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터데이~ 올 마이 트러블 심 소 활어회~.” 오! 활어회. 뜬금없이 찬바람이 돌면 활어회가 먹고 싶다. 어떤 날은 고기 굽는 데 앉아 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팔팔 끓는 국을 올려놓은 잔칫상을 받기도 한다. 새우가 들어간 마늘종, 잘 튀긴 돈가스, 가지런한 계란말이가 놓인 도시락이 그립다. 저마다 좋아하는 음식들이 있겠지만, 나는 잊지 못하는 게 아침마다 엄마가 싸주셨던 도시락이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 급식을 먹으니 엄마표 도시락은 맛보기 어렵겠다. 소풍 갈 때 아빠도 거들어 도시락 솜씨를 뽐낸다. 아빠표 도시락 맛은 어떨지 궁금하다. 무말랭이, 단무지와 김밥은 분식점에서 사먹는 요리가 되었지만, 소풍 약속이 없어도 김밥을 싸먹는 경우가 있다. 미슐랭 별점을 받은 요리사만 빼어난 맛의 도시락을 싸는..
마을버스 정거장. 손님들이 오길 기다리는 운전기사를 향해 할머니가 다그쳤다. “더워 죽겄는디 휭하니 기냥 갑시다. 이눔의 똥차 에어컨도 잘 안되고만.” 그러자 기사 왈 “똥이 다 차면 갈랍니다.” 부릉부릉 방귀소리. 장마전선은 오락가락. 나는 버스가 떠나는 꽁무니를 카메라에 몇 컷 담아두었다. 장 모르와 존 버거는 35년 동안 우정을 나눴는데, 집들을 오가면서 서로를 인터뷰하고 존중하며 아꼈다. 장 모르는 사진작가답게 필름으로, 존 버거는 목탄화와 글로…. 스위스와 프랑스를 오가며 나눈 둘의 이야기는 추운 날 담요처럼 따뜻하더라. 존 버거는 사진가 장 모르가 아주 멀리 여행을 떠나길 즐기는 사람이라 생텍쥐페리 같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려 깊고도 특별한 여행가로서, 이웃들을 사랑했고 장기여행을 즐겼다는..
대나무는 나이테가 없어 나이를 잘 모르겠다. 훌쩍 자라버리면 다 동갑내기 같아. 집 울타리 안에 대밭이 있는데, 죽순 삶아 죽순된장국 끓여 먹고, 살아남은 죽순은 햇대로 솟구쳤다. 일본에서 경쟁률이 가장 센 대학은 ‘와~세다 대학’, 우리나라는 그냥 이 산허리가 통째 대밭이요, 대학이지. 대울타리 대캠퍼스. 가방끈이 짧으면 대밭에 머물면 된다. 장맛비가 거칠자 대들이 물기를 머금고 살짝 휜다. 댓잎 끝에는 빗물이 대롱대롱. 청개구리가 달라붙어 마리아 칼라스처럼 노래를 부른다. 푸치니의 . 비가 그치니 나비도 보인다. 배추농사 짓는 집 자식들은 배추 한 포기 두 포기 그런데 인생도 포기. 반면에 대밭을 가진 집안은 대발로 세는데, 조기에 인생대학. 나비처럼 훨훨 잘나가. 대밭처럼 자식들도 늘어 ..
한번은 북아프리카 알제리에 갔다. 밀리아나에 사는 베니죽죽 부족이라는 친구가 사막 투어에서 진가를 발휘했는데, 훗날 알퐁스 도데의 단편 소설에서 그 부족을 보고 어찌나 반가웠던지. 유속이 느린 셰리프 강을 따라 밴을 타고 이동했다. 사막과 오아시스를 오가는 밴들은 예전엔 모두 낙타였다. 베니죽죽 친구는 아마도 그 당시 태어났더라면 낙타몰이꾼이 되었겠지. 사륜구동 밴을 개조하여 몰고 다니는 집시들이 흔했다. 밴에서 먹고 자고 싸고 다하니까 이들 생을 통칭해 여행작가 포스터 힌팅턴은 ‘밴 라이프’라 명명했다. 폭스바겐 밴을 뜯어고친 걸작들은 실로 놀랍다. 트럭 캠퍼들도 아기자기한 살림살이. 캠핑 트레일러를 달고 다니면서 전망 좋은 곳에 세우면 그곳은 곧바로 ‘홈 스위트 홈’. 장작불로 밥을 지어먹고 커피콩을..
