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금보다 좀 더 어렸을 때, 장래희망은 ‘욕쟁이 할머니’였다. 대중매체로 접한 욕쟁이 할머니들은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지만 누구에게도 비난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나는 그게 부러웠다. 소비자 갑질 사건이 빈번히 발생하는 대한민국에서, 식당 주인이 퉁명스럽게 면박 줘도 손님들이 얼굴 찌푸리지 않고 넉살 좋게 대응하다니! 유력한 대통령 후보에게 이놈, 저놈 해도 관용의 대상이 됐다. 모든 권력관계로부터 해방된 존재로 보였다.
하지만 ‘어떤’ 욕쟁이 할머니는 불쾌감을 선사하는 존재였다. 얼마 전 허리 언저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의 남자 친구와 같이 동네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는데, 그곳 주인 할머니가 식당에 있는 사람들 모두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남자야, 여자야?” “남자요.” “안 들려 크게 대답해, 이놈아.” “남자요!” “뭐? 남자라고? 못 믿겠는데? 벗겨봐야 알겠네.” 그러고는 혼자 낄낄대는 것이었다.
나는 정색했다. ‘혼자만 재밌으면 답니까? 저는 하나도 안 웃긴데요? 남자는 머리가 길면 안 됩니까? 도대체 그게 왜 놀림거리인지 모르겠네요. 게다가 그거, 성희롱입니다’와 같은 말들을 하고 싶었지만, 내가 그런 말을 하는 게 친구에게 더 불편한 상황을 초래할까봐 참았다. 자리를 박차고 다른 식당을 찾아가야 하나, 굳은 얼굴로 5초 정도 고민했지만 한파주의보가 내린 날이었다. 길거리에서 헤매면 기분을 더 잡칠 것 같았다. 친구의 기분을 살피며 넌지시 물어봤더니 그 역시 그냥 빨리 먹고 자리를 뜨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곧 먹음직스러운 찬과 찌개가 나왔고 우리는 금세 헤헤 웃었다.
불편한 기분은 휘발됐지만 생각의 잔상은 남았다. 내가 ‘그냥’ 욕쟁이 할머니가 되고 싶은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나는 ‘정의로운’ 욕쟁이 할머니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강자에게 꼿꼿이 맞서며 할 말 다 하지만 상대적 약자에게는 관용을 베풀 수 있는 여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봐서 할 말을 삼키지는 않지만 무엇이 ‘해야 할 말’인지에 대해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지혜, 부당한 상황에 순응하지 않고 해학이라는 무기를 활용하여 기어코 균열을 만드는 능란함을 갖춘 존재.
이것은 근래에 등장한 ‘프로불편러(pro+불편+er)’라는 단어가 호명하는 존재와도 닮아 있다. 프로불편러는 “이거 나만 불편한가요?”라는 제목으로 관심을 끌고, 본문에 디테일한 사연을 풀어내며 다른 누리꾼의 공감을 기대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신조어다. 처음 언어가 만들어졌을 때는 분명 대상에 대한 조롱의 의미도 있었다(“별걸 다 불편해하네, 프로불편러세요?”). 그러나 불편의 경험이 공유되면 될수록 ‘나만 느낀 불편’이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받는 이들이 늘어났고, 기록되지 않았으면 ‘별것 아닌 일’로 치부됐을 사안들이 누적됐으며, 폭력과 억압의 구조를 탐구할 수 있는 자료가 됐다. 더욱 ‘프로답게’ 불편을 말하는 법에 대한 전술도 공유됐다. 위로와 학습의 공동체가 형성됐다.
이런 뒷배를 생각하면, 지금 당장 ‘정의로운 욕쟁이 할머니’의 자아로 사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느껴진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현실적인 제약을 떠올리며 어깨를 떨어뜨렸다. 젊은이로서 자신의 주장을 강경하게 밀고 나가면 “어린 년이 한 마디도 안 지려고 따박따박 대든다”고 노여워하는 연장자를 마주하기 쉽다. 어쩌면 한 대 얻어맞을 수도 있다. 또한 어린 ‘년’은 ‘현모’처럼 너그럽고 ‘양처’처럼 상냥한 태도까지 강요받고,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거세게 비난받는다. 얼굴을 드러내고 발화하면, 내용은 경청하지 않고 외모 평가 및 모욕을 하는 뜨내기와 맞닥뜨리게 된다. 이래저래 자기검열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청년은 정녕 중장년층, 노년층과 상호 예의를 기반으로 해 토론할 수 없는 것인가? 왜 예의는 일방향이어야만 하나? 여자는 스스로의 감정과 사회적 요구와 문화의 개선에 대해 떠들면 안 되는 존재인가? 나는 할머니가 돼서야 이런 부당함으로부터, 사회적 억압과 강요로부터 벗어날 거라고 일찍이 짐작했던 것이다.
오늘도 장래희망은 정의로운 욕쟁이 할머니다. 그러나 그때를 기다리며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고 다짐한다.
최서윤 아마추어 창작자
'일반 칼럼 > 직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당한 말이 주는 폭력에 대하여 (0) | 2017.02.16 |
---|---|
할 말과 해서는 안될 말 (0) | 2017.02.14 |
남들 사는 대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0) | 2017.02.07 |
밸런타인데이, 하루쯤은 달콤하고 싶다 (0) | 2017.02.06 |
명절의 김지영씨들 (0) | 2017.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