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묵힌 산밭을 갈아엎고 고추와 토마토 모종을 심자 곧바로 하늘에서 단비 대령. 하느님과 합작 농사. 기분이 좋아졌다. 동네 이웃들 농사는 대기업(?) 수준이랄까. 흉내는 물론이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고난도 기술 보유자들, 게다가 넓은 경작지. 여기서 나만의 틈새 농법은, 하늘에 매달리는 기도뿐이다. 월마트 건물 한쪽에 구멍가게를 낸 사람이 하도 장사가 안되자 현수막을 하나 달았는데 그날로 대박이 났단다. “출입구. 이쪽입니다.” 인생마다 ‘출입구’라고 현수막을 매달면 복이 요쪽으로 쏠쏠 들어올까. 하늘이 도와주면 조무래기라도 킹왕짱 인생으로 변신할 수 있음이렷다. 요샌 “포도시 밥 묵고 살아라우” 말하는 분들이 많다. 포도시란 간신히, 쥐오줌만 한 물로 모내기를 하듯 팍팍한 살림살이. 어렵다고 들..
징병 검사관이 청년에게 물었다. “사람을 죽일 수 있겠는가?” 피식 웃으며 청년이 대답했다. “모르는 사람은 주저가 됩니다만 친구라면 당장 죽일 수 있습니다.” 웃자고 하는 얘기. 나쁜 놈의 친구들이 꼭 있다. 그 친구 따라다니면 만날 고생길. 가장 나쁜 친구가 어깨에 앉아 있는 귀신놈이다. 언젠가 스타강사 김창옥씨가 이런 말을 하더군. “결정적인 순간에 그 귀신 같은 존재가 나한테 말을 합니다. ‘봐봐. 사람들이 너를 그렇게 보잖아. 봐봐. 저 사람들이 널 무시하고 있는 거야. 봐봐. 너 같은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고 쓰여 있어, 그러니까 넌 거기 가면 안 돼.’ 이런 말들이 들려와요. 귀신이 어깨에 앉아서 하는 소리죠…. 안 좋은 기운을 가지면, 안 좋은 기운이 계속 들어오게 되어 있어요. 온갖 귀신이..
월남한 분들은 함경도식 ‘아바이 순대’를 잊지 못한다. 실향민들이 즐겨 먹다가 1990년대 들어 국밥집 간판에 떳떳이 걸리게 되었다. 지역마다 순대 종류가 다르고 국밥도 차이가 제법 있다. 어버이날 아바이 순대를 먹으면서 철조망 건너편 아슴아슴한 고향을 생각하리라. 고향에 두고 온 일가친척. 입맛은 그리움의 진한 냄새이고 단단한 끌텅이다. 돼지의 창자에 담긴 것은 양념만이 아니라 기억하고 싶은 이름들이다. 순대를 채우던 아바이와 순대를 써시던 오마니, 맴소(염소)와 새지(송아지)가 울던 초저녁 그늘. 백두산에는 호개(호랑이)가 뛰댕기고 메구락지(개구리)는 논에서 뛰댕기는 늦봄 어느 날들이 아른거리리라. 남북 철도가 연결되고, 평화가 무르익으면 원조 아바이 순대를 원 없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게다.긴 ..
아프리카 민요에 이런 노래가 하나 있다. “내 눈에 다래끼가 났다오. 악어가 내 다리를 잘라 먹었다오. 마당에 있는 염소는 풀밭으로 가자는데 솥에는 멧돼지 고기가 끓고 있네. 절구통에 담긴 곡식이 말라비틀어지는데 추장은 재판을 받으라고 날 오라 하네. 장모님 장례식장에도 가야 하는데, 아! 정말로 더럽게 바쁘다오.” 바쁘면 대체로 불행해진다. 바쁘게 돈을 벌면 행복해질 거 같지만, 바쁘면 놓치는 게 생겨서 결국 가장 중요한 행복이 달아나 버린다. 적당히 바빠야 좋고, 차라리 바쁘지 않은 편이 인생을 숨 돌리게 해준다. 허겁지겁 앞만 보고 살다가 문득 멈춰선 친구가 내게 그랬다. “이런 촌구석에서 심심해 어찌 살아?” “심심한 음식이 몸에도 좋은 법이야. 심심한 일상이 얼마나 재밌는데. 그래도 가끔 드라마..
