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아시안게임 카누 용선 여자 500m 결선에서 여자 남북 단일팀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주 끝에 금메달을 획득했다. 카누 용선은 노잡이 10명, 키잡이 1명, 북재비 1명으로 이루어진 팀이 일정한 거리를 질주하는 게임이다. 용선이 카누 종목에 들어간 것은 아시아의 오랜 전통을 이은 것이다. 기원전 3세기 중국 초나라 충신 굴원이 반대파의 모함으로 좌천을 거듭하다가 멱라수에 투신했다. 그를 구하려고, 혹은 그의 시신을 건지려고 여러 배들이 앞다퉈 달린 데에서 경도(競渡, 배를 저어 빨리 건너기를 겨루는 놀이) 시합이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용 모양으로 장식한 용선(龍船)을 사용한 건 물고기들이 굴원의 시신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오늘날에도 중국, 대만을 비롯해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요..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갑작스러운 사고는 어쩔 수 없지만, 웬만한 질병은 예방하거나 관리할 수 있고 수명마저 인위적으로 연장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부귀와 빈천이 정해져 있고 출세의 길 역시 하늘에 달렸다고 생각하던 과거와는 다르다. 여전히 한계는 많지만 그래도 평등이 당연한 가치로 여겨지고 개인의 노력에 의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사회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하면 그뿐이지 굳이 운명을 상정해 두고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조선후기 문인 홍석주가 을 썼으니, 운명을 부인하려는 것이 요즘의 일만은 아니다. 인과응보와 무관해서 닥치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운명이다. 주나라 무왕이 큰 병에 들었다. 나라를 세운 지 4년, 이제 막..
정치 일선에 등용된다면 무엇부터 하겠느냐는 제자 자로의 질문에 공자는 “그야 당연히 이름부터 바로잡아야지!”라고 답했다. 공자 사상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정명(正名)’의 출처다. 정책 하나에 많은 이들의 생사가 오갈 수 있는 것이 정치다. 그 긴박한 현안들을 앞에 두고 기껏 이름을 바로잡는 일이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몽상가의 답변이다. 1725년 조덕린이라는 인물이 영조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학문 수양, 인재 선발, 백성 보위에 최선을 다하고, 사심이 아닌 공공의 도리를 실현하라는 등의 열 가지 건의가 담겨 있었다. 그리 새로울 것 없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 상소문으로 인해 조덕린은 일흔이 다 된 나이에 함경북도 종성으로 유배되었으며, 사후에도 극심한 공격을 당하다..
육계(六癸) 부적을 사용하면 한여름 땡볕 아래 두꺼운 가죽옷을 입고 화롯불 열 개를 둘러놓아도 뜨거운 줄 모르고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다. 에 실린 더위 피하는 방법이다. 이런 부적을 구할 길은 물론 없다. 그저 상상으로 더위를 달랠 뿐이다. 윤기라는 인물은 열두 살 때 지은 ‘고열(苦熱)’이라는 시에서, 하늘까지 닿는 사다리에 올라가 은하수를 기울여 불볕더위를 씻어낼 시원한 비를 뿌리고 싶다고 하였다. 많은 시인들이 폭염을 주제로 시를 지으면서 얼음 담긴 옥병이나 서늘한 바람과 이슬을 꿈꾸곤 했다. 상상으로만 더위를 피할 수 없다면 잠시나마 더위를 잊을 수 있는 풍류를 즐기는 것도 방법이었다. 정약용은 더위를 없애는 여덟 가지 일을 시로 읊었다. 소나무 그늘 아래 활쏘기, 시원한 바람 맞으며 그네 ..
환곡(還穀)의 출납을 수령이 제멋대로 하는 데에서 온갖 간사한 짓이 나온다. 이는 백성을 위한 제도인데 정작 그로 인해서 가장 곤욕을 받는 이들이 백성이고, 수령들은 오히려 이를 치적으로 삼는다. 그대는 마을을 잠행할 때 먼저 장부의 허위 기재 여부와 입출의 공정성을 세세히 살피고 나서, 출두 이후 창고의 곡물을 낱낱이 대조 확인하여 가감 없이 보고하라. 1787년 정조가 황해도, 평안도에 파견한 암행어사 이곤수에게 내린 봉서(封書)의 일부다. 조선시대에는 사헌부에 감찰(監察)을 두어 관리들의 비위를 살피고 회계 감사 등을 담당하게 하였다. 때로는 지방관의 비위를 조사하기 위해 감찰어사를 파견하기도 했는데, 후에 이 임무를 비밀리에 담당하게 된 것이 바로 암행어사다. 감찰 대상은 관리들이었다. 오늘날에도..
순조 때 이종영이라는 인물이 부령의 도호부사로 발령 받았다. 부령은 함경도 마천령 이북, 그야말로 첩첩산중에 있다. 서울에서 2000리나 떨어져 있고 함경도 감사의 관아에서도 1000리나 떨어져 있다. 험준하고 궁벽한 땅이지만 그런 만큼 모든 것을 수령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진귀한 산삼과 짐승 가죽을 불법으로 갹출하여 탐욕을 채우고 권세가에게 진상할 수 있으며, 감찰 기관이나 조정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극심한 착취에 시달리지만 하소연할 길조차 없다. 정약용은 이종영의 부친인 이재의와 오랜 벗이었다. 새로운 관직을 받고 먼 길 떠나는 친구 아들을 위해서 정약용은 전송의 글을 써 주었는데, 그 첫머리에서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관이 두려워해야 할 네 가지를 제시했다. 백성..
말이 넘쳐나고 있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선출될 자리가 4000여개. 등록한 후보는 9300여명에 이른다. 이 모든 후보들이 내거는 공약과 포스터, 현수막의 문구들, 연일 이어지는 거리 유세와 방송 토론 등에서 수많은 말들이 쏟아진다. 그들이 자신 있게 던지는 희망의 말들만 하나하나 듣노라면 우리 지역의 앞에 펼쳐진 꽃길의 향기에 취해 아찔할 정도다. 그러나 함께 터져 나오는 서로를 향한 부정과 비방의 말들이 다시금 귓전을 어지럽히며 우리를 흔든다. 말만으로 정치인을 판단할 수는 없다. 각종 정보와 이력, 공약의 실현 가능성, 윤리의식 등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함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의 말은 여전히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판단 근거이다. 아무리 세련된 홍보팀을 거느리고..
한신은 천하를 삼분하자는 항우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때 휘하에 있던 괴철은 한신의 마음을 돌리고자 여러 차례 건의한 끝에 탄식한다. “공을 이루기는 어렵지만 무너지기는 쉬우며, 때를 얻기는 어렵지만 잃기는 쉽습니다. 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괴철이 요구한 것은 당시 초와 한의 정세, 이미 유방 밑에 있기에는 너무 커져버린 한신의 공과 힘 등을 종합적으로 ‘숙려(熟慮)’하라는 것이었지만, 한신은 짧은 생각에 갇혀서 끝내 괴철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교육부가 학교생활기록부의 신뢰도 제고 방안을 ‘정책숙려제’에 부친다고 하여 논란이 일고 있다. 국가교육회의에서는 대입제도 개편을 위한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고, 지역과 성, 연령 등을 안배하여 선정하는 시민참여단 400여명의 의견을 중심으로 개편 권고안을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