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출범했다. 화두는 통합이다. 하지만 이미 다들 눈치채고 있듯이 달성하기가 쉽지 않은 목표다. 그 상징적 예가 지난 6일의 미국 의사당 습격이고, 그것에 대한 정치적 입장 차이다. 하원의 민주당은 내란선동을 이유로 트럼프를 2번째 탄핵했지만, 공화당 의원 147명은 의사당 습격 이후 당일 밤에 속개된 선거인단 투표 인준에서조차 반대표를 던졌다. 또한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지지자 7420만명의 절대다수(73%)가 여전히 지난 미국 대선이 부정선거였다는 걸 굳건히 믿고 있다. 소수의 과격분자나 음모론자에 국한된 문제가 결코 아니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보면 미국 사회가 뭔가 중병을 앓고 있다는 강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 도대체 어떤 병을 앓고 있을까? 여러 갑론을박이 진행 중이지만 그..
모든 것이 불만인 겨울이다. 코로나19는 접어두고라도 수년 만에 찾아온 폭설과 강추위, 늘어나는 규제와 줄어드는 자유, 열악한 노동환경, 갈수록 커지는 빈부격차와 사회 갈등…. 40여년 전 영국이 꼭 그랬다. 그런데 현상을 보는 정부와 대중의 의견이 달랐다. 총리였던 캘러헌은 “위기? 무슨 위기?”라고 반응했고, 영국의 대표적 대중지 ‘더 선’의 사설은 “지금은 불만의 겨울이다”로 답했다. 당시 영국은 민간·공공 할 것 없이 파업이 번지고 곳곳에서 시위가 이어져 나라 전체가 멈추기 직전이었다. 비상상황 선포를 대비해 군대가 대기하고 있을 정도였다. 인플레이션을 걱정한 정부가 물가안정을 내세워 임금인상에 제동을 걸었던 것이 결정타였다. 당시 집권당이던 노동당 정부가 임금인상을 막자 전통적 지지층까지 실망해..
최근의 한반도 정세는 북한 노동당 제8차 대회 관련 소식이 대내외적으로 많은 관심과 화제를 만들었다. 알려진 대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번 당 대회를 통해 아버지 김정일의 직위였던 노동당 총비서로 추대되었다. 반면 동생 김여정은 당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제외되었다. 당 중앙위 위원 명단에는 여전히 이름이 올라있다. 하지만 당 직책이 종전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에서 부부장으로 강등이 확인된 것도 많은 이야기를 낳았다. 이번 북한 노동당의 주요 당직 인사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본 점은 북한 외교의 미국통인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당 중앙위원회 위원에서 후보위원으로 강등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중국통인 김성남 당 국제부 제1부부장은 당 국제부장으로 승진한 사실이다. 이에 대해 북한이 대미 외교라인에게 핵 협상..
2005년 가을이었던 것 같다. 열린우리당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2004년 총선 승리 후 10년 가까이 이어졌던 패배의 행진을 막 시작하던 때였다. 나중에는 비상대책위가 선거 패배 때마다 되풀이하는 푸닥거리 같은 것이 되었지만 당시로서는 익숙지 않은 일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비감한 분위기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첫 회의가 열렸다. 비대위원들 앞으로 발언 차례가 옮겨갈 때마다 카메라 플래시가 작렬했다. 젊은 국회의원 김영춘이 마이크를 당기며 품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최종 선고가 임박했다. 2019년 8월29일에 대법원전원합의체는,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86억원을 삼성 계열사로부터 횡령해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행위를 유죄로 확정했고, 이에 따라 10월25일에 이 부회장의 형량을 다시 선고할 파기환송심 첫 공판이 열렸다. 결국 최종 선고는 첫 공판 이후 무려 1년3개월 만에 잡힌 것이다. 대법원 상고심 판결로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뤄졌다는 생각은 순진한 것이었다. 파기환송심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는 첫 공판에서 ‘치유적 사법’이라는 명목으로 삼성그룹에 준법감시위원회 설치를 주문하면서도, 이는 이 부회장의 형량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에 정 부장판사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활동을 ..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곳곳에서 ‘다른’ 대한민국이 이야기되고 있다. 이번 위기를 혁신의 기회로 삼자는 취지이다. 복지 분야에서 핵심 주제는 ‘사각지대 없는’ 소득보장이다. 코로나19 재난에서 소득지원이 절실한 불안정 취업자들이 정작 소득보장 제도의 밖에 있다는 문제가 부각된 결과이다. 소득보장의 사각지대는 코로나19 재난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노동시장에서 불안정 고용이 늘어나면서 사회보험이 제 역할을 못하고, 방배동 모자 사건처럼 기초생활보장의 틈새도 여전하다. 알고 있었지만 방관해오던 문제가 다시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고, 지난 1년 내내 대안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우선 기본소득이 힘을 얻고 있다. 모두에게 지급된 1차 재난지원금은 기본소득을 더욱 상상하게 하였고 국회에는 내년부터 월 30만원..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은 소득과 재산에 따라 달리 낸다. 부자는 좀 더 많이 내고 가난한 자는 적게 낸다. 공평하게 내는 거다. 1993년 금융실명제, 1995년 부동산실명제 도입으로 세상은 투명해졌고,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을 제대로 운영할 만한 틀도 이미 마련했다. 그런데 유독 벌금만은 소득이나 재산에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매긴다. 빈부의 차이가 엄연한 세상에서 무차별은 더 노골적인 차별과 다름없다. 소득과 재산에 따라 다른 액수의 건강보험료를 내는 게 당연하다면, 벌금도 그래야 한다. 형벌은 고통을 주어 죗값을 치르는 거다. 벌금형은 돈을 빼앗는 고통으로 죗값을 치른다. 하지만 지금처럼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게 똑같은 액수의 벌금을 매기면, 형벌로서의 효과는 찾아보기 어려워진다. 누군가에겐 벌금형이 아무런..
정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학 때 은사님은 종종 ‘애정남’이라고 답하셨다. 그렇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KBS) 코너명이다.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 정치란 애매한 것들 사이에서 선택과 판단을 하는 것이다.(정치를 남자가 해야 한다는 뜻은 물론 전혀 아니다) 그렇다고 정치가 늘 무언가를 정하기만 해서는 좀 문제가 있다. 사실 선생님이 정치를 애정남이라 부를 때는 항상 ‘운동’이라는 짝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운동에 해당되는 코너 제목은 ‘불편한 진실’. 제도 정치가 자리 잡은 곳에서는 야당 역시 비슷한 역할을 한다.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세상에서 누군가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야 하고, 누군가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물론 결정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것이 정치다. 박근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