미국에 3대 통기타 저항가수 우디 거스리와 밥 딜런, 존 바에즈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도 3대 저항가수가 있다. 김민기와 한대수, 양병집을 꼽고 싶다. 김민기, 한대수는 요즘 사람들도 잘 알지만 양병집 아저씨는 약간 방외인이다. 하지만 마니아들은 고개를 끄덕거릴 것이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 타박타박 타박네야 너 어드메 울며 가니…. 대표곡들을 들려주면 “아 이 노래의 주인공~” 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게 된다. 팔구십년대 공단 골목과 대학가에서 널리 불렸던 노래.특히 양병집은 산업화로 인한 농촌 붕괴, 탈농 현상에 주목했다. “이 땅은 내 땅, 이 땅은 너의 땅 백두산에서 제주도까지 먼 옛날부터 먼 훗날까지… 이 땅은 너와 나의 땅. 메마른 땅에 새싹이 나고 돼지우리에 개나리 피..
경찰이 도둑 잡아놓고 공범을 불라며 다그쳤는데, 도둑 왈 “혼자했다니깐요. 요새 세상에 믿을 놈이 어디 있답니까.” 그 사이 망보던 놈이 도망을 치자 “저 봐요. 믿을 놈 하나 없잖아요” 하더라는.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러는데, 경찰도 2인 1조로 순찰을 다니더라. 혼자보다 둘이 낫다. 사람이 외롭게 혼자 살다보면 병이 생긴다. 말벗이라도 있어야 한다.스웨덴 사람들은 피카(Fika)라 해서 빵 조각과 커피 한 잔 앞에 놓고 말벗이랑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한다. 하루에 한두 번은 꼭 동료나 친구, 가족과 피카를 한다. 술을 마시거나 진하게 만나는 게 아니기에 부담 없는 미팅. 누구나 피카를 갖자고 청할 수도 있다. 피카를 위한 빵도 있다. 집집마다 오븐이 있는데, 수제 빵이 다들 일품이다. 구운 시나몬 롤빵..
골목 가게들이 어렵고 지갑이 홀쭉한 시대다. 한 젊은이가 위조지폐를 만들어 어리숙한 동네 할머니의 구멍가게를 찾아갔다. 물건을 쪼끔 사고 5만원짜리 위조지폐를 내밀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삐뚤빼뚤 4만원이라 적힌 지폐를 꺼내더니 거스름돈이라며 내밀더란다. 할머니를 우습게 여기면 큰코다친다. 우리 동네 할머니들만 봐도 단톡방에 이모티콘을 자유자재 구사하고 장남이 가짜뉴스 올리면 정신 똑바로 차리라 꾸짖기도….엊그제 일이다. 국수가게에서 친구랑 밥을 먹고 나왔는데 우체국에서 택배 계산을 하려다보니 지갑이 주머니에 없다. 혹시나 해서 국수가게에 전화했더니 테이블에 그대로 있다는 거다. 지갑에 명함이라도 넣어두어야 하는데, 수염 얼굴이 명함인 뉴욕 노숙인 스타일. 돈도 좀 들어 있었다면 지갑을 못 찾았을까. 우리..
맛난 방울토마토를 심어야겠다 싶어 장에 나갔는데, 모종이 야물어 보이지 않아 한 주 거르기로 했다. 더운 날 방울방울 영근 토마토를 보면 잠시 행복해지겠다. 아이가 어릴 때 교회 마당에서 방울방울 비눗방울을 날리곤 했다. 어른들은 딱딱한 장의자에 앉아 예배를 드릴 때, 하느님은 그 시간 누구랑 함께 웃고 놀았을까. 주디 갈런드가 부른 노래 ‘오버 더 레인보’. 영화 에서 도로시가 귀여운 강아지 토토에게 불러주던 노래. “무지개 너머 어딘가 높다란 곳엔 어릴 적 자장가에서 들었던 세상이 있어요. 무지개 너머 어딘가 하늘이 맑고 우리가 꿈꾸던 세상이 그곳에 있죠. 나는 별에게 소원을 빌었어요. 구름 따라 흘러갔다가 멀리 떨어진 그곳에서 깨어나게 해달라고요. 걱정 근심이 굴뚝 꼭대기에 걸려 있다가 레몬 즙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