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주민들이 자주 차별을 경험하는 장소는 어디일까? 외국인 주민의 유형과 생활환경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여성가족부에서 2만5000여가구를 조사한 ‘2018년 전국다문화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바로 ‘직장(일터)’이다. 직장에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무려 66.9%에 달했다. 그다음은 상점, 은행과 같은 경제영역이었다. 응답자의 44%가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거리와 동네와 같은 일상 공간, 주민센터와 같은 공공기관보다 차별을 경험한 빈도가 높았다. 이주민의 법률상담을 하다 보면 은행에서 차별을 경험한 사례가 많다. 한 유학생 친구는 농담처럼 자기는 비자 문제로 출입국관리사무소와 은행에 가야 할 때 평소에 잘 입지 않는 정장을 꺼내 입는다고 할 정도다. 물..
2016년 출간한 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의 입을 통해 한국 사회가 얼마나 불평등한지 드러낸 책이다. 노량진에서 수십 명과 인터뷰를 했는데, ‘공직에 대한 열의’가 어릴 때부터 있었다는 식의 말은 당연히 등장하지 않았다. 저마다 이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은 참으로 안쓰러웠다. 대기업을 퇴사하고 다른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도 많았다. 기업이 노동자를 어떤 식으로 대하는지, 그들은 생생하게 증언했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 홍길동씨를 소개받았는데, 나는 기업의 갑질과 장애인 차별을 생생하게 증언해줄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이전 회사생활은 별문제가 없었다. 홍길동씨는 회사와 동료로부터 인기가 만점이었는데, 가장 일하고 싶은 동료로 뽑혔다는 감사패가 집에 수두룩했다. 이 정도로 좋은 ..
2019년 문재인 정부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시 경찰의 강제진압을 인정했다. 조사위는 파업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특공대가 동원한 테이저건, 다목적 발사기, 헬기, 기중기 등의 사용이 부당했으며,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것과 경찰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가압류를 취하할 것을 권고했다. 해고와 강제진압, 손배·가압류로 인한 생활고와 트라우마로 30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목숨을 잃은 후였다. 경찰은 고개 숙여 사과했지만, 손배소송은 취하하지 않았다. 오늘도 쌍용차 노동자들은 배상 지연이자를 포함한 100억여원의 손배액으로 고통받고 있다. “(쌍용차 노동자의) 긴 고통의 시간이 통증으로 남는다”는 대통령의 공감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노동탄압용 손배·가압..
20년 전 이야기다. 혈기왕성했던 대학교 새내기 시절, 선배들이 사주는 술자리가 좋아 일주일에도 몇 번씩 기숙사 통금시간을 지키지 못해 새벽까지 학교 학생회실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곤 했다. 이불도 없이 외투를 덮고 눈을 붙이다 보면 새벽 4시쯤 인기척에 자연스럽게 잠을 깨곤 했다. 학교 복도에 부산스럽게 울리는 소리는 파란 플라스틱 통을 끌고 다니며 학교 곳곳을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었다. 처음에는 서로 놀랐고, 서 너번 지나자 왜 따뜻한 집 말고 여기서 이러고 있느냐는 핀잔을 들었다가, 몇 번인지 셀 수 없을 때쯤 숙취에 괴로워하던 나에게 한 아주머니께서 꿀물 한 잔 먹겠느냐며 말을 건넸다. 그날 새벽 처음 지하실에 내려가 보았다. 노래패와 연극동아리 연습실로만 알고 있던 지하 계단 아래 작은 공간에 아..
전화가 왔다. “서정홍 농부님, 저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 소속된 의사입니다. 다가오는 일요일 오전 10시에 찾아뵙고 싶습니다. 인원은 13명입니다.” “어떤 목적으로 의사 선생님들이 산골 마을에 오려고 하는지요?” “농사 일손도 거들고, 농사와 기후변화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무더운 7월이라 땡볕 아래 김매는 일 말고는 할 게 없는데요. 오전 열 시면 농부들도 더워서 일하기 고달픈 시간인데….” “잘할 수 있습니다. 한두 시간이라도 일손을 거들고 난 뒤에 농부님 말씀을 듣고, 같이 점심을 드셨으면 합니다.” 나는 30대 후반부터 40대까지 선배들 가르침에 따라 ‘생명과 공동체’를 살리는 가톨릭농민회와 우리밀살리기운동 경남부산지역본부에서 일했다. 그리고 2005년에 하던 일을 후배들에게 물..
수학을 잘하는 이들을 존경한다. 허준이 교수가 대수기하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인류가 명왕성에 착륙하는 느낌이다. 판타지 같다는 말인데, 추상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내가 수학을 모르기 때문이다.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는 것의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의미를 알 턱이 없다. 그래서 짜증도 나고, 나보단 수백 배 정교하게 수학의 효능을 이해하는 이들이 부럽다. 고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 사이에 수학을 포기한 것 같다. 여기서 포기란, 성적이 좋지 않다 수준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말하든 수학이라면 귀를 닫아버리는 완전한 무지의 상태를 뜻한다. 반복을 통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수학적 사고를 중단하니, 그전에 배웠던 것도 휘발된다. 중학교 때까지는 수학이 어렵지 않았던 내게, 중학생인 아이..
2014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4만7000원을 담은 노란봉투 4만7000여개를 받았다. 2009년 정리해고에 맞선 77일간의 파업으로 회사와 경찰, 그리고 법원은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47억원의 손해배상, 가압류를 결정했다. 해고자들을 중심으로 싸움이 계속되었지만 생활고와 엄청난 손해배상액에 대한 부담이 쌓여 33명의 노동자와 가족이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배춘환님은 한 언론사에 편지와 함께 4만7000원을 보냈다. “해고노동자에게 47억원을 손해배상하라는 이 나라에서 셋째를 낳을 생각을 하니 갑갑해서 작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고 싶어서 보냅니다. 47억원… 4만7000원씩 10만명이면 되더라고요.” 쌍용자동차 노동자에게 보내는 ‘노란봉투’ 운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20..
깻잎. 들깨의 잎사귀를 부르는 말. 민트, 바질과 같은 꿀풀과 식물로 독특한 향이 있어 ‘코리안 허브’ 또는 ‘한국형 고수(향신료)’로 불린다. 육류의 누린내와 생선의 비린내를 줄여주고 가격도 저렴해 상추와 함께 대표적인 국민 쌈채소로 사랑받고 있으며, 영양소가 많아 나물 반찬이나 장아찌, 깻잎김치 등 밑반찬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노지 밭에서 키웠는데, 요즘에는 비닐하우스에서 1년에 두 번 파종하는 이모작 방식으로 키운다. 병충해에 강해 쉽게 자라고, 어느 정도 자라면 1년 내내 수확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자란 잎사귀를 사람 손으로 하나씩 직접 따내야 한다. 우리 일상에 친숙한 식재료라서 그런지 비유의 대상으로도 많이 쓰였다. 1990년대 중·고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앞머리를 펼쳐 옆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