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0월19일자 경향신문 7면에는 ‘강남 원전 설립 가상 조감도’가 큼지막하게 편집됐다. 강남 한복판에 원자력발전소가 가동 중인 듯한 그래픽이 등장한 것이다. 경향신문이 창간 75주년을 맞아 기획한 ‘절반의 한국’ 기사와 함께 제작된 그래픽이다. 창간기획팀 소속 문광호 기자는 이 기사의 마지막 단락에 “‘공정’의 가치는 수도권에서만 통용되는 것인가. 서울 사람들이 전기차를 타고 우아하게 생활하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희생하는 것은 당연한가. 전기 생산과 쓰레기 처리에서 ‘지산지소(地産地消)’의 원칙은 불가능한가”라며 “이 문제를 외면하는 한 수도권과 지방 간의 ‘심리적 분단’은 더 두꺼워질 수밖에 없다”고 적었다. 그래픽은 이제석 광고연구소가 제작했다. ‘광고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이제석 대..
얼마 전 만난 노점상은 가을이 예전 같지 않다고 말했다. 따뜻한 오뎅이며 떡볶이를 파는 포장마차는 여름 장사에서 이문을 기대하기 어렵고, 겨울은 추위를 견뎌 가며 하는 일이다. 봄가을은 손님도 좀 들고 날씨도 좋은 짧은 두 철이었지만 요즘엔 이마저도 사라졌단다. 생각해보니 지난해 가을 긴 장마는 농사꾼들의 일 년 작물을 버려놨을 뿐만 아니라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고역이었겠다. 변화하는 기후 속 기상 이변에서 비롯된 피해다. 그런데 기후위기에 대해 말하자마자 상인은 민망해했다. 노점상이 비닐을 많이 쓰니까 좀 나쁘지요? 그런데 방법이 없어서, 라고 변명하는 그를 보며 시민들에게 허락된 기후위기의 언어가 얼마나 편협한가 생각했다.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약자만 추궁하는 기후위기 담론은 구조적인 문제..
후쿠시마 원전의 동토벽이 녹았다. 지난 11월26일, NHK 방송은 영하 30도를 유지해야 할 동토벽 일부의 온도가 영상 13도까지 상승했다고 밝혔다. 동토벽은 후쿠시마 원전 1~4호기 주변을 에워싼 얼음벽이다. 도쿄전력은 동토벽 건설을 통해 당시 매일 500t씩 오염수가 되는 지하수의 유입을 2020년까지 원천 차단할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공사비로 국비 약 3612억원, 연간 운영비 약 104억원이 투입된 동토벽은 해마다 문제를 일으키는 값비싼 무용지물이 됐다. 오염수 관리의 총체적 부실에도 도쿄전력은 방류 시 방사능 농도를 확인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 칭화대가 지난 2일 발표한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는 해양 방류 260일 후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안에, 400일 ..

2020년 6월5일 환경의날을 맞이해 전국 228개 지방자치단체가 ‘기후위기비상선언’에 동참했다. 이 비상선언은 지방정부가 앞장서서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취약계층을 위한 대응계획을 세우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세계 최대 규모라는 선전이 무색할 정도로 2021년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2021년 5월에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선언이 다시 이어졌을 뿐이다. 짐작컨대 비상선언은 심각한 재난상황을 인식하고 신속하게 대응하겠다는 선언일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뭘까? 신속하게 판단하고 정책을 집행할 단체장 직속 부서를 만드는 일이다. 기후위기의 영향이 에너지만이 아니라 산업, 교통, 주거, 먹거리, 폐기물 등에 미치는데, 지금도 여전한 칸막이 행정으로는 위기를 극..
1987년 낙동강 하굿둑이 완공됐다. 1980년대는 대한민국의 고도성장기였다. 바다를 막아 산업화와 경제성장에 필요한 담수를 확보해 보자는 게 낙동강 하굿둑이 건립된 이유였다. 하굿둑이 없었던 당시 낙동강 일대는 취수원 확보가 쉽지 않았다. 바닷물이 강 상류로 유입되며 염분으로 인한 피해가 빈번하게 발생했기 때문이다. 부산 사하구와 강서구를 가로지르는 낙동강 하굿둑은 총연장 2230m 규모이다. 하굿둑이 들어서며 낙동강 상류까지 들어오던 해수 유입은 차단됐다. 덕분에 낙동강 일대는 연간 7억5000만㎥의 생활용수와 농·공업 용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굿둑이 건설된 지 34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며 시대의 흐름이 바뀌었다. 개발의 시대는 저물고 환경의 시대가 새롭게 떠올랐다. 특히 기후변화..

대한민국 2050 탄소중립 선언이 있었던 지난해 12월10일, 유엔에서 발표한 세계 환경위기시계는 9시4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전 세계 환경과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시간으로 표시한 환경위기시계는 12시에 가까워질수록 ‘위험’을 뜻한다. 환경위기시계가 아니더라도 신종 감염병과 기록적인 이상고온, 폭우와 가뭄이 이미 인류에게 강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이제 기후위기는 전 세계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이며, ‘2050 대한민국 탄소중립’ 선언에는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는 구체적인 실천 의지가 담겨 있다. 선언 후 1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 그리고 생활 속에서 환경위기시계를 멈추기 위한 여러 변화가 일어났다. 정부의 부처와 공공기관이 함께 ‘탄소중립 실천’을 결의..
2017년 6월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을 선언한 이후 지금껏 국내 원자력계, 야당, 보수 언론은 혼연일치가 되어 탈원전 정책 반대를 외쳐왔다. 그들은 탈원전 탓에 원자력산업이 몰락하고, 전기요금이 오르고, 탄소중립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또한 “무지가 부른 재앙”이라고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했다. 그 때문인지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현재 멀쩡히 운전 중인 원자력발전소들이 곧 멈추고, 태양광 또는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 대체되는 것처럼 우려하는 국민이 많은 것 같다. 그러한 우려는 사실인가? 2017년 국내 원자력발전용량은 22.5GWe(1GWe: 전기출력 100만㎾ 원전 1기 발전용량)였다. 지금은 23.3GWe이다. 건설 중인 1.4G..

소가 방귀를 뀌면 지구가 뜨거워진다? 이제는 누구나 다 알 정도로 식상한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소가 음식물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음식물을 발효시키고 이때 발생한 메탄가스를 방귀를 통해 배출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메탄은 흔히 알려진 이산화탄소와 같이 공기를 데우는 온실가스이기에 소가 방귀를 뀌면 지구가 뜨거워진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의 방귀는 빙산의 일각이다. 고작 소가 방귀를 뀌는 정도로 지구의 기온을 지금처럼 끌어올릴 만큼 지구 대기 중에 메탄의 농도는 증가하지 않는다. 사실 메탄은 지금 우리 주위 어디에서나 배출되고 존재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의 집에도, 회사로 향하는 아침 출근길에도, 주말 아침 상쾌한 기분으로 산책하러 나간 강변에도 있다. 그래서 불편하다. 알고 나면 불편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