독일에서 잠시 머물 때 우체국 박물관에 간 일이 있었는데, 거기서 전시된 우편마차를 보았다. 우편마차를 터는 도적떼도 있었다는데, 편지는 빼앗지 않는 나름의 룰이 있었다고 한다. 슈베르트 가곡 중에 ‘우편마차’란 노래가 있다. “우편마차 소리 듣고 내 마음 왜 이리 설레나. 내 임 소식을 날마다 기다렸다오. 편지는 그간 허사였소. 오늘 올까 내일 올까 기다릴 뿐. 왜 임의 편지 이다지도 안 오나. 날이면 날마다 기다렸다오. 산 너머 임 계신 마을 내 눈에 아롱진 그대 모습. 그리운 임 계신 마을 달려갈까나. 보고픈 심정 풀고파. 그대와 얘기하고파. 내 맘 하소연하고 싶구나. 쓰린 내 맘 쓰라린 내 하소연을 언제 말하리….” 편지란 어쩌면 하소연을 나누는 무엇일 게다. 요샌 문자나 e메일이 그 대신 역할을..
동네 초입에 들어오면 흰둥이 잡종견들이 반긴다. 반긴다는 건 제가 잘 아는 인간들에게 한해서이고, 초면이면 깡패나 다름없이 우악스럽게 덤벼든다. 놈들 앞에서 어떤 자랑을 쳐도 소용없는 것이 “느그들 똥 먹을 줄 알아?” 이 녀석들은 자기가 눈 똥도 집어먹는다. 보는 이로 하여금 기겁하게 만들려는 그야말로 개수작이렷다. 거기다가 묶인 개들을 찾아다니며 줄줄이 붕어빵 씨를 뿌려댄다. 개 주인에게 몇 번 당부도 하고 그랬지만, 그이가 술만 자셨다 하면 “내가 수꾸락을 놔분 것도 아닌디 내 개도 내 맴대로 못하고 살라믄 뒤져야 쓰재. 개도 햇비테 돌아댕개야 좋재 가막소(감옥)에 살어서 쓰꺼시여. 저라고 꼬랑지를 살랑살랑 이삐게 흔들고 댕김시롱 인사성도 밝은디 씨잘데기 없이 말들이 많어부러.” 그이가 술을 마시는..
클럽 하면 젊은이들 춤추고 노는 곳으로만 안다. 사람이 모이면 그게 자동으로 클럽 활동. 더운 날 누군 죽어라 밥벌이 땜에 곤죽이 되어 사는데 핑핑 놀고먹는 치들을 보면 부아가 치민다. 부아가 난다고 ‘부에나’인가. 하지만 인간이 줄곧 침울하게 살 필요는 없다. 춤도 추고 술도 마시며 사는 게 인생이다. 이른 더위에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 생각나서 음반을 틀어놓고 편지를 쓰고 있는데, 엉덩이가 나도 모르게 들썩거리게 된다.헤밍웨이는 럼과 라임과 설탕을 갈아 녹인 칵테일 다이키리, 톡 쏘는 향의 애플민트를 섞은 칵테일 모히토를 매일 야채주스를 마시듯 즐겨 했다. 선선한 아침바람을 쐬며 를 집필하고, 저녁이면 해변 어느 쿠반 재즈밴드가 있는 클럽에서 술친구들을 찾았다. 어부들 눈에 하릴없는 백수로 보일..
동냥 중에 제일 동냥이 귀동냥이야. 옛사람들은 책도 드물고 인터넷이 아예 없던 시절, 귀동냥으로 공부들을 했어. 당신이 시방 하는 말도 귀동냥으로 배운 거고, 나도 귀동냥으로 얻어들은 걸로 보통 ‘썰’을 풀고 댕긴다네. 말을 재밌게 하려면 귀동냥을 잘해야 한다. 가끔 어디라도 배움이 있으면 앉아 있곤 하는데, 조는 경우도 더러 있다. 재미가 없으면 요샌 자동으로 눈이 감긴다.목사가 설교를 하는데 한 청년이 꾸벅꾸벅 졸더란다. 곁에 있던 할머니에게 깨워달라고 부탁을 했다. 할머니 왈 “재우기는 자기가 재워놓고 날더러 깨우라고 그라시요잉.” 투덜댔다던가. 청중이 졸지 않도록 말을 재미나게 할 줄 알아야 한다. 시골에선 사투리를 보통 듣고 살아가는데, 전라도 오지 섬보다 광주 시민들이 훨씬 억양이 세고 진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