 시들해질 때 형이 꿀밤 세 대를 걸고 내기를 걸어왔다. 비료포대로 도배한 벽에 쥐들이 부스럭거리는 낮은 천장. 좁아도 몸이 작아서 괜찮은 방의 구석에 짚으로 만든 쌀가마니가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 옆에 어머니의 손때 묻은 콩나무 시루가 서 있었다. 야, 저 시루에 발바닥 둘을 포개면 누가 더 클까? 그야 뭐 재보나마나 시루라고 말했다가 이마를 야무지게 ..
지난주 인천 을왕리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가해자들을 향해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음주운전도 문제였지만 사고 직후 보인 태도가 더 큰 분노를 자아냈다. 영상을 보면 가해자들은 피해자를 내버려둔 채 차량 안에 머물렀다. 구급차가 도착하고 나서야 바깥에 나왔는데 이때 변호사와 통화하고 있었다고 한다. 구급차를 부른 것은 이들이 아니었다. 사건의 진상은 조사가 끝나야 알 수 있겠지만, 가해자가 119가 아닌 변호사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은 자못 충격적이다. 내게는 이 행동이 하나의 징후처럼 보인다. 가해자들이 차량에서 바로 나오지 못한 것은 사고를 낸 충격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후 맨 먼저 떠올린 생각이 ‘사람을 살려야 한다’가 아니라 ‘형량을 줄여야 한다’였다는 건 납득하기 쉽지 않다..
지난겨울,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청계산으로 번개산행을 했다. 약수터에서 뜨거운 차를 마시는데 누가 지나가는 바람에 말을 얹었다. 집을 나오기는 싫은데 산에 오면 어쩌면 이리도 좋죠. 눈 속에서는 소리가 더 잘 들린다. 우리 일행은 물론 지나가는 이들도 모두 맞다는 표정을 지어주었다. 산은 평범한 말도 이처럼 참 근사하게 만들어준다. 제법 오래전, 꽃에 입문하고 백두산에 간 적이 있었다. 며칠 함께 뒹군 룸메이트가 마지막 밤에 불쑥 물었다. 산을 무어라 생각하세요. 꽃에 한창 꽂혀 있느라 마음도 무척 알록달록했던 시절. 그저 밥상 위에 반찬처럼 내가 찾고자 하는 꽃들이 피어난 장소 이상은 생각하지 못하는 터였다. 겨우 어느 시 구절을 빌려 눈앞의 커다란 삼각형이라고 얼버무리는데 그는 정확한 답을 갖고 있..
일부 교회가 성경적 근거도 없이 대면 예배만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反)정부’를 실천하려는 것도 헌금 수납을 위한 것도 아니라면, 혹시 목사님들에게 거울이 필요해서는 아닐까. 버지니아 울프는 에서 남자들은 자신을 두 배 더 크게 비춰주는 여자라는 거울 덕분에 최악의 순간에도 자기애를 유지할 수 있다고 냉소했다. 어떤 목사들은 신도라는 거울 앞에서, 두 배가 아니라 신만큼이나 거대해진 자신을 비춰보는 만족감을 누려왔을 것이다. 아멘, 언제나 당신이 옳다는 외침에 둘러싸여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했으리라. 감히 정부가 행정명령 따위로 제국의 내정을 간섭하는 것이 불쾌했으리라. 아마도 그런 교회일수록 카리스마적인 목사가 있을 것이다. 그런 것도 카리스마라면 말이다. 아니, 그것만큼 카리스마와 거리가 먼..
지리산 둘레길을 돌 때, 한 폭 끊어 액자로 걸어두고 싶은 풍경 하나가 있었다. 호젓한 길은 길게 이어지고 굽어지며 휘돌아 넘어간다. 길에는 많은 것이 있다. 누가 보낸 풀들이기에 이리도 정교한가. 각자 제자리를 독실하게 지키고 있는 고유명사들, 아직 공부가 턱없이 모자라지만 그래도 꽃동무들한테 귀동냥 한번 하는 것도 어디인가. 은밀하고 미세한 것들이 마음의 한바탕을 휘젓고 간다. 저마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들로 휘황한 이 광경에도 무시무시한 일은 벌어지고 있다. 산초나무 가지의 거미줄엔 바람을 따라가다 덜컥 걸려든 나비의 흔적만 남았다. 길섶에서 기웃거리는 기름새 줄기마다 끈적한 기름기가 흥건하다. 벼과의 이 상냥한 풀이 식충식물일 리야 없겠지만 모기 뒷다리보다 작은 곤충들이 애꿎게 걸려들었구나. 이런..
코로나19 확진자가 연일 세 자릿수를 기록 중이다. 대유행이다. 방역당국은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를 2.5단계로 상향조정했다. 전공의들이 파업을 시작했다. 의대생들은 의사국가고시를 거부한다고 선언했고, 대한의사협회는 3차 총파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정부는 협상을 요구함과 동시에 업무복귀명령을 내렸다. 고소득 전문직의 파업이라는 점에서 여론의 지지를 받기는 쉽지 않다. 여러모로 아슬아슬하다. 의료계와 정부가 갈등을 빚은 주요 원인은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 정원 확대 문제다. 그리고 그 핵심 주제에 지방의 의료 문제가 있다. 정부는 지방의 필수과(내과, 일반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흉부외과, 응급의학과 등) 인력 부족을 근거로 정책을 펼치려 하고, 의료계는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 정원 확대만으로 지방의 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진영논리다. 편 가르기를 넘어서 극도의 적개심을 보인다.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자기 진영의 유불리에만 신경을 쓴다. 모두의 안전이 걸린 코로나19 대책과 관련해서도 상대편의 책임을 부각시키고 윽박지르는 데 여념이 없다. 남 탓하기, 온라인에서 집단으로 몰려가서 인신공격 퍼붓기가 만연해 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2017년 4월3일 저녁. 이제 막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된 문재인 후보는 경선 과정에서 지지자들이 상대 후보 측에 18원의 후원금과 함께 문자폭탄을 보내고 비방하는 댓글을 조직적으로 올린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그런 일들은)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
하루를 건너는 게 참 아슬아슬하다. 뉴스도 인터넷의 바다에서 돛단배 타고 출렁출렁 돌아다니며 챙겨본다. 홍수처럼 넘실대는 제목 중의 하나는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합천에서 떠내려간 소…” 기록적인 장마 뒤끝이기에 무슨 사정인 줄 쉽게 짐작이 갔다. 클릭하는 그 짧은 시간, 말줄임표에 숨어 있는 소의 운명에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다행이다, 합천의 소가 80㎞ 떨어진 밀양에서 무사히 발견되었단다! 합천은 내 고향 거창과 지척이다. 초등학교 3학년, 버스 타고 부산으로 떠날 때 합천과 밀양은 징검다리처럼 거치는 동네였다. 소의 행로난에 내 어린 시절의 부산행과 겹치면서 시골에서 소먹이하던 시절이 소환되었다. 어느 날 느닷없는 소나기에 송아지를 잃어버렸다. 다음날 어미소의 낮은 울음소리를 앞장세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