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4일 열린 기후정의행진에 서울시청부터 남대문까지 3만5000명의 시민이 빼곡히 자리를 채웠다. 여느 집회에는 단일 구호가 쓰인 손팻말이 등장하지만 이곳에는 박스를 잘라 손수 자신의 구호를 쓴 피켓이 많았다. 3만5000명이 각자의 목소리가 쓰인 피켓을 머리 위로 번쩍 들자 무대의 스피커가 내는 소리보다 더 큰 광장의 소란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이 자리에 나는 쪽방과 고시원의 주민들, 기초생활수급자, 거리 홈리스와 함께 참여했다. 우리 역시 각자의 생각을 담은 피켓을 하나씩 만들어 행진에 함께했다. ‘기후위기로 물가가 올라서 수급비로 못 살겠다’ ‘기후위기 시대, 모두의 주거권을 보장하라’ ‘기후위기 때문에 우리들만 숨막힌다’ ‘집값 오른다고 지구 하나 살 수 있냐’와 같은 내용들이었다. 뜨거운..
파키스탄의 홍수가 심각하다는 말을 들은 누군가가 새삼스러울 것 없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거기 원래 자주 홍수 나는 곳이잖아.” 파키스탄 정부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기 불과 며칠 전이었다. 그때도 이미 누적 사망자는 1000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맞다. 그의 말처럼 파키스탄은 원래 몬순철인 6~9월이 되면 종종 홍수가 나곤 한다. 하지만 올해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파키스탄에서는 지난 6월부터 두 달 넘게 하루도 멈추지 않고 쉴 새 없이 비가 내렸다. 몬순이 시작된 후 불과 3주 만에 이미 한 해 전체 강수량의 60%에 달하는 비가 쏟아졌고, 현재는 190%에 육박한다. 파키스탄은 지난 두 달에 걸쳐 꾸준히 ‘익사’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홍수가 많이 나는 지역..
태풍 힌남노가 남긴 상처는 컸다. 재앙에 가까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전 세계는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전기 에너지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전체의 3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전력 부문의 에너지믹스는 매우 중요하다. 지난 8월30일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총괄분과위원회는 실무안을 공개했다. 이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의 목표는 ‘원전·신재생 확대 등으로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배출 목표 달성’이며, 2030년 전원별 발전량 기준으로 원전 비중을 32.8%, 신재생에너지 21.5%, 석탄발전 21.2% 정도 제시하였다. 2020년 기준 신재생에너지는 총발전량의 약 7.4%를 차지한다. 2030년까지 14.1%포인트의 비중을 끌어올려야 하며, 이는 연평균 ..
기후선진국들은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현재를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기후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겐 한국의 현황을 면밀히 파악해서 필요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과학적 토대가 필요하다 병원에 가서 정확히 내 몸의 문제점을 찾아 치료하듯, 이제 한국의 탄소현황을 면밀히 진찰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지금 유럽의 한 작은 마을에서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각국에서 모인 과학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서울에서 13시간 비행기를 타고 다시 2시간 기차를 타고 들어온 네덜란드 와흐닝엔 외곽의 작은 호텔에서는 기후변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와 메탄에 대한 모델링과 모니터링에 대한 국제학술대회가 열리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몇 년간 온라인으로 회의가 진행되기는 했지만, 3년 만에 열리는 대면..
소싯적 내 꿈은 태국에 한국식 팥빙수 가게를 여는 거였다. 그래서 동남아 인류학을 공부했는데, 사실 연구는 염불이었고 나는 잿밥인 태국에만 꽂혀 있었다. 지금도 남들은 ‘내 새끼’가 미래에 기후변화로 망해버린 영화 나 의 삶을 살까 봐 걱정하는데 나는 동남아 해안이 잠길까봐 두렵다. 다음 퀴즈를 풀어보자. 플라스틱은 무엇으로 만들까요? 지구에서 탄소를 가장 많이 흡수하는 곳은 어딜까요? 1ℓ 페트병 한 개를 생산할 때 기름이 얼마나 필요할까요? 이미 질문에서 답이 나왔는데 플라스틱은 기름으로 만든다. 참기름 말고 석유나 가스 등의 오일 말이다. 정유사는 원유를 등유, 경유, 휘발유로 정제하는데 이 과정에서 나프타라는 찌꺼기가 나온다. 석유화학업계는 이 나프타로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플라스틱 알갱이를..
지구 반대편 남미 대륙 끝에는 광활한 초원지대가 펼쳐져 있다. 한반도 면적의 약 5배 크기(104만㎢)인 파타고니아 대평원이다. 최대 풍속이 초속 60m에 이를 만큼 바람이 심해 ‘바람의 땅’으로 불린다. 거주지로는 부적합하지만 등반가들의 꿈인 피츠로이산을 비롯해 페리토모레노 빙하 등이 있어 많은 이들이 꼽는 꿈의 여행지이기도 하다. 이 지역이 유명해진 것은 동명의 글로벌 아웃도어 스포츠 브랜드 덕분이다. 창업자는 미국 암벽 등반가 출신의 이본 쉬어드(84)다. 대장간에서 직접 만든 암벽 등반 장비가 입소문을 타면서 회사를 차린 그는 아웃도어 의류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1973년 사명을 파타고니아로 바꿨다. 주한미군으로 근무할 때 북한산 암벽 루트를 개척해 한국인에게도 알려진 인물이다. ‘이 재킷을 사지 ..
다음주에 또 폭염과 폭우가 올 것이라고 한다. 복합재해의 불씨가 댕겨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 예민하게 대응을 해야 한다. 지난봄에 산불이 크게 났던 지역들은 이번 폭우 대비를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 폭염도 마찬가지다 복합재해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많은 분야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해야 한다. 함께 논의하면 복합재해 불씨를 꺼버릴 수 있다 지난주 장마에 이은 폭염으로 완전히 썩어버린 농작물에 대한 TV 뉴스를 보니 마음이 좋지 않다. 겨울이 지나 따뜻한 봄이 오고 풍작을 기원하며 열심히 농사를 지었을 농부들의 마음은 나보다 더 힘들겠지만, 괜히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로서 내가 제대로 연구를 안 해서 그런가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바로 이 폭염이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과학..
최근 추경호 부총리는 한국전력이 전기요금 인상 요청과 관련해 제시한 한전의 자구안이 미흡하며 이를 점검하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스와 석탄 가격이 크게 상승한 외부적 요인이 있음에도, 한전의 누적된 과실을 지적하는 듯한 부총리의 발언이었다. 정부는 27일 올해 3분기 전기요금의 연료비 조정단가를 발표했지만 한전의 혁신적인 자구노력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전기요금 인상을 비롯해 한전을 위한 어떠한 구제조치도 재고돼야 한다. 국민의 돈으로 한전을 구제하기 앞서 정부는 먼저 이 사태의 원인부터 차분히 살펴봐야 한다. 하나금융투자가 지난 5월에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적자 원인은 수백% 상승한 석탄과 가스 가격에 있고, 이로 발생한 손실을 만회하려면 전기요금을 50% 이상 인상해야 한다. 보고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