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대서양 중심의 세계지도를 보며 자란다. 이 대서양 중심 지도를 보면 세계의 중심은 유럽, 남북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 사회의 중심인 동부에서는 유럽이 서부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반면 동아시아는 저 오른쪽 끝에 자리 잡은 변방이다. 한때 동아시아를 ‘극동(Far East)’이라고 지칭했던 이유다. 이 대서양 중심 지정학적 관념은 미국의 세계전략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역사적으로 미국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맹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다. 나토는 1949년 출범 당시엔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태리를 포함해 12개국이었지만 현재는 동유럽 국가들을 포함, 30개국이 회원국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군사동맹이고 또 동시에 민주주의 가치..
세계 꼴찌라는 출생률과 함께 한국 사회의 어두움을 보여주는 또 다른 세계 1위 지표는 자살률이다. 동전의 양면 같은 두 가지를 생각해보면, 한국인들은 참으로 기괴하고 모순적인 사회를 견디며 살아간다. (또는 그래서 죽는다.) 일면 더없이 화려하고 선도적이며 경제·군사·문화 영역에서 이미 선진국이지만, 그 금자탑은 지속 불가능성·불평등·부패 위에 서 있다. 그런 이중성은 한국인의 집단심성에도 반영돼 있을 것이다. ‘국뽕’은 여전한 헬조선의 현실에 눈감기 위한 일종의 자위적 심리의 발현이거나, 지배 이데올로기일 것이다. ‘나’의 우울과 비관, 타인을 향한 혐오와 억울함도 같이 늘 파도처럼 넘실댄다. 2018년에서 2019년 사이 20·30대 여성의 자살률은 20대에서 25.5%, 30대에서 9.3%로 크게 ..
정치의 목적은 무엇일까? 아니, 그보다 우리가 사는 목적은 무엇일까? 거창한 이념이나 명분을 이루기 위해 사는 이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기왕 태어난 거 행복하게 사는 것이 삶의 목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세계행복보고서가 나왔다. 매년 3월20일 ‘세계 행복의날’,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한다. 핀란드와 덴마크가 엎치락뒤치락 1위를 하는 그 보고서다. 행복을 점수로 환산하고 순위를 매긴다는 것이 행복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만 사실 행복보고서는 정책결정자를 위한 지표 자료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보고서는 행복을 여섯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소득과 기대수명 같은 객관적 지표에 사회적 지원, 살면서 누리는 선택의 자유, 기부..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한 지 이제 막 두 달이 되었다. 미국의 정치시스템에 비추어 본다면 아직 각 분야에서 구체적인 정부정책의 수립 과정이 끝나지 않았을 시기이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대중국 견제와 압박에서는 비교적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바이든 대통령과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보여준 중국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압박의 의지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대선 승리 및 의회의 상·하원을 장악한 민주당과 바이든 행정부가 지금까지 보여준 대중정책의 방향성은 크게 세 가지로 특징지을 수 있다. 첫째, 전임 트럼프 행정부의 독단적이고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에 대한 계획이 없는 무모한’ 대중정책에는 반대하지만 미국의 국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중 압박정책의 필요성에는 동의한 것이다. 둘째, 중국과 협..
1972년 유네스코 국제교육발전위원회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교육개혁 보고서로 평가받고 있는 ‘존재를 위한 학습(Learning to Be)’을 발표한다. 이 문건 작성은 68혁명 당시 교육부 장관이었던 에드가르 포르가 주도했다. 그가 교육부 장관이던 시절 프랑스의 대학은 극도로 폐쇄적이고 엘리트 중심적이었으며 교수의 권위는 하늘을 찔렀다. 당시 소르본 대학에서 시작된 68혁명은 이런 낡아빠진 교육 관행에 대한 저항에서 출발했다. 혁명이 일어난 지 다섯 달 만에 의회는 고등교육을 ‘전면적으로’ 개혁하는 법안을 발의한다. 그 핵심은 대학 구성과 거버넌스를 혁신하여 자율적이고 개방된 국립연합대학체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 중심에 포르가 있었다. 유네스코는 그런 포르에게 글로벌 교육개혁을 위한 보고서 집필을..
인터넷과 민주화운동의 공통점은 ‘트릭 미러’(왜곡된 거울)이다. 지아 톨렌티노 뉴요커 기자의 걸작인 책을 보다가 드는 생각이다. 인터넷은 한때 해방과 자유의 공간으로 찬사받았다. 하지만 인터넷은 결국 각 개인의 불완전한 자아에 정직하려고 하는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왜곡된 장이라는 걸 이 책은 드러낸다. 어쩌면 내가 참여했던 80년대 민주화운동도 그 경이로운 성취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사회를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기능을 퇴화시킨 것인지도 모른다. ‘적폐’와 투쟁하는 가운데 부지불식간에 자아와 정체성은 부풀려지고 권력 욕망은 스스로를 속인다. 나는 민주화운동+인터넷 시대의 의도하지 않은 결합이 오늘날 나르시시즘, 성찰의 부재, 증오, 내로남불, 수치심 결핍이 작동하는 하나의 메커니즘을 생각한..
3기 신도시 지정 지역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부동산 불법투기를 했다는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폭로가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국민의 분노와 좌절이 크다는 방증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사실을 규명하라고 신속하게 지시했다. 4년 재임 기간 중에 이처럼 문 대통령이 신속하게 반응한 사건은 드물었다. 수사 권한이 없는 합동조사단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자, 이번에는 총리가 나서서 국가수사본부·국세청·금융위원회 등이 참여하는 합동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해 발본색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정부의 신속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LH 직원들을 처벌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
지난주 일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구에 도착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텔레비전에서 그를 보는 일이 편치 않아 짐짓 딴청을 피우고 있는데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고향에 온 느낌입니다.” 포토라인에 선 윤석열의 소회다. 아니나 다를까 온갖 미디어에 불이 났다. 윤석열이 왜 대구를 방문했는가. 대구를 고향이라고 느낀다는 그의 말은 무슨 뜻인가. 결론적으로 그는 정치를 하기 위한 준비로 보수의 성지 순례를 왔다는 얘기다. 나로서는 윤석열이 정치를 하건 말건 다툴 생각이 없다. 그런데 그가 보수의 성지 순례로 대구를 방문했다는 대목은 신경에 거슬린다. 그런 걸 염두에 두고 대구를 찾아왔다는 윤석열의 속내가 마뜩지 않다. 대구는 보수의 성지가 아니다. 어떤 학자들은 ‘대구의 정체성은 보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