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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485. 최근 일주일 동안 걸어다닌 결과의 평균이다. 날이 추워서, 날이 더워서, 비가 와서, 피곤해서…. 각종 핑계를 대며 하루에 5000보 걷기도 힘들던 ‘귀차니즘’은 사라지고, 틈만 나면 ‘좀 걷다 올까’ 궁리하는 나를 발견하는 요즘이다. 갑자기 부지런해진 이유는 단 하나, ‘포켓몬고’ 게임 덕분이다. 조금이라도 덜 걷기 위해 꾀를 내던 내가 자발적으로 더 먼 거리를 걷기 시작하다니 놀라운 변화다. 시작한 지 한 달도 안돼 100㎞를 걸었다는 메달을 받았으니, 짧은 기간 동안 내 일상과 습관을 완전히 바꿔버린 셈이다.

사실 나는 포켓몬 세대가 아니다. 피카츄나 꼬부기 정도만 알았고, 포켓몬 애니메이션도 거의 안 봤다. 그런데 왜 이렇게 포켓몬고를 열심히 하고 있는 걸까? 심지어 게임을 즐기지도 않는 편인데 말이다. 가장 큰 매력은 이 최첨단 게임의 아날로그적인 성격이다.

일단 이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어딘가에 가야 한다. 게다가 몬스터볼이나 기타 아이템은 돈 주고 살 수도 있지만 포켓몬 강화에 꼭 필요한 별의 모래는 포켓몬을 잡아서 차곡차곡 모으는 수밖에 없다. 포켓몬들을 하나씩 도감에 등록해나가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250마리에 달하는 모험 도감을 채워나가는 행위가 수집욕을 자극한다고나 할까.

광화문 인근에서 포켓몬을 잡는 모습. 연합뉴스

요즘은 체육관을 점령하는 재미에 빠져있다. 이어폰을 꽂고, 효과음과 음악 설정을 켠 후 내 것보다 훨씬 센 포켓몬들이 포진한 체육관에서 한바탕 싸운다. 센 상대가 필살기를 써서 한 방에 나를 쓰러뜨리더라도 또 다른 포켓몬이 있으니 괜찮다. 이 체육관에서 지더라도 다음 체육관에서는 내가 이길 수도 있고, 같은 체육관에서도 상대가 바뀌면 상황이 달라진다.

기력의 조각과 상처약을 사용하면 기절한 포켓몬은 금방 회복되니, 얼마든지 더 경기를 할 수 있다. 실패해도 점수가 깎이지 않을뿐더러, 아이템은 또 받으면 된다. 걸어다니기만 하면, 실패를 얼마든지 극복하고 재도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이 없다.

개인적인 흥미 외에도 포켓몬고를 주시하게 되는 몇 가지 지점들이 있다. 우선 게임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사회 인식에 변화를 가져왔다는 거다. 그동안 게임은 “청소년들이 방에 틀어박혀서 게임만 하기 때문에 사회성이 떨어진다”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사회악’ 취급을 받아왔는데, 최소한 포켓몬고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일본의 ‘히키코모리’들을 자발적으로 방 밖으로 이끌어냈다는 이야기가 들려올 정도니 효과는 검증된 셈이다.

게임 비용의 측면에서도 혁신적이다. 그동안 게임은 하드웨어를 업그레이드하거나 돈을 들이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방식으로 작동해왔다. 그런데 포켓몬고는 스마트폰에 애플리케이션만 깔면 되고, 돈을 쓴다고 해서 레벨이 갑자기 올라가기 어려운 구조다. ‘모험을 떠난다’는 말에 걸맞게 ‘현질’ 효과보다는 직접 걸어다니거나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실과 가장 밀접한 게임이라는 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관광과 가장 상관없는 영역으로 여겨졌던 게임을 관광 산업과 연계할 수 있는 고리를 만들었다는 점 역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일본에서는 이미 각종 이벤트로 ‘포켓코노미(포켓몬고+이코노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모바일 게임이 화면에 세상을 구현해내려 했다면, 포켓몬고는 화면에 세상을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다. 현실 세상을 화면과 만나게 하는 위치기반 증강현실(AR)의 속성을 영리하게 이용한 것이다. “인간의 행동을 바꾸겠다”던 개발사 나이앤틱의 야심은 일단 꽤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포켓몬고에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운전할 때 켜 놨더니 자꾸 눈이 가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포켓몬이 나타나면 나도 모르게 잡으려고 하다보니 실제로도 너무 위험했다. 최소한 운전할 때만은 아예 켜놓지도 않는 게 정답이다.

장단점이 있긴 하지만 포켓몬고는 게임이다. 봄을 맞아 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이라면 “같이 걸으면 좋은 일이 있을 거야!”라고 말해주는 파트너 포켓몬과 걷기를 추천하고 싶다. 게임을 즐기는 이유는 다를지라도, 포켓몬 트레이너의 문은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으니까.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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