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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에 간식거리를 살 때마다 학생들과 마주친다. 편의점 한곳에는 우리 과 학생 중 둘이 각각 주말 전일, 주중 저녁 릴레이로 알바를 한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학교 앞에서도 알바 하는 학생을 찾을 수 있다. 일식주점에는 군대를 마치고 돌아온 시끌시끌한 복학생이 저녁시간을 책임지고 있고, 해장을 위해 들르는 카페에는 수줍은 신입생 남학생 한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먹자골목 전체를 뒤지면 줄잡아 우리 과 학생 십 수 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최저임금은 지난해에 비해 16.4%, 1060원이 오른 7530원이다. 실제 알바생들의 최저임금은 어떨까? 편의점 알바생들은 시간당 1000원 이상 덜 받는다고 한다. 그마저도 더 깎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부당하지 않으냐”며 “노동청에 신고하는 법을 알려주마” 했더니 손사래를 친다. “학교 앞과 근처에 편의점이 이렇게 많은데, 알바비를 제대로 줄 수나 있느냐”며 오히려 ‘영세 프랜차이즈 자영업자’들 편을 들어버린다. “학교 앞 편의점에서 알바 하는 애들은 다 이 정도 돈 받을 거를 감안하고 하는 거”란다. 교차로에 서서 세어보니 눈앞에만 편의점이 다섯 개가 있었다. 치킨집은 십 수 개. 주점이나 음식점 알바를 하는 경우 최저임금을 받거나, 좀 더 받는 경우는 있다고 한다. 대신 노동강도가 세다. 공부에 지장받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받는 것에 대한 선호. 편의점 알바는 어쩌면 합리적인 선택이다. 다만 벌이가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할 뿐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학생들도 많다. 방학 때마다 공장 알바를 하는 남학생들도 제법 있다. 제조업벨트가 위치한 동남권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이들은 조선소 사내하청이나, 공장의 조립 하청업무 등에 투입된다. 요새 조선소 일은 별로 없지만, 공장은 잘 소개받으면 일이 손에 좀 익을 때쯤 주말 특근과 야근을 뛰면 월수입 300만원 정도는 어렵지 않다고 한다. 남학생들은 제대하자마자 학기를 통째로 쉬고 공장에서 일하면 대학교 학비와 생활비 정도는 충분히 벌 수 있는 셈이다. 물론 서울에도 알바를 하는 학생은 많다. 그렇지만 제조업벨트가 있어 계절적으로 비정규직 수요가 급증할 때마다 꽤 높은 임금을 주는 직장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차이다. 몇몇은 여차하면 학교 관두고 공장으로 간단다.
지난 28일 통과된 최저임금 산입 개정안에 따라 정기상여금도 기본급의 25%인 39만원을 넘는 부분은 모두 최저임금에 반영된다. 식대나 교통비 등 복리후생비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이 다니는 공장에서 당분간 임금이 생각만큼 오르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어차피 계약직으로 몇달씩 일하는 거라 상여는 별 해당이 없을 것 같아 말하지 않았다. 사측이 최저임금에 들어갈 수당을 결정할 때 노동조합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의견청취’나 ‘협의’만 하게 만든 내용 때문에 양대 노총의 반발을 샀다. 단체협상으로 임금과 노동조건을 결정할 수 있다면, 최소한의 수준일지라도 협상의 테이블에 올라가게는 될 것이다. 하청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알바생들은 노동조합을 통해 ‘의견’이라도 낼 수 있을까. 편의점에서 월급을 떼여도 그러려니 하는데 말이다. 단체교섭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뭘 어떻게 해야 하나.
‘번듯한’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의 급여명세서엔 자잘하게 떼어가는 것도 많지만, 자잘하게 붙어 있는 항목도 많다. 복리후생비 외에도 정근수당·가족수당·자기계발비 등 다양하다. 내용으로 보면 기업이 아니라 국가가 제공해야 할 복지서비스의 이름들이다. 가족을 돌보는 것도, 자기계발을 해서 역량을 강화하는 것도 복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수당들의 형성 이유를 추적해보면 기본급을 올려주는 대신, 회사가 다른 명목으로 임금을 보전해준 경우다. 많은 노동조합은 한결같이 모든 직급 임금의 정액 인상을 요구했고, 회사는 정률 인상을 제시했다. 협상은 대개 정률 인상으로 끝나되, 일정 부분 특별 보너스나 ‘자잘한 수당’ 지급으로 결론이 나곤 했다. 물론 교섭력이 떨어지는 비정규직이나, 하청 중소기업 노동자는 정기상여금 정도를 제외하면 그러한 항목조차 없었다. 그 결과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 차이 중 많은 부분을 설명한다.
정기적으로 지급할 급여를 기본급 대신 다른 명목으로 지급한 것은 경영상의 어려움이 올 때 언제든 삭감할 수 있게 만들려는 회사 측의 의도이긴 했다. 그런 의미에서 최저임금에 복잡한 형태의 수당들을 통합해 단순화하는 건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논란이 어딘가 마뜩잖다. 수당 따위 없이 알바 하는 학생들이 생각나서다. ‘번듯한’ 회사에 가기 위한 전국적인 ‘스펙’ 쌓기 경쟁에서 멀리 떨어져 쉽게 포기하는 지방대 학생들은 알바를 하다가 근속은커녕 연봉조차 불분명한 하청 중소기업의 저임금 노동자가 되기 일쑤다. 로드숍 화장품 매장 점원이나 휴대폰 판매원 등 저임금 서비스 노동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카페 직영점 직원 정도면 감지덕지로 여긴다. 다 합쳐도 최저임금 못 맞추는 사업장은 전체의 15%에 달한다. 임금체계 바깥에 있는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외주작업을 맡아서 하는 작가들도 떠오른다.
복리후생비나 ‘저녁이 있는 삶’은 언감생심,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이 되는 이들에게 ‘최저임금’과 ‘수당’이란 도대체 뭔가 싶다. 예외라고 치부하기에 이들의 비중은 노동가능인구로 볼 때 절대다수일 것 같다.
저학년 때 진로 면담을 하면 “특별한 생각이 없다”고 말하고 이런저런 알바를 열심히 하던 학생들은 4학년이 되어 갑자기 철난 얼굴로 9급 공무원과 경찰이 되겠다고 찾아온다. 공무원밖에 없단다. 하루에 5시간 이상 엉덩이 붙이고 1년은 꼬박 공부할 수 있는지를 물어 보려다 참는다. 카페나 술집을 하겠다고 포부를 밝히거나, 아는 선배나 부모가 알려준 대기업(사실은 하청)에 가겠다고도 한다. 성실한 여학생들은 사무보조 자리를 잡거나 학교의 조교 자리를 노린다. 수당 포함 최저임금 언저리에 경력단절 오기 딱 좋은 비정규직 자리들이다.
진지하게 이것저것 묻는 학생들에게 공무원 말고도 다른 일자리도 괜찮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학생들이 최저임금을 받든 상여금을 더 받든 중장기적인 직업적 전망이란 것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양승훈 공작소경남대 교수·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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