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 | 시인 고향에 있는 백양사는 놀이터처럼 자주 드나들던 따뜻한 절이다. 부도밭을 지나 절에 들어갈 때 맨 먼저 만나는 이는 덮쳐올 듯 기립한 사천왕(四天王)이었다. 퉁방울눈과 우람한 덩치의 형상 사이를 잰걸음으로 지나며 나는 늘 목이 쑥 움츠러들게 무서웠다. 우리 사남매가 늦게까지 잠을 안 자면 어머니는 나지막하게 말씀하셨다. “애기들이 밤 늦도록 안 자면 사천왕이 잡으러 온다.” 이명박 정권이 4대강 사업을 시작한 후로 나는 4대강 사업이라는 말이 사천왕보다 무서웠다. 절대 불가한 이유와 이론, 하소연과 부당함을 많은 이들이 외쳤으나 그들은 강을 살리는 사업이라 우겼고, 불리한 입장에서 빠져나갈 요량을 거침없이 마련했다. 역사도 문화도 미래의 국토도 염두에 두지 않은 졸속과 천박이 자명했으나, 저..
부산 에코델타시티 친수구역 지정 취소를 요구하는 시민소송이 제기됐다. 에코델타시티 시민대책위원회는 어제 서울행정법원에 낸 소장을 통해 지난해 말 국토해양부 장관이 고시한 부산 에코델타시티 친수구역 지정이 국가재정법 위반, 부산시 도시기본계획 역행, 경제적 타당성 부족, 수질 악화를 비롯한 부정적 영향 초래 등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미 총체적 부실이 드러난 4대강 사업도 모자라 수변구역 난개발을 초래할 것이 불 보듯 뻔한 친수구역 사업이 이런 모습으로 다시 사회적 현안으로 떠오른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2010년 말 예산 날치기 과정에서 함께 통과된 ‘친수구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친수법)은 정당성도 타당성도 결여된 폐기해야 할 법이다. 이명박 정권이 4대강 사업을 한..
하승수 | 변호사 경북 영양군으로 가는 길은 멀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4시간 반이 걸린다. 그나마 하루에 5번밖에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양군을 ‘오지’라고 부른다. 서울의 1.4배 면적에 1만8000여명의 인구가 사는 곳이다. 그리고 영양읍내에서 다시 차를 타고 20분을 더 가면 수비면이 나온다. 그곳에 장파천이라는 작은 하천이 흐르고 있다. 산골짜기를 따라 맑은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하다. 그런데 이 조용한 골짜기의 평화가 깨졌다. 장파천을 막아 높이 76미터, 길이 480미터의 거대한 댐을 짓겠다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영양댐’ 사업이다. 아마 누군가가 반대하지 않았다면 영양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됐을지도 모른다. 작은 지역에서는 ..
윤순진 |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발생한 지 2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수습되지 못하고 있고 언제 수습이 완료될 지 알 수 없으며 또 언제 상황이 더 악화될 지 종잡을 수 없다. 녹아내린 핵연료봉을 원자로에서 꺼내는 데만도 30년에서 4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매일 매일 평균 400톤에 달하는 방사능 오염수가 나오고 있지만 처리 방법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기준치의 1억3000만배에 이르는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해 후쿠시마 앞바다는 이미 심각하게 오염되었다. 오염된 바닷물은 농도가 묽어진다 해도 세계 곳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원전 4기에서 노심용융과 수소폭발이 일어나 원전재앙의 상징이 되어 버린 후쿠시마 사고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교훈을 남긴 걸까..
신동호 논설위원 서울시가 ‘원전 하나 줄이기 종합대책’을 추진한 지 1년이 되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2주년을 맞은 어제 하루 종일 우울하고 답답한 상태에 빠져 있다가 마지막으로 떠올린 생각이다. 마음이 우울하고 답답했던 것은 후쿠시마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우리가 그 단어에 너무 익숙해져서 식상한 주제가 돼버린 듯해서다. 서울시 ‘원전 하나 줄이기 대책’이 떠오른 것은 거기에 식상함을 상쇄할 뭔가가 있어 보일 것 같아서였다. 2011년 3월11일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발생한 후쿠시마 사태는 인류 문명사에서 매우 중대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현대를 3·11 이전과 이후로 양분할 정도로 문명에 대한 인식 체계와 삶의 방식을 가르는 분기점으로 삼으려는 관점마저 있다. 비록 이런 관점에 동의할 ..
황윤 | 영화감독 시장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황윤이라고 합니다. 최근 경남 거제시가 대형 수족관과 돌고래 쇼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편지를 드립니다.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국내에 개봉되기도 했던 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혹시 보셨는지요? 못 보셨다면, 꼭 한번 보시기를 권합니다. 영화의 주인공, 릭 오배리는 1960년대에 돌고래 조련사로 세계적 명성을 떨칩니다. 계기는 TV시리즈 였습니다. 그는 방송에 출연할 돌고래들을 야생에서 직접 잡아와 훈련시켰습니다. 오배리는 이 방송물로 돌고래 조련의 대부가 되었지만, 자신이 훈련시켰던 돌고래 캐시의 죽음 이후 쇼를 그만둡니다. 그때부터 그는 40년째 돌고래 보호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왜 쇼를 그..
장정욱 | 일본 마쓰야마대 교수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미국 측에 2014년의 한·미원자력협정개정을 통해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 및 농축우라늄의 승인을 요청했다고 한다. 사용후핵연료의 재활용 및 저장시설의 포화문제가 요청의 주요한 원인으로서 짐작된다. 그런데 당선인은 재처리가 경제적, 과학적으로도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에너지정책은 국가의 기본정책인 만큼 당선인의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도 정확한 자료 및 정보가 보고되고 있어야 할 것이다. 현재 국내에는 1만2000t이 넘는 사용후핵연료가 쌓여 있다. 또 매년 약 800t씩 늘고 있는 실정이다. 핵발전소 내의 저장시설인 수조가 2023년의 영광핵발전소를 시작으로 포화상태에 이른다. 원자로에서 막 꺼낸 사용후핵연료는 ..
황대권 |‘야생초 편지’ 저자 우리처럼 속도를 중시하는 나라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은 ‘안전’이다. 어찌되었건 남보다 빨리 해치워야 하니 불법, 편법은 물론 잘못되면 재앙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경우에도 무모한 운행을 일삼곤 한다. 그렇게 해서 세계가 경악할 만한 경제기적을 이루어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 사이 우리 국민들 뇌리에 뿌리 깊이 각인된 안전불감증은 참으로 골칫덩어리가 아닐 수 없다. 하긴 가슴 철렁한 사건·사고를 하도 겪다보니 이젠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작하지 않는다. 10년 동안이나 핵발전소에 짝퉁 부품을 납품하고 잦은 고장으로 발전소가 멈춰서는 사태가 벌어져도 사람들은 그저 하나의 사건·사고로 기억하는 모양이다. 핵발전소 인근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항의를 해보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