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주간 여성노동 문제에 대한 취재를 자원해 ‘유리천장 박살 프로젝트’ 기사를 작성했다. 매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 유리천장 지수 실태와 최악의 성별 임금격차에 부끄럽다는 논평을 하는 것이 지겨웠다. 원인이 뭔지, 되풀이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알고 싶었다. D데이는 여성가족부의 상장법인 성별 임원 현황 조사 발표일로 잡았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상장기업 임원 중 여성은 5.2%로,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유리천장 지수’ 항목 중 하나로 발표하는 OECD 회원국의 여성 임원 비율 평균(25.6%)의 5분의 1 수준이었다. OECD 최악이라는 불명예를 벗지 못하고 있는 성별 임금격차 취재 결과는 더 절망적이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13년 ‘동일임금 가이드라인’을 통해..
설마설마했을 것이다. 올 초부터 여권 인사들은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거취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여권 후보로 4·7 보궐선거 서울시장에 출마해달라는 제의를 거부한 그가 야권 주자로 대선판에 뛰어들 것이란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이 반문재인을 내건 정치행보를 예고한 터에 김 전 부총리까지 이탈하면 여권의 체면은 말이 아니게 된다.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5월 “저는 문재인 정부 초대 부총리” 등 김 전 부총리가 했다는 말을 공개한 것도 그를 묶어놓으려는 의도가 있었을 터다. 그러나 설마설마는 현실이 됐다. 김 전 부총리는 윤석열, 최재형과 다른 길을 가겠다면서도 정치교체를 이야기하며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그는 소득주도성장, 최저..
2위 은메달보다 3위 동메달 수상자가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는 건 알려진 얘기다. 은메달 선수는 금메달리스트와 비교해 상심하고 동메달 선수는 4위와 비교해 안도하는 심리가 작용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일부 종목에선 결승전, 3·4위전 등 마지막 경기를 지고 끝내는 것과 이기고 끝내는 것이 성취감의 차이를 부른다고도 한다. 4위는 당연히, 좋을 게 없다. 누구보다 더 아깝고 분할 수 있다. “난 솔직히, 준호가 맞는 것보다 4등 하는 게 더 무서워.” 엄마는 온몸에 피멍이 든 열두살 아이를 보고도 이렇게 말한다. 2015년 영화 의 한 장면이다. 수영대회에 나가 줄곧 4등만 하는 아이를 닦달하던 엄마. 특단의 조치로 왕년 국가대표 출신 코치를 새로 붙인다. 그런데 코치는 폭력과 체벌로 아이를 다그친다. ..
“우리는 전쟁 상황에 있지 않다. 이번 팬데믹으로 한 사람의 승조원도 불필요하게 잃을 수 없다.” 지난해 3월31일 언론에 공개된 e메일이 미국을 발칵 뒤집었다. 발신인은 미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 함장 브렛 크로지어 대령이었다. 수신인은 그의 해군 상관과 동료 10명이었다. 당시 남중국해와 필리핀해에서 작전 중이던 루스벨트호는 코로나19에 뚫렸다. 승조원 약 5000명 중 확진자가 100명에 이르는 상황이었다. 확산 방지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때였다. 그래서 크로지어 함장은 3월30일 승조원 대부분을 항모에서 하선시킬 것을 요청하는 e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e메일이 하루 만에 공개되자 파문이 일었다. 수뇌부는 그의 요청을 거부했다. 언론 보도 이틀 뒤에는 그의 지휘권을 박탈했다. 그가 하선..
모멸감. 업신여김과 깔봄을 당하여 느끼는 수치스러운 느낌. 지난달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이후 벌어지는 일들을 쫓는 내내 떼어낼 수 없었던 감정은 이 세 글자였다. 어제까지 일하던 직원의 죽음을 한사코 모른 체하려는 그 조직의 모습에, 고인이 생전 느꼈을 감정이 어땠을지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난달 26일 아침, 남편과 함께 출근했던 59세 서울대 청소노동자는 퇴근하지 못했다. 막내딸과의 통화가 마지막이었다. 동료들은 당시 힘들고 멍한 고인의 얼굴을 기억했다. 평소 별다른 지병 없이 건강했던 그는 관악학생생활관(서울대 925동·기숙사)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건이 외부로 알려진 건 사망 열흘 만이었다. 가족을 잃은 슬픔과 충격이 가시지도 않은 유족들이 시민들 앞에 섰다. 지난 7일 기..
잽보다 훅이다. 구석구석을 찌르는 유효타로 차곡차곡 점수를 쌓는 것보다 강력한 한방의 타격이 더 큰 법이다. 권투를 제외하고 정치만큼 이 말이 잘 맞아떨어지는 영역이 있을까. 불굴의 도전정신, 정치감각, 역경의 인생 스토리 등은 정치의 세계에서 강력한 훅이 된다. ‘훅의 정치’의 반대편에는 ‘잽의 정치’가 있다. 정책 내공, 일관된 삶의 궤적과 메시지 등을 통해 조용히 내공을 쌓아나가는 정치인들이 이 범주에 포함된다. ‘알고 보면 좋은데 안 뜬다’ ‘저평가 우량주’…. 애석하게도 대다수 잽의 정치인들은 우량주였음에도 저평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헌정사에 족적을 남긴 대다수는 훅의 정치인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구도·기득권 타파라는 강렬한 메시지와 이에 걸맞은 정치행보를 했고, 이..
“그에게 입 벌린 돈주머니를 가지고 와주면 자객은 칼을, 그러니까 펜을 칼집에 다시 집어넣는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 짐작한 대로, 기자다. 1800년대 프랑스의 기자다. 어느 출판사에 돈을 요구했다 거절당한 그는 전날 새 책 소개 기사를 이렇게 썼다. “부정확하게 말하거나 쓰는 기술을 알려주는 작은 책인데, 행인들을 웃겼다는 이유로 비싼 돈 주고 사야 한다.” 당황한 출판사가 돈을 건네자 그는 이튿날 바로 이런 기사를 내보냈다고 한다. “우리 시대 최고 지성들이 쓴 이 책 말고 어찌 다른 것을 읽겠는가….” 웃기고 황당한 일인데 왠지 씁쓸하다. 두 세기 전 일이 요즘 얘기 같아서다. 자객뿐이 아니다. 허풍꾼, 낚시꾼, 아첨꾼, 게릴라에다 공염불을 하는 자, 직에 연연하는 자, 하나만 우려먹는 자 등등..
세계 최고 부자 제프 베이조스가 이달 20일 우주여행을 떠난다. 자신의 우주탐사 업체 블루오리진이 만든 우주관광 로켓 ‘뉴 셰퍼드’를 타고 상공 100㎞ 부근에서 11분간 머물다 돌아올 계획이다. 성공하면 또 하나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인류가 달에 첫발을 디딘 지 52주년이 되는 날, 우주관광시대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영국의 ‘괴짜 억만장자’ 리처드 브랜슨이 선수를 칠 것이라는 말도 있어 장담할 순 없다. 그런 그에게 저주가 날아들었다. 우주로 간 베이조스가 지구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자는 ‘지구 귀환 반대’ 청원이다. 지지자들은 베이조스를 “전 세계를 지배하려고 작심한 사악한 지배자”라며 “억만장자는 지구 또는 우주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물론 실현 가능성은 ‘0’이다. 다만 억만장자를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