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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선수를 둔 한 학부모의 얘기다. 선수들이 경기를 하면, 조를 짜서 ‘다과 봉사’를 나가야 한단다. 경기 응원을 온 선수들 학부모와 경기를 지켜보는 각종 야구 관계자들에게 과자와 커피 등을 나눠주는 일이다. 어떤 선수가 잘하는지 지켜보는 스카우트들에게도 과자와 커피를 대접한다. 저학년 학생을 둔 어머니가 ‘다과 봉사’ 차례가 됐다. 경기장에서 다과를 준비하는데 고학년 학생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다. “어이, 아가씨 커피 한 잔만 타 봐.” 충격을 받은 그 어머니는 아들의 전학을 고민했다.

심석희의 용기 있는 고백으로 감춰져 곪았던 스포츠계 각종 문제들이 쏟아졌다. ‘메달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가리고 덮고 어르고 윽박질렀던 사실이 드러났다.

꼬마 시절부터 새벽잠 쫓아가며 스케이트를 탔던 선수들은 메달을 위한 기계였다. 메달을 이유로 두들겨 팼다. 폭행 사실을 알리려는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하자 코치의 코치인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는 “올림픽이 코앞이니 일단 올림픽에 집중하자”며 막아섰다. 올림픽이 끝나고 나니 이번에는 두들겨 팬 코치 구하기에 나섰다. 맞은 선수들에게 “너희는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라고 윽박질렀다.

상습상해 등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가 23일 경기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공판을 마친 뒤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드라마 <SKY 캐슬>은 빙상 링크 위에서 ‘아이스 캐슬’로 이미 단단하게 성을 쌓아두고 있었다. ‘아이스 캐슬’ 속 김주영들은 ‘서울의대’ 대신 ‘금메달’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짬짜미’와 ‘탱크’는 금메달을 위한 전략으로 포장됐지만, 자발적 결정이 아니라 명령에 가까웠다. 드라마 속 시험지 빼돌리기와 다르지 않다.

젊은빙상인연대는 6건의 추가 성폭력 사실을 확인했다. 내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외부 관계자는 “피해자 몇은 공개 의지가 있었지만 부모님들의 거부가 완강했다. 2차 피해를 걱정했지만 더 큰 이유는 전명규 교수의 영향력 아래 더 이상 빙상계에 남아 있을 수 없다는 공포 때문”이라고 말했다.

드라마에서 한서진은 예서에게 말했다.

“엄마도 알아 이게 얼마나 말도 안되는 상황인지, 얼마나 잘못하는 일인지 알아. 그렇지만 예서야. 엄마는 네 인생 절대 포기 못해. 엄마가 다 감당할게, 아무 걱정 하지 말고 공부만 해.” 양심이건, 이미 남은 상처건 다 중요하지 않다. 지금껏 들인 노력과, 거의 다 올라온 피라미드 끝이 모든 것을 덮는다.

아이스 캐슬을 만든 것은 빙상의 김주영, 한서진들이었다. 빙상의 김주영들은 ‘애국심’과 ‘금메달’이라는 숭고한 가치로 무장했고, 한서진들은 김주영들의 시스템에 가담하려다 덫에 갇혔다.

한서진들이 김주영을 만들었지만, 이미 괴물이 된 김주영은 한서진들의 약점을 너무 잘 안다. 무슨 짓을 해도 “이게 다 서울의대(금메달)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나만 믿으면 된다”고 강요한다. 믿지 못하겠다고, 뭔가 잘못됐다고 하면, “그렇다면 나가라”라고 한다. 밖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태도다.

자신의 길을 따르는 이들에게 각종 압박과 특혜를 주며 옥죈다. 드라마 속 조 선생이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자꾸 회의감이 든다”고 하자 김주영은 “제 자식을 남들보다 더 뛰어나게 만들고픈 부모들의 욕망이 있는 한 입시 결과만 좋으면 그 어떤 책임도 질 필요가 없어. 자식을 우리한테 맡기면 그들의 영혼도 우리 손아귀에 있거든. 지옥불에 처넣을 수도 있지”라고 말했다. 이어 조 선생에게 집 한 채를 선물했다. 조 선생은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드라마에서 느끼는 기시감이란.

승리와 메달이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면, 스포츠 전체가 ‘캐슬’이고 그곳이 바로 ‘지옥’이다. 맨 앞의 어머니는 그나마 작은 용기를 냈다. 맞서 싸우지는 못했지만 먼 지방학교로 전학을 택했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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