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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사태가 반 년을 훌쩍 넘겼다. 중국은 지난해 여름 사드 도입이 결정되기 전부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지만, 노골적인 ‘혐한’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은 군이 롯데그룹의 성주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사용키로 확정한 올해 2월말부터였다.

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내준 롯데가 보복을 당하는 데는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3월4일 하루 만에 4곳의 영업장이 동시에 영업정지를 당했다. 이를 시작으로 중국 내 112개 롯데마트 점포 가운데 80%에 육박하는 87곳이 지난 6개월간 문을 열지 못했다. 1조원이 넘는 손실을 본 롯데는 지난달 중국 철수를 결정했다.

이보다 이틀 앞서 중국 국가여유국은 베이징 일대 여행사를 불러모았다. 그리고 10여일 뒤인 15일부터 중국 여행사들의 홈페이지에서 한국 여행상품이 자취를 감췄다. 명동과 강남 거리를 가득 채웠던 ‘유커(중국인 관광객)’도 사라졌다. 자연 유커 특수에 상당부분 기대왔던 요식업·숙박업·여행업·유통업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매년 20만명 가까운 유커가 한국을 찾았던 중국의 국경절 연휴(10월1~8일)에 올해는 그 절반도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혐한 분위기로 공연가와 연예인들의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고, 불매운동의 타깃이 된 현대자동차는 판매량이 반토막 났다. 지난 8월까지 현대·기아차 중국 내 누적 판매량(57만6974대)은 지난해 같은 기간(104만3496대)보다 44.7%나 줄었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를 이렇게 다시 풀어쓰는 이유는 이 ‘다 아는’ 이야기를 혹시 정부만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걱정이 돼서다.

노영민 주중 대사가 얼마 전 기자들을 만나 “사드 사태를 보는 첫 번째 측면은 우리 기업 내부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드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기업이 있고, 오히려 중국 수출이 증가하는 기업도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중국의 사드 보복은 하나의 변수일 뿐 중국에서 철수하거나 부진을 겪고 있는 기업들은 그 기업들의 경쟁력에 문제가 있어서라는 논리다. 노 대사는 다음날에도 “이마트가 (중국에서) 철수했는데 사드와 아무 관계가 없다”면서 “롯데의 경우도 대중국 투자에 실패했다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동주 회장은 롯데의 대중국 투자가 실패했다는 이유를 걸어 신동빈 롯데 회장을 공격한 것 아닌가”라고 부연했다.

이마트의 철수가 사드와 관계가 없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그러면서 은근슬쩍 롯데의 중국 철수를 온전히 롯데 책임인 양 끼워넣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경영권 분쟁에서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등장했던 일방의 논리를 인용하기도 했다.

사드로 피해를 본 기업의 경우 경쟁력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도 놀랍지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투자 실패’를 운운하며 기업 흠집 내기도 서슴지 않았다는 점이 더욱 놀랍다. 사드 정국하에 중국에서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주중 대사의 발언이다.

발언이 가리키는 목표 지점은 분명하다. ‘전부 정부 책임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것이 노 대사의 소신인지 정부 안에서 공유된 공식 입장인지는 분명치 않다. 분명한 것은 중국의 사드 보복과 관련해 우리 정부는 사실상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아 왔다는 점이다. 피해 기업에 돈을 ‘빌려’ 주고 세금을 유예해 주는 정도가 지금껏 대책의 전부였다. 재계 입장에서 보자면 사실 사드 문제에 있어서는 문재인 정부나 박근혜 정부나 똑같이 무능한 정부일 뿐이다.

사드 해법이 국제정치나 복잡한 역내 관계와 맞물린 난제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래서 국내의 누군가를 비난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누군가 책임자를 찾아야 한다면 그 첫 번째는 정부여야 한다. 적어도 이번 사드 정국에서 정부가 누군가를 비난할 자격은 없다. ‘전략적 모호성’으로 사드 문제를 해결할 ‘복안’이 있다고 장담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산업부 | 이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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