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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재직할 때 야구선수 오승환·임창용씨가 도박 혐의로 약식기소된 사건에 개입했다며 ‘견책’ 징계를 받은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지난 12일 낸 A4용지 1장 분량의 입장문은 상당히 격앙된 톤이었다. “미국 진출을 막았다는 비판을 받을 게 우려돼 조언한 것이지 결코 결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도대체 (해당 재판을 담당한) 김모 판사가 조언이 재판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나 압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사법행정권의 정당한 범위를 벗어났다는 징계사유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불복의 소송을 내겠다고도 했다.

그의 억울함은 정당한가. 현행법 어디에도 법원장이나 수석부장판사와 같은 사법행정권자에게 재판에 대해 ‘조언’하라는 권한은 부여하고 있지 않다. “인사·예산·회계·시설·통계·송무·등기·가족관계등록·공탁·집행관·법무사·법령조사 및 사법제도 연구에 관한 사무”가 법원조직법에 규정된 사법행정사무의 전부다.

특히 판사에 대한 인사 평정과 사무분담을 담당하는 수석부장판사의 ‘조언’은 그 자체로 조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법농단 의혹이 촉발된 계기인 지난해 3월 국제인권법연구회 설문조사를 보면 간단히 설명된다. 법관 500여명이 참여한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9명은 ‘법원장 등에 반하는 의사표시를 했을 때 불이익을 우려한다’고 답했다. 기타 의견 중에는 ‘직간접적인 사건 처리 관여’도 포함됐다.

피고인들에게 사건이 약식명령으로 끝날지, 공판에 회부될지는 차이가 크다. 김 판사 판단에 임 부장판사의 조언이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 판사는 임 부장판사 말을 들은 뒤 공판 회부 결정을 바꿨다. 번복의 특혜는 야구선수들이 입었다. 한 해 70만건에 이르는 다른 약식기소 사건에도 이런 ‘조언’이 반영되는지 궁금하다. 이 사건에서 다시 확인한 건 법원에 대한 시민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곳은 바로 법원이라는 점이다.

<이혜리 | 사회부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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