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스럽던 목련이 이파리를 떨구고 샛노란 개나리가 초록으로 덮이는가 싶더니만, 벚나무와 복숭아나무가 희고 붉은 망울을 터뜨리고, 진달래에 이어 철쭉이 언덕을 뒤덮는다. 풀숲 사이로 고개 내민 제비꽃, 할미꽃을 살피며 걷는 사이, 상큼한 라일락 향이 코끝을 스친다. “꽃길만 걷자”는 말이 온몸으로 실감나는 계절이다. 인생이 늘 꽃길이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렇게 느끼며 사는 이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복되고 기쁜 날은 손에 꼽을 정도일 뿐, 힘겹고 불만스러운 날이 더 많은 것이 우리의 삶이다.‘초연(超然)’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에 얽매이지 않고 태연하다는 뜻이다. 눈앞의 현실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는 일반인으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경지다. 도심의 안락한 환경을 즐기던 소식이 어느 날 궁핍하고 불편한 시골..
“지적을 받으면 겸손하면서 당당하게 답변하라.” 군 복무할 때 상급 부대의 검열을 앞두고 지휘관이 지시한 말이다. 참 좋은 말이긴 한데 실천하기 힘든 모순형용으로 느껴져서 오래 기억에 남는다. 과연 겸손하면서 당당한 태도가, 그런 삶이 가능할까.에서 서문 격인 ‘백이열전’ 바로 다음을 장식하는 주인공은 관중이다. 그런데 제목이 ‘관중열전’이 아니라 ‘관안열전’이다. 안영이라는 인물을 합하여 열전을 구성한 것이다. 사마천은 관중 이야기 뒤에 안영에 대한 짤막한 일화 두어 개를 실어 두고는 논평에서 “안영이 지금 살아 있다면 나는 그의 마부가 되어도 좋겠다”라며 흠모의 정을 드러내었다. 열전의 인물평 가운데 몇 안되는 극찬이다. 아랫사람을 인정하고 자기 잘못을 돌이킬 줄 알았으며, 평소에는 자신을 낮추고 검..
초연결과 융·복합의 시대에 세대와 이념, 전문분야와 준거집단에 따른 반목의 골은 깊어만 간다. 이해를 위한 일말의 노력도 없이 분노에 찬 비판을 서로에게 서슴지 않고 쏟아붓는다. 합리적 의심과 구체적 확인을 바탕으로 실현 가능한 대안을 찾으려는 신중함이 양측 모두에게서 회색분자, 양비론이라는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대북관계, 환경문제, 대입전형, 경제정책 등 쉽게 재단하기 어려운 사안들에 대해 너도나도 확신에 찬 쾌도를 휘두른다.어느 시대든 이견의 충돌은 있었다. 식견과 소신의 차이에 따른 다양한 논쟁과 갈등은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 사회에서 타협의 여지없는 극단의 반목이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예전에..
춘추시대 노나라에 맹지반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제나라와의 전쟁에 패하여 후퇴할 때 맨 마지막으로 성문에 들어오며 “말이 하도 달리질 못해서 뒤처지고 말았네”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공자는 자신의 공을 자랑하지 않은 점을 높이 쳤다. 전쟁에 져서 도주한 것에 불과한데 이렇게 칭찬한 이유가 무엇일까? 패배와 후퇴가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후미에서 추격해 오는 적과 상대함으로써 퇴각하는 아군을 보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가장 용감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맹지반은 사람들이 그 공을 높이는 것을 원치 않아서, 자신이 의도적으로 후미에 선 것이 아니라 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리 된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공을 세우고서도 스스로 겸손하여 자신을 낮추는 것을 두고 ‘노겸(勞謙..
특이해서 귀하게 대접받는 것들이 있다. 백마는 회색 털로 태어난 말이 나이 들어 노화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위용이 남달라서 고귀한 이들의 의전용 말로 사용되었다. 잎이 하나 더 달린 클로버는 돌연변이이거나 생장점에 난 상처 때문에 갈라진 것일 뿐이라지만, 흔치 않기 때문에 행운의 상징이 되었다. 두 나무의 가지가 연결되어 한 나무처럼 자라는 연리지 역시 어쩌다 이루어진 매우 특이한 현상이지만, 그렇기에 세상에서 보기 드문 효성이나 사랑을 표상한다. 그런데 사람의 신체에 대해서는 유독 특이한 것을 귀하게 여기기는커녕 거부하거나 멸시하는 일이 많다.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가 물갈퀴처럼 붙어 있거나 엄지손가락 옆에 작은 손가락이 하나 더 달린 것은, 비교적 작은 차이에 불과하고 일상생활에 크게 불편한 것..
해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자는 삶이 일상이던 시절에도 밤샘을 하는 이들은 있었다. 3000년 전 중국 정치인 주공(周公)이 밤샘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전의 성군이 행한 훌륭한 정치에 조금이라도 부합하지 않는 점이 있으면 하늘을 우러러보며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빨리 실행하고 싶어서 또 그대로 앉아 뜬눈으로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낮처럼 밝은 밤이 일상인 오늘날, 밤샘을 불사하는 이들은 적지 않다. 그런데 무엇을 위한 밤샘인가? 눈앞의 즐거움을 탐닉하며 밤을 새울 수도 있겠으나, 먼 훗날의 즐거움을 그리며 성공의 조건들을 채우기 위해 사력을 다해 밤을 새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목적이 즐거움에 있다면, 자신의 몸을 혹사해 가며 ..
명과 후금의 전쟁이 치열하던 1618년, 명의 강요로 파견한 조선의 강홍립 부대가 후금에 투항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를 빌미로 명에서 조선이 후금과 내통한다는 논의가 일자, 광해군은 이정귀를 사신으로 발탁한다. 1598년 조선이 왜를 끌어들여 명을 치려 한다는 무함이 있을 때 이정귀의 상주문으로 변론을 성사시킨 일을 떠올린 것이다. 이정귀는 광해군의 폐모 정청에 불참한 죄로 유배의 명을 기다리던 상황이었다. 국가 위기의 상황에서 광해군이 자신의 정치적 행보에 거슬리던 이정귀를 찾은 것은, 그가 지닌 ‘화국(華國)’의 능력 때문이었다. 화국은 문장력으로 나라를 빛낸다는 말이다. 동아시아에서는 문장이 외교 목적을 달성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현실정치가 힘으로 움직이는 것은 예나 이제나 다르지 않지만, 명분..
최상류층 저택 단지에서 입시를 두고 벌어지는 암투를 그린 드라마 이 화제다. 과장된 상황 전개에도 불구하고 이게 바로 우리 교육의 현실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이 드라마의 웃음 코드 가운데 하나는, 잘나가는 대학병원 의사이면서 허당 기질이 다분한 정준호 분 강준상 교수의 행태다. 나의 전공 탓이겠지만, 그중 유독 눈에 들어온 장면이 있다. 미리 입수한 정보를 활용해서 국회의원의 환심을 사려던 강 교수가 한자로 적힌 여주(驪州) 신륵사(神勒寺)를 마천 신혁사로 잘못 읽는 해프닝이다. 그러나 ‘驪’와 ‘勒’을 쉽게 읽을 수 없는 시청자라면 그냥 웃어넘기기엔 뭔가 찜찜하다. 한글로 쓰면 될 것을 굳이 한자로 써서 망신을 주는 설정이 와 닿지 않아서일까, 오히려 강 교수의 볼멘 항변에 공감이 간다. “저희 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