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열흘 ‘성추행’을 둘러싸고 상상 이상의 일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지난달 25일 정의당 김종철 대표의 장혜영 의원 성추행 발표와 사퇴, 같은 날 국가인권위원회의 박원순 전 시장 성희롱 인정 결론, 이튿날부터 더불어민주당과 여성위원회와 남인순 의원, 이낙연 대표의 연이은 사과 그리고 오거돈 전 부산시장 기소까지. 이로 희미해져가던 오는 4월 보궐선거의 근원이 열흘간 반짝 조명됐다. 그리고 다시 부동산과 대북 원전 지원 의혹 등의 이슈에 묻혀가고 있다. 지난해 7월 박원순 시장 사망 때도 마찬가지였다. 충격은 컸지만, 진상규명이 덜 됐다는 이유로 후속 논의나 조치 없이 묻혀 있다가 선거용으로 재소환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민주당은 서울·부산 시장 후보를 내려 당헌을 바꾸면서 ‘젠더 폭력신고 상담센터..
일라이자(Eliza)는 1966년 미국 MIT 컴퓨터공학자 요제프 바이첸바움이 상담 치료를 목적으로 만든 채팅 프로그램(챗봇)의 이름이다. 사용자가 채팅창에 적은 말의 일부를 추출해 되묻는 식으로 단순하게 설계된 초보 문답기계 수준이었다. 척척박사 같은 요즘 인공지능(AI)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사용자들의 반응이 묘하게 나타났다. 상당수가 일라이자를 진짜 의사라 믿고, 실제 위안을 받았다고 했다. 혹자는 사적인 얘기를 털어놓다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거기서 ‘일라이자 효과’라는 말이 나왔다. 사람들이 컴퓨터나 인공지능의 행위를 무의식적으로 의인화하는 현상을 뜻한다. 간단히 말하면 기계를 사람처럼 느끼는 경향이다. 인간은 공감할 수 있다고 여겨지면 무생물인 기계나 프로그램과도 소통에 나서는 존..
새해 교육계의 가장 큰 이슈는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될 공산이 크다. 여당이 지난해 총선에서 21대 국회 ‘국교위법’ 최우선 처리 공약을 밝힌 후 현재 국회엔 국교위 설치법 4개가 의원 입법으로 발의돼 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신년사에서 국교위 출범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상반기 관련 법안 통과 후 연내 출범에 별 걸림돌이 없어 보인다. 국교위는 교육정책이 정권에 휘둘려 왔다는 비판에 따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중립적이고, 일관성 있는 중장기 교육정책을 수립하자는 기구다. 2001년 보수 성향 교육단체인 한국교총이 초정권적 국교위를 처음 제안하고 이듬해 이회창 후보의 공약을 시작으로 대선 때마다 등장했다. 2017년엔 문재인, 홍준표, 유승민, 안철수, 심상정 등 주요 후보 모두..
북한 보위사령부 직파 간첩 누명을 썼다가 지난 25일 대법원 판결로 7년 만에 무죄가 확정된 홍강철씨는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받은 경험을 묻자 “1주일이 아니라 하루도 버티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가 갇힌 독방은 안에서는 열 수 없는 구조였고, 폐쇄회로(CC)TV가 24시간 감시했다. 구치소에 머물며 검찰에 가서 조사받는 방식과 달리, 생활공간과 조사공간이 동일할 경우 피조사자는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한다. 실상이 폭로되면서 조사기간이 단축되고, 독방 수용은 폐지됐다. 국가정보원법 개정으로 대공수사권도 3년 뒤 경찰로 이관된다. 하지만 국정원이 탈북인들을 조사하는 기본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홍씨 변호인인 장경욱 변호사는 “이대로라면 국정원의 간첩 생산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산 넘고 물 건너 한참을 지나갔는데 도로 제자리다. 코로나19를 다 함께 겪은 2020년이 그렇다. 1월20일 국내 첫 확진자 발생 후 2월 1차 대유행, 5월 연휴 고비 넘긴 뒤 8월 이후 가을 2차 대유행. 그리고 연말인 지금, 역대 최다 확진자·사망자 수치를 연일 갈아치우는 겨울 3차 대유행에 직면해 있다. 계절을 한 바퀴 돌아 다시 겨울이 왔는데 코로나19는 여전하다. 수그러들기는커녕 더 무섭게 세상을 휩쓸고 있다. 두려운 점은 2020년과 똑같은 1년이 2021년에도 되풀이될 것이라는 예감이다. 도돌이표의 출발선에 다시 선 느낌이다. 모두 안간힘을 다해 코로나19 고통을 견디고 버티면서 이 몹쓸 감염병이 사라질 날을 고대했던 희망이 저만치 달아난 것이라 허망하다. 이제는 섣불리 코로나19 종식을..
거대여당 더불어민주당의 21대 첫 정기국회 ‘입법 잔치’가 끝났다. 민주당은 다수의 힘으로 야당의 필리버스터까지 무력화시키며 권력기관 개혁 3법 등 130개 법안을 줄줄이 통과시켰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크고 가장 많은 개혁을 이뤄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이 대표의 평가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노동자가 일하다 부서져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공동체의 윤리강령을 만들자는 기본적인 요구조차 외면하는 개혁에 박수를 보낼 수는 없다. 한국의 산업재해 현실은 부끄러운 수준을 넘어 참담하다. 산재 사망자 수는 23년 중 2년만 빼고 매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많았다. 하루 평균 6명이 일을 하다 죽는다. 매일 노동자들이 기계에 끼여 죽고, 떨어져 죽고, 불에 ..
초등학생 20만여명의 방과후 돌봄을 담당하는 전국 초등돌봄전담사들이 오는 8~9일 2차 파업을 예고해 학부모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코로나19로 전업주부들의 자녀돌봄 시간은 하루 12시간38분으로, 종전보다 3시간30분이 늘었다고 한다. 발달장애 아동의 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부모 없이 끼니를 챙기려던 아이들이 숨지는 사례까지 발생하며 코로나 돌봄공백은 턱밑까지 차올랐다. 한편에선 보건의료·돌봄 노동자, 택배기사 등 ‘필수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범정부 태스크포스가 구성됐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돌봄은 더 자주 더 긴급하게 호출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기사들을 보면 심란해진다. 돌봄이 그저 고통스러운 노동이나 최대한 길게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야 할 짐처럼 느껴져서다. 돌봄의 대상자들이나 맡기는..
이제 마스크는 피부가 됐다. 적어도 지난 6개월 동안,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마스크 안 쓴 사람을 못 봤다. 턱만 쓰는 턱스크, 코만 가리는 코스크, 엉성하게 쓰는 엉스크도 드물었다. 마스크 없는 외출을 상상할 수 없는 세상. 코로나19가 바꿔놓은 일상이다. 미디어 측면에서 보면, 유튜브를 마스크에 비견할 수 있다. 유튜브가 뜬 지는 이미 오래지만 비대면·디지털·스트리밍이 부각한 코로나 시대를 지내며 일상에 더 밀착했다. 유튜브를 통한 생중계 결혼식·라이브 콘서트·요리 예능 TV 프로그램이 익숙해졌다. 전문업체 분석에 따르면 지난 9월 국내 유튜브 앱 이용 시간은 531억분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 늘어났고 카카오·네이버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월간 이용자 수는 4319만명으로 전 국민의 83%에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