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계기로 선배 선생님의 수업 영상을 본 적 있다. 최근의 비대면 녹화강의가 아니고 강의실 수업을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해둔 수년 전 자료였다. 복도 지날 때 문틈으로 흘러나오던 카랑한 목소리에 지금보단 앳된 선생님의 얼굴이 더해지니 신기했다. 이공계에 막연한 선망을 품어왔던 터라 ‘요구분석’이나 ‘데이터시스템’ 등 생경한 단어들이 들려오자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일단 멋있었다. 그렇듯 얕은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가 십여 편에 달한 영상을 전부 시청했다. 마치 한 학기 내내 교실 구석에서 청강한 기분이었다. 공학자인 본인이 여러 학기 동안 낯선 분야를 연구하며 어떻게 두 분과를 연결 짓고자 시도했는지를 학부생의 눈높이로 설명하고 계셨다. 이에 착안하여 수강생들이 전공지식을 바탕으로 가상 홍보사업안을 하나씩 ..
카페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지루하다고 말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다른 한 사람이 늘어지게 하품을 한다. “우리는 왜 매번 지루할까?” 한 사람이 묻자 하품을 마친 다른 한 사람이 따분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매번은 아니야, 자주 그럴 뿐.” “그런데 너는 지금 하품만 하고 있잖아.” 하품하던 사람이 놀랐는지 갑자기 딸꾹질하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하품에 딸꾹질”이다. 어려운 일이 공교롭게 계속되고 있다. “움직이자!” 한 사람이 단호하게 말하며 딸꾹질하는 사람을 일으켜 세운다. 그들은 어디론가 이동한다. 바깥에 나와 걷는데 아까 들었던 말이 자꾸 들렸다. 다름 아닌 “움직이자!”라는 말이. 움직이면서 움직임을 떠올렸다. 자세나 자리를 바꾸는 것, 가지고 있던 생각을 바꾸는 것, 사실이나 현상을 다른 ..
얼마 전 친구가 이사를 했다. 친구가 다니는 직장에서 이사한 집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50분. 출퇴근의 고통까지 감수해가며 이사를 한 이유는 그곳에 서울식물원이 있기 때문이었다. 서울에 직장을 구하고 혼자 산 지 10년 차인 내 친구는 ‘원예인’이다. 3년 전 다 죽어가는 몬스테라 화분 하나를 되살리며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후, 하나씩 들인 식물은 점점 불어나서 이제 친구의 집은 사실상 식물에게 점령당한 것처럼 보인다. 집을 식물원처럼 만든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집을 식물원 근처로 옮긴 친구의 요즘 얼굴은 10여년간 내가 봐온 친구의 어떤 표정보다도 밝다. 학교 후배는 2년 전 강원 양양으로 이사를 갔다. 디자인 회사를 다니던 후배는 재주가 많아서 주변 사람들의 생일마다 직접 만든 목공예품을 주고 가끔..
겨우내 방치해두었던 자전거의 먼지를 털고 매일 거르는 날 없이 자전거를 탄 지 두 달째다. 올봄은 얼마나 고마운지 예년에 비해 충분히 긴 계절을 맘껏 탕진할 수 있었다. 출퇴근길에 지나는 공원의 신록은 기뻐 죽겠다는 듯 반짝거리고 바람은 살랑살랑 땀에 젖은 목덜미를 어루만진다. 주말에 나선 장거리 자전거 길에는 또 숲과 햇빛과 바람이 조용히 기다리다 난데없이 나타난 객을 반겨주곤 한다. 자전거는 인간이 자력으로 이동할 수 있는 최적의 교통수단이라고 한다. 볼베어링의 위대한 발명으로 사람은 도보에 비해 세 배 이상 빠르게 자력으로 이동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자동차보다는 훨씬 느리지만 내가 탄 이동수단 때문에 앞에 나 있는 길을 가지 못하는 일 같은 건 자전거에게 없다. 아니, 자전거가 훨씬 느리다고? 자동..
