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뛰었다. 박지성이 수비수 2명을 제치고 골문을 향해 질주할 때. 위스키나 면도기 광고에 나올 때의 어색한 박지성이 아니었다. 당당하고 위엄이 넘쳤다. 매혹적인 그의 질주는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았다. 인터넷의 관련기사마다 마우스를 옮겨대며 클릭하기 바빴다. 월드컵의 신은 내게도 이렇게 강림하셨다.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박지성의 왼발에 경배하던 시간, 서울 조계사에선 200여명의 사람들이 두 손 모아 기도하고 머리 숙여 절하고 있었다. 지난달 31일 소신공양(燒身供養)한 문수 스님을 추모하는 ‘1080배 참회 정진 기도회’였다. 조계사 일주문 앞에 25일 개원한 서울 한강선원에서 4대강 생명살림을 위한 24시간 참회정진 기도를 하던 수경스님이 기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 2010-05-25..
이달 초 영국 왕실은 왕위계승서열 3위인 해리 왕자가 공격용 헬리콥터 아파치의 조종사 훈련과정을 밟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육군 장교인 해리 왕자는 2007년 말부터 2008년 초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한 적이 있다. 소속 부대가 탈레반의 타깃이 될 것이라는 우려로 10주 만에 귀국했지만, 그는 지금도 아프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영국 왕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 전통은 널리 알려져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공주의 몸으로 군용 트럭을 몰았고, 여왕의 아들 앤드루 왕자는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아르헨티나명 말비나스) 전쟁에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미국 지도층도 영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
“스스로가 ‘기자’라고 불리기 시작하던 순간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권력을 감시하고, 약자의 편에 서고, 어떤 유혹과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진실만을 말하는 자들에게만 허락된 이름, 그게 기자라고 배웠습니다.”(MBC 보도부문 사원 252명 ‘김재철, 황희만 선배께 드리는 글’) 가슴이 먹먹하다. 기자를 업으로 삼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그러할 테다. 모든 기자는 처음 ‘기자’라고 불리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기쁨과 자부심, 부담과 두려움이 교차하던 순간을. 세월이 흘러 그저 그런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내게, MBC 기자들은 ‘그 순간’의 무게를 일깨워주었다. 부끄러웠으되 가슴은 뛰었다. MBC가 파업에 들어간 지 오늘로 만 한 달이 되었다. 1992년 최창봉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벌인 52일간의 파업 ..
저는 검사입니다. 요즘 공공의 적이 돼 버린 검사, 맞습니다.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1심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다들 저희를 손가락질합니다. 야당이나 진보언론은 그렇다 칩시다. 보수 신문이 거들고, 여당 일부에서까지 눈을 부라리는 건 못 견디겠습니다. 쏟아지는 화살을 고스란히 맞고 있으려니 속에서 천불이 납니다. 왜 무리한 기소를 했느냐고요? 지방선거를 눈앞에 둔 정치인들은 검찰만 쳐다보고, 보수 신문은 한 전 총리 사건으로 지면을 도배하는 데 버텨낼 수 있었겠습니까. 「PD수첩」사건을 생각해 보십시오. 임수빈 전 부장검사는 능력을 인정받는 분이었습니다. 그대로 있었으면 ‘검찰의 별’이라는 검사장을 달고, 더 높은 자리도 바라보았겠지요. 그런데 그분은 PD들을 기소할 수 없다고 버텼습니다. 결과는 어..
오랜만에 웃었다. 웃음은 건강과 장수의 비결이라니, 그들에게 감사해야겠다.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이야기다. 우선 김우룡 전 이사장. 신동아 인터뷰에서 “김재철 MBC 사장이 ‘큰집’에 불려가 ‘조인트’ 까이고 매도 맞고 해서 MBC내 ‘좌빨’을 척결했다”고 털어놨다. 이 자폭성 발언으로 그는 실업자가 되었다. 다음은 최시중 위원장. 여기자포럼에 참석했다가 “여성들이 직업을 가지기보다 현모양처가 되기를 바란다. 딸 둘을 (모 여대) 가정대에 보냈고 대학 졸업하자마자 이듬해 시집을 보냈다”고 말했다. 여성 비하 논란이 일자 “사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여성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면 정중히 사과드린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하지만 ‘현모양처’의 표본으로 든 맏딸이 한나라당에 서울시..
김연아가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프리스케이팅에 출전하던 날, 나는 인터뷰 약속을 잡아놓은 상태였다. ‘사형수의 어머니’로 불리는 수녀님을 만나기로 돼있었다. 인터뷰 시간은 오후 2시. 늦지 않으려면 1시30분에는 출발해야 했다. 문제는 김연아의 경기시간이었다. 1시21분에 시작하는데 다 볼 수 있으려나, 그 뒤에 아사다 마오 경기는 어떻게 하지….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결국 아사다 연기까지 보고 김연아의 우승이 사실상 확정된 것을 확인하고서야 회사를 나섰다. ‘직업정신’은 뒷전으로 밀렸다. 약속에 5분쯤 늦었더니, 우리 나이로 여든인 노수녀가 건물 밖까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면목이 없어 핑계를 댔다. 김연아가 금메달을 땄다고, 그걸 보고 오느라 늦었다고. 순간, 수녀님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났다. 그를 ..
이명박 대통령이 영국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연내 남북정상회담’ 카드를 꺼내고,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이 이를 왜곡 발표했다가 사의를 표명하고,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대통령의 발언을 ‘마사지’하다 빚어진 일”이라며 김은혜 대변인의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주말에서 이번 주초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만모한 싱 인도 총리와의 한·인도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2010-01-25 | 경향신문 DB] 김 대변인 개인에게는 안된 얘기지만, 청와대로서는 그의 ‘사고’로 이전의 ‘사고’를 덮은 셈이 됐다. 김 대변인이 덮은 사고는 이 대통령이 인도·스위스 방문에 맏딸 주연씨와 외손녀를 데리고 간 일이다. 여론은 싸늘했지만 대다수 언론은 여론을 외면했다. 그러곤 김은혜..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았다. 수원지검은 시국선언 교사에 대한 징계를 미뤘다는 이유로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된 김 교육감에게 14일 오후 2시까지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경기도 교육청은 이와 별도로, 지난해 8월 말부터 오는 4월 말까지 4개 기관에서 5차례 감사·조사를 받았거나, 받고 있거나, 받을 예정이다. 김 교육감과 경기도 교육청 직원들에겐 참으로 미안한 얘기지만, 이런 뉴스들이 불쾌하지만은 않다. 역설적으로 ‘김상곤의 힘’을 웅변하기 때문이다. 요즘 경제지에선 이런 부동산 기사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경기 양평군 용문면 전원주택지, 매매가 1억2000만원, 경기도 교육청이 ‘혁신학교’로 지정한 조현초등학교 가까움…”(서울경제 1월11일). 혁신학교는 경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