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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뉴콘텐츠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여러번 받았다. “원래 그런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지난 10여년간 정치부에만 있다가 전혀 새로운 일을 하는 상황을 걱정하고 격려하는 말이었지만 불편했다. ‘그런 쪽이라니? 저널리즘과 미디어 환경이 이렇게 빨리 변하고 있는데, 뉴콘텐츠에 대한 고민은 모두의 숙제 아닌가?’ 뉴콘텐츠는 신문의 일이 아니라는 듯 들리는 그 말에 괜스레 속이 배배 꼬였다.

알고 있다. 그들의 고민과 나의 고민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어디에도 정답이 없는 신문의 미래를 고민하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찾기처럼 엄두조차 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생각해본다. 단지 신문이 낡은 플랫폼이라 외면받는가? 아니면 레거시 미디어라는 틀 속에서 독자와의 공감에 소홀했나?

7년 만에 다시 글을 내놓은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의 <당신이 옳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그동안 진료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환자로 규정하고 의사라는 우월적 위치에 대한 자각 없이 살았던 것이다. 진료실 밖에서 흰 가운이라는 보호막 없이 그들의 속마음을 들으며 그 사실을 확실히 알았다. ‘환자’라는 틀로만 바라봐도 괜찮은 사람이란 세상에 없다.”

뜨끔했다. 흰 가운을 입은 정신과 의사와 수십년 전의 관성으로 신문을 만드는 저널리스트가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의사가 진료실에 들어선 사람을 환자로 인식하는 접근법 자체를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그 행위가 비전문적이라고도, 나쁜 뜻을 담았다고도 할 수도 없다. 그러나 환자라는 틀로‘만’ 진료실에서 만나는 사람을 규정한 결과 의사는 자연스럽게 ‘우월적 지위’에 올랐고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됐을 것이다.

저널리스트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우리는 매스미디어 시대의 제작·유통 방식에 익숙했다. 그 방법이 당연했고, 그에 따라 ‘뉴스 생산자’로서 전문성도 발휘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기사 생산 행위 자체를 독자보다 앞세우게 되면서 의도치 않지만 참담한 결과를 손에 들었다. 언론의 신뢰도는 추락했고 고루하고 답답한 ‘소통 불가’ 이미지가 더해졌다.

지나치게 자조적인 말로 들릴 수 있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돌아보고 더 혁신해야 한다. 어떻게? 혹자는 콘텐츠 홍수 속에 종이신문의 시대는 이미 갔다고 말하고, 또 다른 이들은 문제는 플랫폼이 아니라 콘텐츠라고 말한다. 혼란스럽다. 전 세계 유수의 레거시 미디어들이 수많은 실험을 했지만 누구도 ‘나를 따르라’라고 장담하지 못한다. 팩트체크를 브랜드화한 워싱턴포스트, 뉴스 유료화를 안착시킨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등 때로는 성과를 낸 도전들마저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는 영원한 돌파구로 평가되지 않고, 향후 도태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성공 정도로 여겨진다. 그런데 확실한 사실이 있다.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해답을 알려줄 수 없다는 것이다. 길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실낱같은 불빛은 독자들은 여전히 제대로 된 콘텐츠를 원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권력과 자본의 이면을 드러내는 보도에 박수를 칠 것이고, 독자의 요구를 잘 담아낸 새로운 형식의 콘텐츠엔 반응할 것이다. 신문의 시대가 간 것이 아니라 신문이 만들어 낸 것만 읽던 독자의 시대가 갔음을 직시해야 한다.

“저널리스트는 직업을 통해 훈련된 공감 전문가가 될 수 있다.” KBS PD로 교육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다가 직접 현장으로 뛰어든 정찬필 미래교실네트워크 사무총장이 지난해 ‘저널리즘의 미래 콘퍼런스’에서 한 말이다. ‘흰 가운’은 던져버리고 저널리스트의 공감 능력을 되살려 보면 어떨까. 독자여! 당신이 옳다.

<이지선 뉴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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