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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국회가 개원했다. 문재인 정부는 시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매우 성공적으로 출범하기는 했지만, 이제 본격적인 시험대에 들어섰다. 그 어지럽기로 소문난 ‘여의도 정치’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야당들은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새 대표는 ‘강한 야당’에 대한 결기를 분명히 했고, 자유한국당은 엉뚱한 트집을 잡아 아예 국회 보이콧을 선언했다. 정의당을 제외한 야 3당은 이른바 ‘반문연대’를 형성할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자칫 정국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많은 개혁과제 해결이 때를 놓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벌써부터 몇몇 논객들은 문 대통령이 시민들의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열망이나 국정운영에 대한 높은 지지율에만 기대려 한다며 우려하던 터였다. 문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만 내세우고 의회정치와 정당정치의 문법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심지어 문 대통령이 대의제를 채택한 헌법 정신을 부정하고 있다거나 ‘지지율 독재’를 한다며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그러면서 협치를 주문하고 타협과 양보를 요구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아직도 진행 중인 ‘시민혁명’의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핵심 과제의 하나가 바로 정치적 체제 전환이다. 촛불시민혁명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87년 체제의 통상적인 정부들과는 달리 이 체제를 끝장내고 더 좋은 질을 가진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를 탄생시켜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을 갖고 있다. 촛불시민들은 무엇보다도 자유한국당으로 대변되는 반민주 적폐세력을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시키라고 명령했다. 툭하면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지만, 자유한국당은 이념적 편협함으로 보나, 그동안의 정치행태를 보나 도무지 다원적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건강한 보수 정당이라고 보기 힘들다. 이번의 국회 보이콧 작태만 보더라도 이는 너무도 분명하다. 이 당은 사법부의 판단을 정부의 언론장악 시도와 연결시키지만, 그것은 자신들이 집권기에 사법부도 조종하고 언론도 장악해 왔음을 사실상 고백하는 것일 뿐이다. 자신들이 그랬으니 현정부도 그럴 것이라고 말이다. 비록 우리가 자유한국당의 현실적 위상을 무턱대고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 저 당이 자유민주주의를 팔면서 우리 정치의 중심축이 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보아서는 안된다. 만약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여소야대 현실을 빌미 삼아 이런 반자유민주주의적 수구 정당과 섣부른 타협을 해서 촛불정신을 배반한다면, 그런 선택이야말로 오히려 커다란 민심이반을 낳을 것이다.

협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교과서적인 의회정치의 문법이 아니라 진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내기 위한 정치적 동맹이다. 과거로 회귀하려는 반문연대의 시도에 맞서 촛불시민들의 명령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동참했던 정치세력들의 연대, 말하자면 ‘촛불연대’를 새로운 차원에서 복원해 내야 한다. 그 연대야말로 민주공화국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를 지켜내기 위한 연대였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극중주의가 자유한국당과 민주당 사이를 기계적으로 저울질하지 못하게 막아야 하고, 바른정당이 보수대연합을 명분으로 자유한국당을 기웃거리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야당들이라고 그저 들러리만 서려 하지는 않을 터이다. 민주당이 앞장서서 자유한국당이 없거나 소수화된 미래의 새로운 정치 체제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제시하면서 다른 야당들에 분명하고 실질적인 정치적 이익을 줄 수 있는 연대의 끈을 제시해야 한다. 소수 정당의 생존과 위상을 확실하게 보장해 줄 수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는 방향의 선거제도 개혁이 그런 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개혁을 통해 진보 정당이 더 커지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자유한국당의 자리를 대체하는 다당제가 성립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양당중심제보다는 민주당을 위해서나, 사회개혁을 위해서나 훨씬 낫다. 그런 방향의 선거제도 개혁은 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지 않는가.

직접민주주의가 그 자체로 언제나 민주주의의 질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가 단적인 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시민들의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기본적으로 우리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했다. 우리 대의제는 다름 아니라 시민들을 제대로 대의하지 못해서 위기에 빠졌다. 무엇보다도 승자독식을 원칙으로 하는 현행 단순다수결 소선거구제에서는 패배한 후보를 지지한 시민들의 의사는 전혀 대변되지 못한다. 정치권은 시민들의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그 열망에 고장 난 대의제를 수리함으로써 응답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바람직한 선거제도에 대한 숙의의 과정을 ‘시민배심원단’에 맡겨도 좋겠다.

<장은주 | 영산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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