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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ings we touch have no permanence…. There is nothing we can hold onto in this world. Only by letting go can we truly possess what is real.”

2000년 개봉해 세계적 찬사를 받은 영화 <와호장룡>의 대사다. 무당파의 고수 리무바이가 가지고 있던 청명검을 둘러싼 얘기다. 청명검을 찾아 헤매지만 결국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는 스토리다. 누군가에게 ‘청명검’은 권력, 명예일 수도 있고, 또 많은 이들에겐 떼돈일 거다.

리무바이가 후학들에게 전하려던 바는 아마도 위 대사일 테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쥐고 있을 수 있는 영원한 건 없다. 내려놓아야만 참된 것을 진정으로 소유할 수 있다.’

리무바이 역을 맡은 홍콩 영화계의 거목 저우룬파(주윤발·63)가 최근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약 8100억원대 재산이라니…. 싱가포르 갑부의 딸이란 그의 아내도 뜻을 같이했다고 한다. 어쩌면 저우룬파는 리무바이의 현신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와호장룡>의 주윤발.

사람이 떵떵거리며 살아가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할까. 집은 적어도 서울 강남에 30평대 아파트가 있고, 고급 수입차를 굴리며, 물 건너온 명품으로 몸을 감싸야 할까.

누구도 정확히 계산하기는 어려울 텐데, 혹자는 ‘적어도 현금 20억원 남짓이면 더 이상의 돈은 별 의미가 없다’고도 한다. 혹시 너무 많은 재산이 지금 자신에게 모여 있다면 왜, 무엇을 위해서인지 이번 기회에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럼 왜 우리는 놓지 못하는가. 일단 인생의 업보인 자식새끼 때문이다. 저우룬파에게 자녀가 없는 점도 결단에 영향을 미쳤을 듯하다. 수년 전 역시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한 다른 유명배우는 얼마 전 말을 뒤집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아들 때문이라고도 하니 씁쓸하다.

우리가 아등바등하는 또 하나 이유가 있다면 노후 걱정이다. 여기서 S·K·Y로 대표되는 학벌이 불거지고, 강남 집값 타령을 비롯한 부동산 문제가 얽히고설킨다. 우리 사회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상태’에 가까운 정글이다.

이런 실타래를 끊을 진짜 ‘청명검’은 뭔가. 사실 답은 웬만큼 정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후 걱정을 덜어주는 복지체계가 모범답안에 가깝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살면 늙어서 호강은 못해도 폐지를 주워야 하는 걱정은 떨치게 해야 한다. 공부머리가 안되는데 굳이 학원 뺑뺑이를 돌리거나, 빚내가며 ‘엉터리 학종’을 억지로 채울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악연이 끊길 것이다.

독일형 마이스터고 어쩌고저쩌고 백날 떠들어봐야 안 먹힌다. 자기가 좋아하는 기술을 배워 사회에 나왔다가 협력업체나 프랜차이즈 본사에 갑질을 당할 수 있어서다. 부동산 투자인지, 투기인지 광풍이 부는 이유도 비슷하다. 근본 원인은 노후 걱정에 임대료라도 받겠다는 불안감이 커서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는 옛말이 있다. 만약에 재벌 총수가 자식에게 최소한 삶을 보장할 만큼만 빼고 전 재산을 환원했다고 치자. 그래도 그의 아들, 손자까지 걱정 없이 살 수 있을까. 아닐 공산이 크다. 누구든 한두 번 미끄러지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대한민국 사회다.

지분 일부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며 모두 자신의 것인 양 행세하는 총수일가들 모습에선 깃털 같은 존재의 가벼움을 느낀다. 리무바이가 극중 대나무를 타는 모습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그는 말했다. “돈은 내 것이 아니고 잠시 보관하는 것일 뿐이다.” 그럼 영원한 건? 혹자에겐 사랑이고 다른 누구에겐 아름다운 이름일 것이다. 리무바이처럼 살아도 되는 날을 꿈꾼다.

<전병역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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