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성공한 개발사업’이라며 본인의 대표적 치적으로 꼽았던 판교대장지구사업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비상식적으로 막대한 수익이 발생한 것도 문제이지만, 그 수익이 흘러간 곳에 정치·법조인들의 이름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수사가 진행 중이라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나겠지만 법적인 문제가 있고 없고를 떠나 이 사업이 이 지사의 치적으로 남기는 어렵게 됐다. 사업을 맡은 컨소시엄에 속한 ‘화천대유’라는 업체로 현재 널리 알려져 있지만 본래 이 사업의 공식 명칭은 ‘성남 판교대장 도시개발사업’이다. 국토의계획및이용에관한법, 도시개발법 등 각종 규제를 받는 법정사업이기도 하다. 통상 도시개발사업이라 하면 정부나 지자체, LH 등 공공기관이 주도하지만 민간 역시 시행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결혼 전 처갓집에 처음 인사를 하러 가기 전에 아내는 미리 귀띔을 했다. 장인이 사윗감으로 탐탁지 않아하는 직업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기자라는 것이었다. 나머지는 공권력, 그리고 금권을 다루는 직업이었다. 사람들을 괴롭히고 다니는 직업이라는 게 이유였는데 무조건 애들 뜻에 따라야 한다는 장모님의 소신이 뒷심을 발휘한 것인지, 다행히 별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개인적 경험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기자라는 직업은 한국에서 그다지 존경받는 직업이 아니었다.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기자 출신 국회의원이 “경찰 사칭 정도는 흔했다”고 고백할 정도니 기자가 ‘기레기’로 전락한 배경을 굳이 되짚어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직업 자체가 누군가의 부패나 치부를 끄집어내 고발하는 역할로 설계된 만큼, 기자들에게 혐오나 조롱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석방된 후 삼성전자 서초사옥을 방문한 것을 두고 취업제한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 부회장은 지난 2월 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 2년6개월이 확정되면서 취업제한 통보를 받은 터였다. 취업제한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 형 집행 종료 후 5년, 집행유예 종료 후 2년 동안 관련 기업에 취업할 수 없다는 규정이다. 법무부는 지난 20일 이 부회장이 미등기 임원이기 때문에 경영활동을 해도 취업제한 위반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2017년 ‘촛불 민심’을 등에 업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재벌개혁 과제 중 하나로 이 취업제한 조항의 실효성을 높이려 했다. 그 성과가 2019년 5월의 특경가법 시행령 개정이다. 이전엔 취업제한 기업이 ‘공범과..
서구의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올림픽이 무용하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이들이 올림픽을 반대하는 이유는 올림픽을 한 번 개최하기 위해 너무 많은 자원이 투입된다는 것이다. 여러 개의 대형 경기장과 선수촌을 세워야 하고, 올림픽이 끝나면 그 건물들을 유지하는 데 또 돈이 들어간다. 얼토당토않은 주장은 아니다. 친환경이 시대정신인 만큼 자원 낭비와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는 올림픽을 고민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올림픽에 반대한다는 것은 비슷하나, 이유는 전혀 다른 경우도 있다. 개별 국가 차원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올림픽을 보이콧하는 것이다. 2020 도쿄 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내에 있었다.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가 홈페이지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권 대..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1915~1987)는 1970년대 미국에서 “가장 남성적인 SF를 쓰는 남자”로 평가받았다. 힘 있고 강렬한 전개와 다소 건조하면서도 점잖은 말투가 쓰였다는 점, 군대와 중앙정보국(CIA)의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점, 여성에 대한 성적 욕망이 잘 드러나 있다는 점이 그가 틀림없이 남성 작가라는 이유가 됐다. 팁트리는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작가들과 편지로만 교류했다. 그의 많은 소설이 성불평등을 신랄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어떤 독자들은 여성 작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소위 전문가들로부터 ‘웃긴 소리’ 취급을 받았다. 동시대의 작가 로버트 실버버그는 그를 “연방 관료를 지낸 50대 남성”으로 추측하며 “제인 오스틴의 글을 남자가 썼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팁..
열흘 전까지의 우려가 무색하게도 모든 미디어 채널이 올림픽을 이야기한다. 국가 대항전에 대한 관심이 예전 같지 않다 해도 선수들이 보여준 투지는 그간의 의구심이 머쓱할 정도로 경기에 빠져들게 한다. 코로나19 상황에 시차 없는 경기를 모여서 함께 볼 수 없는 탓인지 소셜미디어의 실시간 이슈는 매 시각 또 다른 올림픽 키워드로 빠르게 업데이트된다. 1894년 세계 평화의 가치를 좇아 시작된 근대 올림픽은 최근 정치·외교 도구화, 상업화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래도 스포츠를 통한 화합이라는 근간은 아직 유효한 부분도 있다.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경기장에 선 선수를 보면 잠시나마 한뜻으로 국민들이 승리를 염원하게 되니 말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사람들이 이런 집단적인 동질감과 연대를 갖게 하는 ‘네이션’(nat..
약 6개월 뒤면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발생한 지 8주년이 된다. 복지행정의 실패 사례로 언급되는 이 사건은 ‘주거빈곤’이 낳은 전형적인 비극이다. 당시 노동력을 상실한 세 모녀의 월수입(25만원)보다 반지하 월세(38만원)가 더 높았다. 하루 식비가 몇천원 수준에 머물렀던 세 모녀에게 월세 부담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8년간 거주하며 한번도 월세를 밀리지 않았다던 세 모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것도 공과금과 월세였다. 월세란 세 모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생각할수록 마음이 무겁고 아프다. 법적으로 ‘주거빈곤’이란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곳에서 생활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엔 세입자의 주거환경, 주거안정성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주거빈곤으로부..
오세훈 서울시장이 자꾸 들썩이고 있다. 몸은 서울시청에 있는데, 마음은 여의도에 가있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기자의 눈에는 그렇다. 지난 6월 말 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현실로 나타난 이후 오 시장의 행보를 돌이켜 보면, 이런 심증을 갖는 게 그리 무리하지도 않다. 오 시장은 최근 보수야권 대선 후보들의 ‘순례 정치’를 마다하지 않는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마치 성지순례 하듯 서울시청을 다녀갔다. 물론 10년 만에 탈환한 서울시장직이 야권에 어떤 의미인지 모르지 않는다. 야권에서 ‘오세훈’은 부활과 재기의 상징이다. 정권 교체의 꿈을 불어넣기에는 서울시청만한 곳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 서울시청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4차 대유행에 맞서는 ‘사령부’란 점이다. 오 시장은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