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낮 무더위에 시달리다 비빔면 생각이 났다. 매콤한 비빔면에는 시원한 오이채가 들어가야 제격이다. 동네 할인마트에 들렀다.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오이 두 개에 4980원. 비빔면 4개들이 한 팩은 2790원이다. 이쯤 되면 오이채에 비빔면을 넣어먹는 것인지, 비빔면에 오이채를 넣어먹는 것인지 아리송해진다. 나는 이렇게 오늘도 ‘미친 물가’를 체감했다. 요즘 발표되는 경제 지표는 몇달 전에 봤던 그 지표가 아니다. 6% 물가, 무역수지 적자, 환율 1300원, 코스피 2400. 경유 ℓ당 2100원. 숫제 다른 나라 같다. 그렇다고 IMF 외환위기와 같다며 호들갑을 떤다면 ‘오버’다.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니고, 이 상태가 ‘뉴노멀’로 굳어질 것이라 보기도 어렵다. 하지만 얼굴에 웃음기를 가시게 ..
여당 일각에서 갑작스레 주장하듯 아예 살인 자체가 없었다면 모르지만, 16명의 목숨을 앗아간 일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흉악한 범죄다. 흉악범에게도 인권을 보장해야 할까. 보통의 정의 관념과 달리 인권과 헌법의 원칙에 따르면 흉악범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흉악범이라도 형사소추를 앞둔 범죄자라면 무죄추정의 원칙, 피의자 방어권 등 적법절차 원리가 어김없이 지켜져야 한다. 그렇다고 오해할 필요는 없다. 피의자 인권보장이란 개념이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무조건 용서하고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한창 논란 중인 ‘북한 어민’ 사건은 어떻게 처리하는 게 옳을까. 윤석열 정부의 주장처럼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의 지위를 갖고 있으니, 북한으로 돌려보내..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했던가. 지난해 3월4일 정치에 뛰어들겠다며 검찰총장직을 사퇴한 윤석열 대통령의 마지막 퇴근길. 윤 대통령이 대검 청사 로비 엘리베이터에서 뒷짐을 지고 직원들 앞으로 걸어나오는 장면에서 든 예감이다. 뒷짐지기는 쇼트트랙 선수들도 하지만 흔히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려는 사람들이 보이는 자세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의 걸음걸이에서 폐쇄적인 최고 사정기관에서 27년을 보내며 몸에 배었을지 모를 권위주의와 엘리트주의,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가 연상됐고,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어떻게 발현될지 서늘한 느낌이 왔다. 국민통합의 책무를 지는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 달라지지 않을까. 자기확신 속에서 오래 살아온 중년의 인격이 바뀌는 것은 물고기가 나무에 오르는 것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긴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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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 정치를 떠올리게 하는 ‘윤핵관 브러더스’의 등장은 자못 자극적이다. 하필 조폭 영화의 단골 대사인 ‘한번 형(동생)은 영원한 형(동생)’이 앞세워졌다. 여당 대표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형 윤핵관(권성동 원내대표)과 무관의 동생 윤핵관(장제원 의원)이 손을 맞잡고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다짐했다. 당초 계획과 달리, ‘윤핵관 브러더스’가 여권의 실질 권력임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퍼포먼스를 벌인 꼴이다. 치명적인 대통령실 사적 채용 논란에서 윤핵관 브러더스의 등장은 더 고약하다.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이 대통령을 실드치기 위해 ‘내가 추천했고 장제원 전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에게 인사 압력을 넣었다’고 자복해 버렸다. 의도치 않게, 끊이지 않는 비선과 인사 논란에 이들 윤핵관 브러더스는 물론 제3, 제4..
문재인 전 대통령이 현 정부 인사들에게 이라는 책의 일독을 권했다고 한다. 이 보도를 접하면서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했다. 하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귀순 어민 강제 북송 사건이 불거진 상황이어서 여러 해석이 따라붙는다. 지금 문 전 대통령의 의도가 무엇이든, 나는 그가 재임 시절 지정학을 진지하게 고민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가 세계에서 가장 예측 불가능한 두 명의 정치지도자인 트럼프와 김정은을 한자리에 모으고 평양 능라도 5·1종합경기장에 모인 15만 군중 앞에서 연설했을 때, 국민의 3분의 2가 그를 지지했고 과반수가 북한의 약속 이행을 믿는다고 여론조사에서 답했다. 불과 4년 전의 일이다. 그러니 그 후에 벌어진 일의 책임을 전적으로 그에게만 돌리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하지만 ..
메타버스 내 아바타의 행위를 ‘범죄’로 처벌하겠다는 법안들이 제안되고 있다. 메타버스는 상상의 공간이다. 현실 속 경험할 수 없었던 일들을 가상으로 경험한다. 건물이나 농사를 짓고 아이, 나라, 경제를 키우고, 전쟁이나 문명을 일으키고, 이것들을 파괴하고 소멸시킨다. 동물이 되어보기도 하고 신이 되기도 한다. 메타버스 이전의 시대에는 기존에 텍스트나 이미지로만 이루어진 공간에서 제한적으로만 상상하던 것에 생생한 영상을 더하여 실감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상상세계 속의 일을 그 내용에 따라 처벌한다는 것은 상상의 자유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메타버스 시대 이전에 우리는 영화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폈다. 영화는 스토리 전개에 개입할 수 없고 등장인물의 관점을 취할 수 없지만 메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이제 겨우 두 달 조금 넘었을 뿐이지만 벌써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30%대 초반으로 추락한 지지율이 그것을 보여준다. 여론조사기관들이 분석한 지지율 하락 원인은 대동소이하다. 인사 실패, 경험·자질 부족, 경제·민생 소홀, 소통 미흡, 독단 등이다. 경험도, 능력도 없으면서 태도까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것이 지난 5일 도어스테핑이다. 윤 대통령은 인사 실패를 묻는 기자들 질문에 손가락질을 하며 “전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들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봤느냐. 다른 정권 때와 한번 비교를 해보라. 사람들의 자질이나 이런 것”이라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그날 박순애 교육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면서는 “임명이 늦어져서, ..
동료연구자가 늦은 밤에 전화했다. 슬프고도 우울한 목소리였다. 그는 ‘다음 학기부터 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여러 대학의 공개채용에 지원해 볼 생각이지만, 자신은 없다고도 했다. 그는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10여년이 넘게 글을 쓰고 강의했다. 대학 강의실에 있을 때, 활기가 넘치던 동료였다. 그의 떨리는 목소리에는 심각한 존재의 위기를 맞이한 이의 불안감이 담겨 있었다. 나의 위로는 그를 더 비통하게 하는 듯했다. 며칠 후에는 동료 여성 연구자에게 전화를 받았다. 직장이 있는 박사학위 소지자인데, 그간 맡아왔던 대학 강의에서 해촉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그에게 대학 강의는 삶의 소중한 영역이었다. 더 이상 가르치지 못하게 되어 그의 마음에도 어둠이 깔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