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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않는다’는 규범에 따라 행동한다면 세상은 훨씬 평화로운 곳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개인마다 살아오는 동안 쌓아온 경험이 다르기에, 역지사지라는 단순명쾌해 보이는 윤리적 태도를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다. 각자의 경험에 따라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대상은 선별되고, 이입의 강도도 사안별로 달라진다. 

역지사지를 더욱 폭넓게 실천하기 위해서는 내가 경험하지 못했기에 모를 수 있는 다른 이의 입장이 있음을 고려하고, 그것을 알기 위해 타인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고백들을 경청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피로할 수도 있는 과정이다.

팍팍한 ‘헬조선’에 살면서 부정적인 감정으로 출렁이기 쉽다는 것 역시 역지사지를 실천하기 어려운 요건이다. 나 역시 누군가 툭 건드리면 왈칵 감정이 세어 나올 때가 많다. 그 감정의 뜨거움이나 서늘함은 타인을 상처 입히고야 만다. 나는 감정이 진정된 뒤에야 후회하고 자책한다. 스스로의 감정도 돌보지 못하면서 다른 이의 입장과 감정을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러나 포기하지는 않기로 했다.

정서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위해 애쓰고 인식의 외연을 확장하려 노력하며, 무심결에 저지르는 실수를 경계해도 어려운 것이 역지사지인데, 눈 감고 귀 닫고 모르는 채로 사는 것을 선택한 이들은 타인에게 ‘유해한’ 사람이 될 확률이 더욱 높을 것이다. 스스로의 갱신을 거부하고 타인에게 지속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 이들에게 ‘미러링’이 유효한 교육법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2015년 ‘메갈’이 미러링이라는 전술과 함께 등장했을 때 깊이 감명을 받았다. 메갈은 ‘김치녀’ 같은 자국 여성에 대한 혐오언어의 대칭을 이루는 ‘한남(충)’이라는 말을 만들어 내고, 여성에 대한 편견과 멸시를 내포하는 진부한 표현을 주어를 바꿔 패러디했으며(“자고로 남자는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나대지 말아야지”, “남자는 집에서 과일 깎고 애나 봐야지” 등), 여성에게 가해지던 성희롱의 방식으로 남성을 성적 대상화하며 평가하는 글과 ‘남동생 몰카’를 찍었다는 허구의 글(‘소라넷’이나 ‘일베’에 올라온 여성 혈육 관련 게시물의 패러디)을 업로드하는 활동을 했다. 이 모든 것이 미러링이었다. 대칭이 되는 상을 들이밀며, 상대의 의식이 ‘당해 보니 기분 나쁜데? → 나도 비슷한 짓을 했던 것 같은데? → 앞으로 하면 안되겠군’으로 흐르기를 기대하는 것.

근래에는 미러링을 오인하고 오용하는 사례를 목격하기도 했다. 선제공격을 가한 특정 개인에 대한 보복 폭력이 미러링이라는 인식이 대표적인 예다. 나는 폭력적 언행을 일삼는 이들에게 그것이 왜 폭력적인지 설득하는 것을 목적에 두고, 특정 개인을 향한 조롱과 인신공격이 아니라 관습적 표현을 비틀어 ‘보여주는 것’이 미러링이라 생각한다. 또한 그것이 미러링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해당 원본이 무엇인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주의를 기울이며 조심스레 활용한다 할지라도, 미러링이 누구에게나 통하는 교육법이 될 수 없음을 안다. 나는 종종 폭력적인 언행으로 ‘선빵’ 날리는 노인을 접할 때, 청년에 대한 과도한 요구나 촛불집회 참가자들에 대한 비방을 비틀어 미러링을 ‘시전하는’ 상상을 한다. “요즘 노인들은 노력을 안 해. 노인수당 타려면 토익 700점 넘기고 어학연수 다녀오고 봉사활동도 해야지”, “먹고살 만한가 보지? 태극기 집회나 하고 말이야” 같은 말들. 하지만 이것을 한 명의 노인과 안전한 공간에 있을 때 시도해도 위험한데, 태극기 집회 한복판에서 한다면? 죽창에다 태극기 다신 분도 있던데, “이거 다 미러링인 거 아시죠? 허허”라는 덧붙임은 나의 유언이 될지도 모르겠다.

미러링은 상대에 대한 신뢰를 기반에 둔다. 상대가 문해력과 최소한의 공감능력 및 학습능력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존중. 하지만 최근에는 회의감이 든다. 어쩌면 그 정도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메갈의 탄생과 강남역 살인 사건 같은 굵직한 일들을 접하며 이미 인식의 균열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역지사지를 거들기 위한 강력한 정서적 요법마저 무용하다면(다음 단계로 의식이 흐르지 않고 ‘기분 나쁨’에만 머물러 있다면), 도대체 ‘설득’이라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최서윤 아마추어 창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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