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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성과 직무 관련성이 없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김기정 서울서부지방법원장이 2016년 법원도서관장으로 있으면서 직원 친목 도모 명목으로 기업에서 금품·편의를 제공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김 법원장 측은 이렇게 반박했다. 지위를 이용한 적도 없고, 재판 업무도 맡지 않을 때라고 했다.

김 법원장은 야구경기 스카이박스 입장권, 영화 VIP시사 관람권, 글램핑장 이용권 등을 받았다. 주식, 고급차량, 현찰을 뇌물로 받아 큰 사회적 논란이 된 법조인들과 비교하면 수수 명목은 사소해 보일 수도 있다. ‘사소한 관행’은 인정해도 되는 것일까?  

고도의 윤리 의식은 법관에게 필수다. 외국의 잣대는 엄격하다. ‘각국 법관 징계 제도에 관한 연구’(사법정책연구원) 보고서는 미국 연방법원의 모범법관행동규범을 소개한다. 보고서는 법관 징계사유 행위로 “합리적 일반인의 관점에서 법관의 독립성·청렴성·공평성을 해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선물·융자·유증·이익 기타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물품을 수령하는 경우”도 든다.

캐나다 법관윤리원칙도 ‘청렴성’을 두고 “법관은 합리적이고 공정한 지식인의 입장에서 볼 때 법관 자신의 행동이 비난받을 수 없는 것이라는 신뢰를 갖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펴낸 ‘법관 윤리’를 보면, 법관이 친구 변호사 개업식에 본인의 소속 법원명과 직위를 적은 화분을 보내는 것도 제한했다. 판사와 변호사 간 유착 같은 오해를 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막았다. 

김 법원장은 ‘친구 호의를 받아 직원들에게 선의를 베푼’ 행위가 비난받을 소지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 공무원, 그것도 고위 법관의 지위라서 받은 선물은 아닐까? ‘기업의 친구들’이 왜 자신에게 물질적 호의를 보였는지 성찰도 하지 못한 듯하다.

김 법원장의 수수는 ‘외관의 공정성’에 어긋난다. 바깥에서 바라봤을 때 공정해야 한다. 기업이 제공하는 금품·편의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는 법관을 신뢰할 수는 없다.

<이혜리 | 사회부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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