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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누구도 돈을 쓰려 하지 않는다. 샐러리맨 월급은 제자리걸음이고, 매일 퇴직자 수천명이 거리에 쏟아진다. (중략) 주가가 오르면 친구에게 삼겹살이라도 한턱 내겠지만, 마음에 여유가 없다. 집값은 떨어지는데 전셋값은 폭등한다. 집주인, 전세입주자 모두 불안해서 더욱 허리띠를 졸라맨다. 돈을 안 쓰니 동네 슈퍼, 음식점, 빵집, 노래방도 몽땅 불황으로 아우성이다. 그러니 세금도 안 걷힌다.”
지난 7월10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김영수 조선경제i 대표의 칼럼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에서는 지금의 경제위기가 심각함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미국의 저리자금과 중국의 강력한 성장률에 의존하던 이머징 국가들의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도 연일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수출 의존도는 중국이 25%, 미국 10.7%, 유럽연합(EU) 11.5%, 일본 6.1%의 순서이니 위기이지 않을 리 없겠지요.
정치권도 아우성이긴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부처간 이견이 있는 사안들에 대해 현오석 부총리가 제대로 정책조율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자 현 경제팀으로는 난제 해결의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는 새누리당 중진들의 질타가 줄을 이었습니다. 자질과 리더십 문제로 국회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을 능력이 출중하다며 임명을 강행할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능력이 부족한 경제관료 한 사람만 교체하면 어려운 경제문제가 술술 풀려나갈 것처럼 말하고들 있네요.
부처간 협업 강조하는 박근혜대통령 (연합뉴스)
우리 경제에 중국은 이제 가장 큰 변수가 되었습니다. 중국은 2010년에 G2 자리를 꿰찼습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걸출한 한국현대사 3부작의 작가 조정래가 20년여의 장구한 취재 끝에 최근 발표한 장편소설 <정글만리>(전3권, 해냄)에는 중국이 2016년에 G1에 올라설 것이라는 예측이 나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이미 오바마가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마지막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는 사실과 함께요.
‘정글만리’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 원칙인 ‘정글’과 만리장성의 ‘만리’에서 온 것으로 중국의 현주소를 상징합니다.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이 소설은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14억 인구의 중국을 무대로 한국,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 등 다섯 나라의 비즈니스맨들이 벌이는 숨 막히는 경제전쟁의 현장을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워낙 속도감이 있어 긴 소설임에도 단숨에 읽힙니다.
작가는 소설에서 “새로운 개성공단을 10개쯤 만들어내면 된다. 교통이 편리하고, 북쪽 체제보장에 아무 탈이 없도록 서해안 쪽에 5개쯤, 그리고 동해안 쪽에 5개쯤 새로 만들면 그 얼마나 좋겠는가. 그 일의 성취는 북쪽의 경제난을 극복할 수 있는 첩경이 될 것이며, 남쪽에서는 2만 달러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경제협력은 서로의 통일비용을 줄여가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을 담은 칼럼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국경제의 숨통을 트는 데는 무능한 경제 관료의 교체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중국과의 협력을 통한 남북 경제교류 활성화가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입니다. 정치와 군사를 중시하는 하드파워 전략을 펼친 미국과 달리, 중국은 경제와 문화를 중시하는 소프트파워 전략을 중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정통성을 갖춘 시진핑 주석은 부국부민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는 부국부민을 최초로 이룩한 재상인 제나라의 관중을 역할모델로 삼고 있을 것입니다. 아시아나 비행기 사고로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이 죽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떠들어도 모른 척하며 봐주고 있는 이때가 우리에게는 최고의 호기일 것입니다.
중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세계 분쟁을 끊임없이 조성한 미국이 몰락해가고 있는 역사를 결코 되풀이하지 않을 자세입니다. 세계 각국에 설치되는 ‘공자학원’을 보십시오. 그들은 정치의 칼날이 아닌 경제의 칼날을 휘두르려 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들이 우리에게 실망해 경제적 보복을 가하려는 순간 우리는 한없는 추락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가 탄생한 이후, 그러니까 서기 2000년 동안에 중국은 2세기 정도만 빼고는 1800년 동안 GDP가 세계 1위였어요. 세계에서 1등 가는 부자나라였던 거지요.” 그렇습니다. 한나라에서 청나라까지 중국은 경제규모가 세계 1위였습니다. 지금 중국 전체의 GDP는 5000달러에 불과하지만 상주인구가 2000만 명인 상하이는 2만 달러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중국에서 2만 달러 수준인 사람이 이미 2억 명을 넘어섰다고 말합니다.
“우리 중국사람들이 한국사람들을 좀 석연찮게, 좀 뜨악하게 생각하고 있는 게 그 점 때문이야. 돈은 중국에서 다 벌어가면서, 방위는 중국을 견제해 대는 미국편에 서 있는 것 말이야. 그래서 어느 지식인이 이렇게 비판했잖아. 한국은 도자기점에서 쿵푸를 하고 있다. 그거 얼마나 표현을 잘했어. 도자기점에서 쿵푸를 하면 어떻게 되겠어? 도자기들 다 박살내는 거지. 한국이 계속 그런 식으로 했다간 중국과의 관계는 도자기점이 될 수밖에 없잖아.”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박근혜 정부의 국방과 외교를 완전 장악하고 있는 군 출신의 매파들이 우리 국민 모두를 쪽박 차게 만들 것 같은 두려움에 전율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북문제에 속수무책인 이 정부의 관료들부터 <정글만리>를 꼭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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