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새해 벽두 드라마 한 편이 한국을 들썩인다. 드라마는 세간의 분위기를 가볍고도 빠르게 담아내는 덕에 사람들은 드라마 한 편을 통해 미처 본인이 자각하지 못했던 시대적 유행과 분위기를 훑곤 한다. 드라마 <SKY 캐슬>은 대학입시가 갖는 의미를 21세기 한국사회에 투영시켜 교육이 갖는 세속성을 이야기한다. 교육이 더 이상 계층 이동을 위한 ‘유연한’ 사다리가 아닌 계층 유지 또는 계층 확대를 위한 ‘배타적인’ 사다리가 됐을 때 어떤 현상들을 낳게 되는지 말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시선이 멈춘 지점은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의 폐해도, 자식교육을 향한 엄마들의 그악스러움도 아닌 바로 아빠들의 무기력함이었다. 아빠들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얼굴들을 하고 있다. 물론 드라마 속 아빠들은 의사·교수 등으로 사회적으론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JTBC 드라마 의 한 장면.

하지만 ‘돈만 잘 벌어다 주면 가장 노릇 다 한 줄 알았다’는 극 중 영재 아버지의 고백처럼 그들은 여전히 집안일과 자식일에 별 관심이 없다. 자식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건 오직 성적표가 나올 때뿐이다. 자녀의 명문대 입학이나 학생회장 당선 소식 등은 아빠의 사회적 지위를 돋보이게 하는 액세서리에 지나지 않는다. 가짜 하버드생인 딸이 아빠한테 눈물을 흘리며 소리친다. “공부 잘하는 자식만 자식이라는 생각 들게 했잖아!”

과정을 공유하지 않은 채 성과의 기쁨만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다. 힘들 때 옆에 있어주는 이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말은 가족에게도, 심지어 가족의 리더 격인 아빠들에게도 통용된다.

미국 연수 시절 미국 아빠들이 외계인처럼 보였다. 평일 축구·농구 수업에 오는 아이들 중 절반 이상이 아빠들과 함께 왔다. 한국처럼 직업강사가 아닌 자원봉사 체제로 꾸려지는 스포츠 클럽 성격상 축구 코치, 농구 코치는 대개 누구 누구의 아빠들이었다.

축구 매치가 있던 어느 토요일 놀라운 광경을 봤다. 상대편 축구팀 코치가 아기띠를 맨 채로 호루라기를 불며 경기 심판을 보고 있었다. 그의 배 위엔 돌도 채 되지 않은 작은 아기가 매달려 있었고, 초등학교 1학년인 그의 큰아이는 축구 경기를 뛰고 있었다. 싱글 대디인지, 엄마의 부재 때문인지 추측할 새도 없이 입이 쩍 벌어졌다. 동료 이웃이 털어놓은 목격담도 보통은 넘었다. 농구수업에 갔더니 젊은 아빠가 무려 4명의 아이를 유모차와 아기띠를 동원해 홀로 돌보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언제쯤 이런 풍경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지표로만 봐도 한국 아빠들의 가사노동 분담률은 현저히 낮다. 남성 가사 분담률은 16.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3.6%)의 절반 수준이다. 덴마크(43.4%), 핀란드(40.7%) 등 유럽 복지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신자유주의 첨병인 미국조차 아빠들의 가사분담률(38%)은 평균을 웃돈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엄마의 역할, 돈의 역할로 극한까지 밀고 온 것이 우리 교육의 모습”이라며 “아직 사용해볼 여지가 남은 것이 아빠의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아빠와 대화하고 여행하고 공부하는 생활, 아빠가 자녀교육으로 돌아오는 것이 바로 사교육의 고통을 완화시켜줄 수 있는 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아빠들이 안 돌아오고 싶어서, 돌아오는 길을 몰라서 오지 않는 것이 아님을 말이다. ‘저녁이 있는 삶’은 단순히 여유로운 일상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밥벌이를 하는 아빠가 자신의 건강을 살피고, 가족을 돌보고, 내일을 준비하기 위한 삶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엔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각박하고 부족하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도입 등으로 불거진 후폭풍만 봐도 그렇다. 한국 사회의 아빠들은 언제쯤 가정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문주영 국제부 차장>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