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니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잦다. 나는 유물론자로서, 이런 기분은 해가 짧아지고 일조량이 줄어 호르몬 분비에 변화가 생긴 탓이라고 간단히 믿는 편이지만, 요즘 들어 아는 사람의 부고나 암 선고 소식을 자주 접한 탓도 있는 듯하다. 이런 소식이 예전과 달리 범상하게 들리지 않는 것은 이제 나도 노년이 머지않은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이 진리에 한마디를 덧붙여야 할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병원에서 죽는다. 국민 10명 중 8명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니, 요즘의 죽음을 더 자세히 정의하는 게 좋겠다. 우리는 누구나 병원에서 아플 대로 아프다가 죽는다. 집에서 어르신의 상을 치른 친구가 죽음의 순간을 병원에서 맞이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해..
서울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지난달 도시 한복판에서 여성 역무원이 남자 동료에게 스토킹당하다 결국 무참히 살해당했다. 현 여성가족부 장관은 극구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이 범죄는 명백히 젠더 관련 폭력이며 여성혐오와 무관하지 않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정말 살아남은 여성들은 운이 좋았을 뿐인가. 현재까지도 우리 사회의 많은 여성들은 집 밖에서 불안에 떨며 조심조심 보통의 하루를 살아간다. 거리에서 일터에서 지하철에서 마음 졸인 여자들이 어디 한둘인가. 그럼 집 안은 안전한가. 그럴 리가! 일상에서 은밀하게 친밀하게 폭력이 자행되는 닫힌 공간, 집 그리고 여성의 공포. 그래서 수많은 문학 작품에서 집 안에 갇혀 미치거나 자살하는 여자들이 등장하는 것일까. 샬럿 브론테의 의 ‘다락방의 미친 여..
지난주 제11회 서울국제작가축제가 막을 내렸다. 축제의 대주제는 ‘월담’이었는데, 주제를 접하자마자 떠오른 것은 “담을 넘다”라는 의미였다. 축제 참가 섭외 전화를 받았을 때 산책하던 나는 주위를 올려다보며 막연히 어떤 담을 넘어야 하나 생각했다. 넘기 위해서는 먼저 담을 마주해야 했다. 우선적으로 혐오와 차별, 부조리 등으로 켜켜이 쌓인 사회적인 담을 직면해야 했다. 아주 오래되고 굳건한 담, 혼자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 담. 그 담 앞에서 고개가 서서히 수그러들었다. 개인적으로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과 나태함이라는 이름의 담을 넘어야 했다. 쓰는 습관이 익숙해질 때쯤 어김없이 찾아오는 담인데, ‘이만하면 됐다’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머릿속에서 기분 나..
친구의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잔뜩 긴장을 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동네에서 제일 친했던 우리였지만, 이제 친구에겐 ‘용돈을 올려주어야 하는 이유’를 종이에 써서 제출하는 아들과, 공원 세 바퀴를 혼자 까르르 웃으며 뛰어다닌다는 작은딸 하나가 있으니 대화의 주제도 예전과는 달라져야 할 것 같았다. 괜히 육아 브이로그와 양육의 고통을 호소하는 글들을 찾아보고,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검색하며 어색해질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집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이제 막 세 살이 된 친구의 딸이 함성을 지르며 뛰어나와 나를 반겼다. 과연 공원을 정복한 어린이다웠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오는 길에 검색했던 만화 캐릭터 이름을 기억하려 애쓰고 있는데 옆에 있던 친구가 대뜸 “우리 엄마가 ..
‘강연의 시대’라 할 만큼 곳곳에서 강연회가 열리고, 많은 독서모임에서 끊임없이 책을 읽고, 클릭 몇 번으로 필요한 동영상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이 시대에 왜 우리 사회의 교양과 지적 수준은 날로 쇠퇴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져본다. 지난번 “언어소통, 지식, 의견은 이제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가치이기보다 시장의 소비재이자 서비스 상품이고, 그것을 구매하는 이는 다만 뼛속까지 소비자일 뿐”이라고 썼거니와, 이 이야기를 이어보고자 한다. 출판사는 신간이 나오면 책을 알릴 마땅한 수단이 없어 저자 강연회를 열곤 하는데, 수십명의 독자가 모인 강연회에서 팔리는 책은 고작 몇 권에 불과하다. 강연을 듣는 것으로 다 이해했다는 태도다. 유튜브에 넘쳐나는 공짜 강의들은 잘못된 정보나 제멋대로 해석한 지식을 천연덕스..
한 여자가 외롭게 살고 있다. 무관심한 남편은 집을 자주 비우고, 성장한 딸은 더 이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다. 음악당에서 한 남자를 알게 되어 가까워지지만, 오만한 그는 자기 얘기만 한다. 그럼에도 남자의 말을 들어 주며 사랑하는 그녀. 그러나 여자에게 돌아온 건 차가운 이별통보. 슬픔과 외로움 속에서 여자는 술에 의존하게 되고, 4년 후 기차역에서 죽음을 당한다. 이 이야기는 지난 칼럼에서 다룬 제임스 조이스의 (1914)의 ‘가슴 아픈 사건’을 시니코 부인의 입장에서 다시 쓴 것이다. 그녀의 관점에서 보니, 우리 삶의 또 다른 층위의 진실, 욕망, 폭력이 드러난다. 그녀는 왜 자기밖에 모르는 남자의 말을 계속 들어주었을까. 그녀는 왜 그의 상처를 알아보고, 기꺼이 자신을 내주었을까. 그녀는 왜..
“응.” 긴 질문을 던졌을 때 짧은 답변을 들으면 때때로 당혹스럽다. 기대했던 것이 가슴속에서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도 든다. “과일 좋아해요?” “네.” “어떤 과일을 특히 좋아해요?” “다 비슷해요.” 딸기와 수박과 단감과 귤이 순식간에 뭉뚱그려진다. 하나로 포괄된다기보다 개별성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시큰둥한 답변은 묻는 이의 적극성에 찬물을 끼얹는다. 철벽 방어 앞에서 대화의 맥은 끊길 수밖에 없다. 난데없이 바닥에 떨어진 과일만 맥락 밖으로 데굴데굴 굴러간다. 시큰둥한 사람이 매력적으로 보일 때도 있었다. 겉과는 달리 속은 따뜻할 것이라 믿었던 탓이다. ‘냉미남’이나 ‘차도녀’ 같은 신조어는 아마 이런 세태를 반영했을 것이다. 세련됨과 자신만만함을 갖춘 도시 사람은 왠지 비밀한 사연을 갖고 있는 듯..
퇴사 후 ‘리그오브레전드’에 빠져 소식이 뜸했던 친구가 어느 날 밥을 사겠다며 자기집 근처 PC방으로 나를 불렀다. 20년 만에 PC방이란 곳을 가게 된 나는 호텔 카지노를 연상시키는 인테리어와 최신 장비들을 보면서 새삼 세계적인 프로게이머를 배출한 조국 토양의 위대함을 느끼고는 두리번거리다 구석에서 혼자 전쟁을 하고 있는 친구를 찾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배가 고프다고 울상을 지으니 친구가 내 화면에 15페이지짜리 전자 메뉴판 창 하나를 띄워줬다. 나는 마우스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미쳤다. 말도 안 된다’ 하고 중얼거렸고 11페이지 맨 위에 있는 ‘정통 이태리 까르보나라’의 주문 버튼을 눌렀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아르바이트 직원이 베이컨 조각과 노른자가 올라간 까르보나라 한 접시와 피클을 내 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