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배우 김민희와 영화감독 홍상수가 서로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입을 열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시사회장에서 받은 기자의 질문에 “저희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라고 답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축복받지 못했다. ‘불륜’이라는 단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홍상수는 부인과 자녀가 있는 유부남이고, 그에 따라 김민희는 아직 유지되고 있는 남의 가정에 끼어든 불청객이 되었다.
대리운전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런데 나는 함께 차에 오른 남녀가 부부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눈이 생겼다. 유심히 그들을 관찰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겉보기에는 모두가 평범한 부부처럼 보이지만 우선 앉는 자리부터가 다르다. 부부는 자연스럽게 남편이 조수석에, 아내가 뒷좌석에, 그렇게 한 사람이 굳이 뒤통수를 보며 따로 앉는다. 가는 동안 대화도 별로 없고 휴대폰을 꺼내서 각자의 일을 한다. 하지만 부부가 아닌 이들은 뒷좌석에 같이 앉아 나를 기다린다. 가끔은 내가 온 줄도 모르는지 서로를 바라보는 데 열심이다. 시선뿐 아니라 무엇으로든 서로를 꼭 붙들고는 목적지까지 간다. 가끔 민망한 행위를 하는 것도 같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운전을 한다.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가 13일 오후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시사회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는 연인관계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공식적으로 연인사이임을 인정했다. 이석우 기자
유부남녀들이 왜 대개의 경우에 같이 앉지 않는지, 서로 즐겁게 대화하지 않는지, 얼굴을 바라보며 함께 웃지 않는지 하는 것이 궁금했다. 물론 그러한 데면데면함을 오랜 시간 다져온 익숙함으로 포장하거나 삶의 고단함으로 핑계 삼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그들도 어느 한때는 뜨겁게 사랑했을 것이다. 뜨거운 적이 없어 식을 것조차 없는 사이라면 그것은 서글픈 일이다. 부부이든 아니든, 사랑하는 이들은 같이 앉아 즐겁게 대화하며 함께 웃는 모습이 가장 어울린다.
그런데 정작 김민희와 홍상수를 손가락질하는 우리는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 같이 앉아 사랑하고 있습니까?” 하는 단순한 질문에 당신은 당당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여기에 답하기 위해 제도와 법리와 도덕을 굳이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 그런 구차한 핑계는 서로 사랑하지 않고 있음을, 나아가 이미 일종의 ‘불륜’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징표와도 같다.
두 사람은 시사회장에 같이 앉아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지을 수 없는 미소로 서로를 바라보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그들이 ‘미안하다, 죄송하다’고 사과하지 않아서 나는 좋았다. 미안함과 죄송함을 우리에게 말할 필요는 없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고 감정의 전달은 이해 당사자들끼리 나누고 풀면 그만이다. 결과에 따른 책임 역시 ‘그들’이 짊어질 것이다.
홍상수와 그의 부인, 홍상수와 김민희, 그리고 당신과 당신의 그가 어떠한 길을 함께 걸어왔는가는 당사자인 두 사람만이 안다. 거기에 대고 타인들이 사과를 요구할 자격도, 당위성도 없다. 특히 우리가 굳이 ‘남편을 위해 희생한 아내’, ‘불쌍한 아내를 배반한 남편’이라는 틀을 억지로 덮어씌울 필요는 없다. 그것은 조강지처의 역할을 강요해 온 남성중심의 서사이고 욕망일 뿐이다. 오직 여성만이 여기에서 희생양이 되는데, 그러한 틀 안에서 김민희와 홍상수를 비난할수록 그의 부인도, 누군가의 부인도 결국 더욱 초라해진다.
우리가 손가락질해야 할 대상은 타인의 사랑에 분노하거나 열광하는 스스로의 오지랖일 것이다. 그보다 나는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을 돌아보는 편이 오히려 자신을 위한 일이 되리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김민희와 홍상수를 응원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무수한 타인들을 그만 놓아주고 내 곁에 앉은 나의 소중한 사람만을 신경 쓰기로 한다. 나는 나의 사랑을 하기에도 벅차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일반 칼럼 > 직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낭만적 사랑과 결혼시장 (0) | 2017.03.28 |
---|---|
두 개의 세계 (0) | 2017.03.23 |
나비는 이제 막 날기 시작했다 (0) | 2017.03.14 |
‘미러링’이라는 교육법 (0) | 2017.03.09 |
같이 걸으면 좋은 일이 있을 거야! (0) | 2017.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