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논의를 시작하자마자 검찰은 반발했다. 검찰총장이 포문을 열었고, 일선 검사들도 통신망에 글을 쓰거나 언론을 부추기며 반발하고 있다. 여차하면 집회라도 열 태세다. 일부는 사표를 내면서 의지를 불태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행태는 반복적이다. 10년 전에도 그랬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검찰총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국제회의가 열리는 중이라 당장 그만두지 못한다는 핑계를 댔지만, 그래도 언성은 높았다. 이번에도 “직을 걸고 막을 수 있다면야 100번이라도 걸겠”단다. 역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검찰총장은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자는 입법 움직임에 대해 “검찰총장이 미워서 추진되는 일”이라 규정하나, 서너 달만 있으면 임기가 끝나는 검찰총장 때문에 수사구조의 근간을 다시 짠다..
기본소득이 대통령선거에서 핵심 주제로 자리 잡을 듯하다. 현행 소득보장의 한계를 넘어서자는 논의이기에 전향적인 일이다. 다만 기본소득이 국가정책의 장으로 들어온다면 앞으로의 토론은 엄격해야 한다. 우선 기본소득의 실체를 명확히 하자. 근래 기본소득이 바람을 타면서 웬만한 현금복지에 기본소득 이름이 붙고 있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상표는 존중하더라도 내용물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기본소득 바구니에는 확연히 성격이 다른 네 가지 유형이 담겨 있다. 첫 번째는 모두에게 상당한 금액을 지급하는 완전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 옹호자들도 근래 충분성을 명시하지 않듯이 지금 논의 대상이 아니다. 두 번째는 완전기본소득에서 금액을 낮춘 소액기본소득이다. 관련 법안도 제출될 만큼 정치권의 의제로 부상했다. 세 번째는 아동,..
여러 전망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 및 북핵 관련 외교정책이 어떻게 전개될지 말이다. 취임 초기이다 보니 대부분의 분석들은 무엇이 달라질 것인지, 그 ‘변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해는 되는데, 사실 현상타파를 원할수록 잘 변화하지 않는 현상유지 구조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새삼 다시 떠오르는 기억은 1993년 미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국방부(Pentagon) 내부를 관광할 기회가 있었는데 일단 놀란 것은 건물의 크기였다. 5층 건물에 불과하지만 바닥면적(floor area)의 규모가 당대 세계 최고층이었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의 3배가 넘는다고 했다. 하지만 더욱 놀란 것은 그 큰 건물을 짓기 시작한 때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선언하기 이전이었다는 ..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버스 정류장이 있는 큰길로 나가려면 20개쯤 되는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이 계단이 해마다 말썽이다. 콘크리트로 매년 새로 발라 놓아도 겨울 한파가 한번 몰아치고 나면 금이 가고 으스러져서 다니지 못할 정도다. 3년째 그러더니, 올해는 나무로 공사를 했다. 이제야 제대로 했다 싶다. 시멘트가 보기에는 더 튼튼해 보일지 모르지만, 눈과 비바람, 추위와 더위를 잘 버티는 것은 오히려 나무라는 사실을 바뀐 관리소장님이 알고 있는 모양이다. 잘 큰 떡갈나무는 거대하고 힘차다. 반면 대나무는 아무리 큰 것이라도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가느다란 것들은 태풍이라도 올라치면 꺾일 듯이 눕는다. 그래도 떡갈나무가 부러지고 넘어갔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대나무가 그랬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떡..
심장병으로 백기완 선생님의 건강이 많이 나빠지신 후 어느 선배한테서 놀라운 말을 들었다. 선생님은 “나는 병원에서 누워 죽지 않겠다, 거리에서 데모하다 죽겠다”고 하셨단다. “…그렇지, 누워만 있다 가면 백기완이 아니지….” 그는 이렇게 삶 자체에 대해서도 가르쳐주셨다. 재작년 한내 노동자 역사 자료관 개소식에서 뵀을 때 이미 백 선생님은 많이 쇠약해져 계셨다. 부축을 받고야 한 걸음씩 옮기셨다. 그러나 막상 마이크를 잡자 특유의 쇳소리로 나름 한국 노동운동사를 공부하고 생각한다는 청중을 한방에 내리치셨다. “노동운동은 자본주의에 낑겨서 살려는 생활운동이 아니야!” 백기완 선생님이 가졌던 힘은 기백과 원칙에서 나왔다. 그는 한반도 분단의 아들이고 김구·장준하에게 배운 민족주의자며 동시에 노동해방 사상을 ..
몇 년 전 ‘매력 자본’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영국의 사회학자 캐서린 하킴이 쓴 책 의 한국어판 제목이기도 하다. 하킴은 돈, 교육, 인맥으로 대표되는 경제 자본, 문화 자본, 사회 자본뿐 아니라 개인의 매력도 중요한 자본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매력 자본을 다시 여섯 종류로 나눠 아름다운 외모와 건강한 신체, 상대를 편안하게 만드는 대인관계 능력과 재치, 패션감각, 이성을 대하는 기술을 꼽았다. “얼마면 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곧 권력이다.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부를 과시하며 남들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점을 피력한다. 요즘은 장래희망으로 건물주를 꼽는 아이들도 있을 정도니 경제력이 매력이라는 명제에 마음으로 반대할지는 몰라도 인정하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과..
최근 인터넷상에서 한·중 사이에 문화유산에 대한 논란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작년 말에 한국의 전통의상인 한복과 고유의 음식인 김치가 중국에서 유래하였다는 중국 내 일부 누리꾼들의 주장에 대해 한국 누리꾼들이 이를 바로잡으려는 대응이 나타났다. 그런데 올해 1월에는 중국의 사법 및 공안을 담당하는 권력기구인 중국공산당 중앙정법위의 SNS 공식 계정에 한국이 김치와 관련, 사사건건 논쟁을 벌이는 이유가 자신감 결여에 기인한다는 글이 게재되었다. 지난 16일에는 중국의 대표 검색 사이트인 바이두(百度)에서 윤동주 시인을, 위키피디아 중문판에서는 세종대왕·김구·김연아·이영애 등 한국인이 존경하고 자랑하는 인물들을 중국 조선족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국의 기성세대들은 학창 시절 윤동주 시인의 ‘..
우리의 공교육은 표준화교육 모형에 기초하고 있다. 교육은 국가단위로 표준화된 목표에 따라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교육과정이라는 ‘트랙’을 제시하며, 학생들은 동일한 과제를 경쟁적으로 수행하는 ‘트랙 주자’가 된다. 오직 동일한 목표를 향해 달리되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 차이는 비교하기 쉬우며, 인간의 우열을 나누는 기준으로 활용된다. 학교는 이 기준에 따라 졸업장과 성적을 발급할 독점권을 가지게 되었고, 학생의 장래를 결정할 엄청난 권력을 쥐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모형으로 ‘생산’된 인간 능력의 획일성에 대해 사회적 불만이 점차 높아졌고, 수많은 미래교육 프로젝트들이 새로운 모형의 학교 형태를 제시하였다. 이들이 보기에 새로운 교육은 복잡하고도 중층적인 세계를 탐색하는 일이어야 하며, 교육과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