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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굴산, 벼룩콧등, 수도사, 봉황대, 탑바위, 한우산. 관광안내지도에서 처음 보는 저 이름들을 중얼거려본다. 이런 고유명사를 불러주는 게 곧 이 고장을 알아가는 지름길이다. 여기는 의병의 고장인 경남 의령의 충익사 광장이다. 저 낯설고 재미있는 이름 중에서도 ‘함안층 빗방울자국(천연기념물제196호)’이 단연 마음을 끌어당겼다.
세상에, 빗방울 화석이라니! 그 어느 눈 밝은 사람이 공룡의 발자국 옆에서 빗방울을 캐내었단 말인가. 내력은 다음과 같았다. “중생대 백악기의 평원 위에 빗방울이 찍힌 흔적이 굳어진 것으로 (…) 약 1억년 전 건조한 평원 위에 한때 비가 내리면서 진흙 위에 빗방울자국이 찍히고, 그 위에 퇴적물이 덮이면서 굳어져 암석이 된 후에, 위에 덮였던 퇴적암이 오랜 세월의 침식작용에 의해 벗겨지고 원래의 빗방울자국 면이 노출된 것이다.”
질서 있게 층을 이루어 고집스럽게 앉아 있는 거무튀튀한 바위들. 육안으로 빗방울 찾기는 마른하늘에서 번개 찾기만큼이나 어려웠다. 한 발짝 건너 수령 300년의 느티나무 옆에 자전거수리점이 있다. 두 분이 서고 앉아서 자전거 ‘빵꾸’를 때우고 있다. 나도 슬쩍 끼어들었다. 저 빗방울 화석이 참, 대단합니다. 아, 글씨유, 억수로 오랜 옛날에 화산이 폭발해서 용암이 굳어가고 있는데 그때 빗방울이 슬쩍 끼어들었다 안 카능교. 전문 용어를 섞은 한 줄의 해설과 함께 흥에 겨운 듯 손바닥을 치며 장단을 맞추었다.
빗방울 화석지를 떠나려는데 맞춤하게 하늘에서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예고된 가을비였다. 바위가 더욱 시커멓게 젖어들더니 신기하게도 빗방울이 제 빗방울 조상의 흔적을 찾아내지 않겠는가. 지루한 장마도 한두 개의 빗방울에서 시작했다가 마지막은 한 방울로 끝난다. 이 세상의 구성 원리를 보여주는 한 이치다. 비는 하늘에서 오는 것. 동그랗게 뭉친 이 물방울은 흔적 없는 그 누군가가 슬쩍 제 한 자락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손바닥으로 빗방울 몇 개를 받았다. 하늘의 발바닥이 내 손바닥을 짚는 것 같은 이 느낌!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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