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9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라는 책이 있다. 레온 페스팅거와 두 명의 동료들이 함께 쓴 사회심리학의 고전이다. 미국의 주부였던 마리안 키치는 어느날 자신이 클라리온 행성에서 온 외계인의 명을 받아 그들의 말을 글로 써낸다고 주장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했던 ‘분신사바’ 같은 행위이다. 그는 1954년 12월21일에 지구가 멸망할 것이며, 진정으로 믿는 자만이 외계인의 안내를 받아 살아남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동조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일종의 공동체를 이루었고, 자신들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직장과 학교를 그만두고 재산을 헌납했다. 지구 멸망 직전인 12월20일 밤, 그들은 외계의 방문자를 기다리기 위해 한곳에 모였다. 하지만 자정이 지나고 밤 12시5분이 되었는데도 외계의 방문자..
작년 12월23일자 경향신문 ‘시대의 창’ 지면을 통해 나는 ‘19대 대선이 18대 대선과 다른 이유’라는 칼럼을 게재한 바 있다. 핵심은 촛불정국을 겪으면서 각 정당 지지층이 모두 대거 이탈해 부동층이 전체 유권자의 절반을 넘게 되었으며, 이번 대선은 누가 그들을 설득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 대선과는 달리 진영대결이 아니라 국민통합이 화두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오늘은 조금 다른 맥락에서 그 이야기를 이어가보려 한다. 흔히 ‘이명박근혜’라고들 말하지만, 박근혜 정부 4년은 이명박 정부 5년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주변의 지식인과 정책전문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심각한 종말론적 위기감을 토로했다. 정권의 단물을 나눠 먹고 있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이념도 세대도 상관없는 위기감이었다. 이명..
작년에 한 인터뷰에서 나는 현 정부를 ‘유랑도적단’에 빗댄 바 있다. 유랑도적단이란 경제학자 맨커 올슨이 이라는 저서에서 사용한 개념이다. 그는 정치권력과 경제적 번영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어차피 성숙한 민주주의가 아닐 바에는 ‘유랑도적단’보다 차라리 ‘정주도적단’이 낫다고 지적하였다. 정주도적단은 이듬해에도 수탈해야 하기 때문에 씨앗이라도 남기지만, 한 번 털고 떠나는 유랑도적단은 씨앗조차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의 단임제 정부가 1987년에 가졌던 역사적 효용성을 차츰 잃어버린 끝에 이제는 유랑도적단과 같은 대통령 무책임제의 폐해만 남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 이 표현을 빌려 쓰면서 이것은 나의 표현이 아니라 올슨의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대통령에 대한 건강한 풍자조..
안희정 지사의 지지율이 무서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보수 후보들의 지지율이 전혀 오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보수층 유권자들의 표심은 갈 곳을 잃었다. 본인의 애매한 자세에도 불구하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지지율이 높은 편이지만, 막상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을 임명하고 출마할 경우 불어닥칠 후폭풍은 간단치 않을 것이다. 황 대행이 그 후폭풍을 뚫고 당선될 꿈을 꿀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다고 본다면, 정치적으로 보이는 그의 행보는 대선보다는 다른 목표를 향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안 지사의 최근 지지율 상승은 갈 길 잃은 보수와 문재인 전 대표에게 불안감을 느끼는 중도층의 지지에 힘입은 바가 크다. 1987년 이후 모든 선거에서 야권을 항상 불리한 출발선에 세웠던 기울어진 운동장이 이번에는 실질적으로..
온 국민이 특검 수사에 몰입하고 있던 지난 며칠 사이, 두 개의 섬뜩한 국제뉴스가 있었다. 하나는 트럼프 시대의 개막이다. ‘미국 우선!’의 막무가내식 밀어붙이기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다른 하나는 중국의 일대일로가 그 첫 번째 결실을 보았다는 기사이다. 중국 저장성 이우시에서 출발한 화물열차가 17일간 1만2500㎞를 달려 영국 런던에 도착한 것이다. 중국, 카자흐스탄, 러시아, 벨라루스, 폴란드, 독일, 벨기에, 프랑스를 거쳐 마침내 영국에 도착했다. 트럼프 시대에 예상되는 변화는 언론을 통해 비교적 많이 소개되었으니 여기서는 일대일로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육로와 해로 두 개의 길을 통해 중국과 유라시아, 중동, 아프리카, 유럽을 거쳐 스칸디나비아까지 연결하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중화인민공화국 수..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가 확정되던 날, 인터넷에는 ‘6자회담 가상도’라는 그림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북핵 문제 해결의 가장 합리적 해법이 되어야 할 6자회담의 참석자들을 사진과 함께 올린 것인데, 다 아는 내용이지만 막상 모아놓고 보면 한숨이 나온다. 트럼프, 시진핑, 푸틴, 아베, 김정은, 그리고 박근혜. 시진핑 정도가 예외랄까, 도무지 제정신으로 보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심지어 이 맥락에서는 아베가 몹시 멀쩡해 보인다는 평도 있었으니 말이다. 이들이 모여서 회담을 한다면 북핵 문제의 합리적 해법은 고사하고 당장 3차대전이라도 시작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지경이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이건 6자회담 참가국만의 일이 아니다. 히틀러의 고향인 오스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