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오늘인 2016년 12월31일의 밤, 부산의 중심가에 있었다. ‘송박영신’ 제10차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그날 집회는 일본 영사관 앞에서의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을 겸했다. 6만명의 시민과 민주노총 노동자들 그리고 학생들이 부산의 간선도로를 메우고 행진했다. 그날 전국의 촛불집회는 저마다 타종행사와 새해맞이 축제를 겸했다. 거리에서 세모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는 사람들 마음의 흐름은 희망과 기쁨이었다. 사람들은 ‘박근혜 정권 퇴진’과 ‘나라다운 나라’를 외쳤다. 영하의 거리도 춥지 않아 사람들은 함께 노래 부르고 많이 웃었다. 저마다의 개인적 소망과 공동체를 위한 마음이 교향곡처럼 된 자리였다. 그 사람들은, 또 그 마음들은, 지금은 어디에들 있을까? 4년이 지나 새해를 각자 집에 갇혀 맞아..
여느 때와 다른 세밑이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일수록 남 탓과 악다구니도 늘게 마련이다. 반면 선하고 긍정적인 에너지의 진가도 더욱 도드라지게 된다. 올 한 해 방탄소년단(BTS)이 미국에서 더욱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 이유 아닌가 싶다. 이들의 이름을 들어보긴 했지만 사실 잘 몰랐다. 아니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겠다. 마음 한쪽에 아이돌 육성시스템과 그 문화가 확산시키는 외모지상주의 등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지난 11월 하순 어느날, 차를 몰고 가며 듣던 라디오 음악방송에서 이들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영어가 조금 섞여 있긴 했지만 분명 우리말 노래였다. 귀가 쫑긋해졌다. “잠시 두 눈을 감아 여기 내 손을 잡아 저 미래로 달아나자.” 팬데믹으로 ..
천지개벽이다. 코로나19가 모든 것의 판단 기준이 됐다. 출근을 할지 말지, 뭘 먹을지, 어딜 갈지, 사람을 만나야 할지…. 휴가, 경조사 같은 개인단위 결정은 물론이고 사업계획, 신제품 출시, 신규채용, 시설투자 등 조직단위의 결정도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 9월에 학기를 시작하는 미국과 유럽 대학은 신입생 등록 포기가 크게 늘었다. 유명 대학 곳곳이 입시 요강을 완화해 국제 학생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어차피 비대면 수업이니 유학 갈 필요 없이 온라인으로 강의를 듣고 지도받는 방식으로 학사를 조정해 전 세계에서 신입생을 모은다. 실업률은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그중에서도 청년실업 증가세가 눈에 띈다. 가뜩이나 취직하기 어려운데 신규고용은 줄고 창업의 길도 아득하다. 고용의 질도 나빠졌다...
닥터(Dr.) 질 바이든은 미국 대통령 당선자 조 바이든의 부인이다. 트위터에는 자신을 “평생교육자(lifelong educator)”라고 소개한다. 왜 하필이면 이 단어를 선택했을까? 질 바이든은 평범한 여성들처럼 경력단절을 경험했다. 이미 이혼 경력이 있는 그는 아내와 어린 딸을 교통사고로 잃고 두 아들을 홀로 기르고 있던 조 바이든을 만나 결혼한다. 결혼 후 교사생활을 계속하는 동안 그는 웨스트 체스터 주립대학에서 읽기교육 분야로 석사학위를 받는다. 전일제로 공부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학기당 한 과목씩밖에 수강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얼마 후 딸이 태어났고,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전업주부 기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2년 후 병원 장기입원아동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복귀하게 되고 석사 때 배운 ..
정계 개편의 서막이 올랐다. 안철수 대표가 마치 넷플릭스의 드라마 처럼 던진 퀸즈 오프닝(체스의 초반 전략)으로서 서울시장 도전 말이다. 상황 전개에 따라 시즌1의 결말이 여권의 서울시장 선거 패배는 물론 안철수·윤석열(+α) 중도연합의 대선 석권까지 배제할 수 없다. 여권은 분열할 것이다. 나는 조국 사태 초기 여권에 조국 후보자를 철회하라고 조언한 바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이후에도 가치와 중장기적 전략, 전문가 경청 대신에 단기 시야 속에서 정치 어젠다는 물론이고 코로나19 방역조차 오만하고 무능하게 대처했다. 더구나 그 폭압적 군사독재 시절에 진보의 가치를 위해 목숨을 걸어 본 적도 없는 인간들이 감히 진보의 이름으로 그 중요한 검찰개혁 과제를 향후 미로 속으로 밀어 넣었다. 절차적 적법성과 정당성..
한·중관계의 현안을 생각하다 벽에 부딪힐 때면 가끔씩 시각을 바꾸어 국제사회는 한국과 중국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했다. 그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이 통일과 민족주의 사이의 모순 같은 연계성이었다. 지구촌에는 아직 두 곳의 분단국이 존재한다. 하나는 한반도에 위치한 한국과 북한이고, 다른 하나는 대만해협을 사이에 둔 중국(中華人民共和國)과 대만(中華民國)이다. 물론 차이도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1971년 10월에 유엔에서 중화민국을 대신하여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국가로 인정받고 정식 회원국은 물론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지위까지 차지했다. 반면 한국과 북한은 1991년 9월18일에 개최된 제46차 유엔 총회에서 각각 별개의 의석을 가진 회원국으로 동시 가입하였..
지금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그동안 우리는 코로나19 방역을 잘했다고 인정받았다. 어떻게 잘할 수 있었을까? 전문가들의 진단은 대개 일치했다. 훌륭한 의료보험제도, 정부의 선제적 개입, 뛰어난 검진 능력, 치밀한 추적과 투명한 정보 공개 등이 자랑스러운 성과를 낳았다는 것이었다. 침착한 방역 리더십이나 의료진의 눈물겨운 헌신도 손꼽히는 요인이다. 한 가지 덧붙일 게 있다면 그것은 ‘국가’가 아니라 ‘지방’의 힘이다. 지방은, 모든 것을 걸고 코로나19와 맞서는 투쟁의 장이었다. 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해 각종 자원들을 동원, 조직, 배치한 단위도 지방이었고 이웃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스스로 자기봉쇄를 취한 시민공동체 형성도 ‘지방’에서 이루어졌다. 어느 학자가 우리의 방역 모델은 전체주의 모델도..
경향신문에 정기 기고를 한 지 6년 반이 넘었다. 4주마다 쓰는 짧은 글이지만 퍽 힘든 일인지라 언제 면할까 하는 고민이 커지던 참이었다. 마침 필진 개편과 맞물려 이 글을 마지막으로 접게 되었다. 아직 할 말은 많지만, 지금은 좀 쉬어야 한다. 그동안 주로 대학개혁을 논해왔지만, 내가 바라는 개혁 방안들은 실현되지 못했다. 비리사학을 비판하거나 고위 공무원을 실명으로 거론한 까닭에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거나 위협을 당한 적도 있다. 하지만 맥이 빠지다가도 일면식도 없는 분의 고마운 반응이나 날카로운 조언이 큰 힘이 되곤 했다. 공부가 부족한 탓에 글마다 아쉬움이 많았지만, 무엇보다도 교육의 참뜻을 파고들지 못한 책임이 크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을 입에 올렸으되 교육의 본령을 깊이있게 성찰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