토요일의 교정을 걷던 중 누가 “저기요” 하며 말 걸어왔다. 성경 읽기 모임을 함께하자 했다. 아직 날 학생 나이로 봐주는 분이 다 있구나 싶어 기분 좋아져 ‘말씀 감사하지만 전 이미 종교를 갖고 있어서’라 답했다. 그러자 그녀가 내 팔을 꽉 붙들었다. “아뇨. 자매님은 아직 하나님을 아는 게 아녜요.” 요컨대 어머니 하나님을 통해야 오롯한 신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거였다. 이런 방식의 선교에 거부감이 컸던 터라 뿌리치며 돌아서는데 뒤에서 간곡한 목소리가 들렸다. “주님은 절대 아버지가 아니에요. 어머니세요.” 어머니 하나님에 관해 알고픈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녀가 무엇에 그리 간절했을지 어렴풋이 짐작할 듯했다. 청소년기부터 성당에 다닌 나 역시 하느님 ‘아버지’의 형상화에 공감하기 어려웠으니까. ..
어렸을 때의 일이다. 분홍색 티셔츠를 입고 온 남자아이가 놀림을 받았다. 분홍색을 입었다는 이유로, 여자 색깔의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아이는 충격을 받았는지 사흘간 유치원에 나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그가 분홍색 옷을 입은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날, 선생님은 아이들을 한데 모아 이런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각자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말해볼까요?” 치킨을 말한 아이, 김치를 외친 아이, 수줍게 빵이라고 대답한 아이도 있었다. “나도 빵 좋아하는데.” 빵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자 웅성임이 시작되었다. “각자 어떤 빵을 좋아하는지 말해볼까요?” 이어진 선생님의 질문에 아이들의 입에서 좋아하는 빵의 이름이 앞다투어 튀어나왔다. 크림빵, 크로켓, 단팥빵, 카스텔라 등 말만 들어도 군침이 돌았다. 그때 한 아..
영상을 재생하자마자 정말 맛있어 보이는 햄버거가 보인다. 끝내주는 먹방이나 레시피 소개를 기다리고 있는데 난데없이 조리복을 입은 남자가 나와 씩 웃고는 긴 칼로 햄버거를 자른다. ‘폭신.’ 그것은 햄버거가 아니라 케이크였다. 내가 잠시 당황하고 있는 사이 남자는 햄버거가 놓인 접시를 자른다. ‘폭신.’ 접시도 케이크였다. 내가 혼란에 빠진 사이 남자는 무사처럼 햄버거 접시를 올려둔 책상을 반으로 잘랐다. ‘폭신.’ 책상도 케이크였다. 무섭다. 이제 남은 건 남자가 자신을 칼로 갈라 케이크였음을 증명하는 것뿐이기에. 다양한 사물로 정교하게 위장한 케이크를 보여주는 ‘극사실주의 케이크 비디오’는 ‘알고 보니 케이크가 아니었다’ 하는 흥미로운 반전과, 무엇이든 썰어버리는 시각적 만족을 이유로 3년 전부터 각종..
“얼핏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인간으로 보이잖아요. 근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은 본인이 지향하는 특정한 가치만은 한 번도 버린 적 없어요. 가끔 존재하죠. 그런 사람들이.” 제주에 출장 오신 선생님과 식사하던 중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분이 누군가를 두고 이렇게 평했다. 언급하신 그 공인에 대해 사실 그다지 관심 없었지만 저 말씀은 깊이 닿았다. 발화내용에 동의했다기보다 발화자의 시선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위안 같은 걸 받았다. 다음날 커피 마시면서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아침 방송에서 본 에피소드를 들려주셨다. 농담의 소재인 줄 알고 키득거릴 채비하던 내게 그분이 이야기했다. 겉으론 실리를 추구하며 세속에 젖어 사는 것처럼 보여도 혀끝만 정의로운 자들보단 세상에 무언가 더 보태는 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