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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자석이다. 편리성과 부, 사교라는 킬러 콘텐츠에 이끌려 도시로의 유입은 끊이지 않는다. 도시는 영역을 넓혀왔고 쾌적한 정주여건을 갖추기 위해 시설과 기능을 확장했다. 그리고 자연발생적인 도시에서 점차 계획된 도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리스 시민들은 민주주의 토론의 장인 아고라를 만들었고, 로마시대에는 포럼이 그 기능을 이어받았다. 식민지 개척에 나선 로마인들은 정치·군사·상업활동에 맞게 도시를 구획하고 시설을 배치했다. 그렇게 해서 식민도시 콜로니아, 병영도시 카스트라, 상업도시인 키비타스가 만들어졌다. 교통의 요지에 건설된 키비타스는 유럽 도시의 기원이 됐다.

산업혁명 이후 런던은 사람이 몰려오면서 도시기능이 마비 상태에 이르렀다. 많은 사람들이 유토피아를 꿈꾸고 도시에 왔지만 열악한 위생, 불편한 교통에 누울 공간조차 비좁은 단칸방 생활은 디스토피아였다. 인구집중은 주택, 교통, 환경, 범죄, 난개발 등의 문제를 한꺼번에 초래했다. 20세기 초 영국의 도시계획가인 에버니저 하워드(Ebenezer Howard)는 도시문제의 해결을 위해 ‘전원도시’ 구상을 내놓았다. 근대적 의미의 도시계획의 시작이다. 당시 런던을 비롯한 산업도시에는 인구가 과도하게 몰렸지만 나머지 지역은 인구가 줄고 쇠퇴했다. 인구 과밀과 유출이 동시에 발생한 것이다. 그는 대도시로의 인구이동에 초점을 두고 대도시의 매력과 농촌의 장점을 혼합해 인간을 위한 사회적 공간을 창안했다. 그것이 전원도시였다. 그의 구상은 런던 북쪽지역에 세운 레치워스(Letchworth)라는 최초의 전원도시로 구체화되었다. 자급자족이 가능하고, 주변 지역과 그린벨트로 분리돼 있으며 주거와 공업, 농업이 균형을 이룬 계획도시였다. 그린벨트의 개념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정부는 지난달 서울에 살 집이 부족하다면서 30만가구의 공공택지 개발계획을 내놓았다. 서울로 몰려드는 인구를 담기 위한 3기 신도시 대책이다. 정부는 서울·수도권 지역 17곳을 공공택지로 개발해 3만5000가구를 공급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서울 근처에 330만㎡ 이상의 대규모 택지 4~5곳을 조성해 20만가구를 공급하고, 추가로 도심 안의 유휴부지를 이용해 6만50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당장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발표된 옛 성동구치소 부지를 포함해 경기 광명 등의 지역민들은 반대에 나섰다.

신도시의 도시계획은 토지나 교통, 공원녹지, 편의시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바람직한 미래를 구현하기 위한 합리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그 주체는 지역 주민과 지방자치단체여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신도시 건설에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됐는지 의문이다. 주민들의 반대를 뚫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구태의 재현이다. 둘째 경제활동이나 교통·주거·교육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어야 한다. 정부는 주택공급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 실제 경기 광명은 교통난을 호소하고 있지만 대책은 난망이다. 마지막으로 자연환경과 역사적 가치의 보전과 활용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린벨트는 자연환경을 보전하는 방안인 동시에 미래세대가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정부는 서울시의 반대에 직권으로 그린벨트를 해제하겠다고 한다. 이에 덧붙여 정부는 공급대책을 내놓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공급을 차단하고 있다. 정부는 장기 임대주택사업자 등록을 유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부동산 매물이 줄어든다. 공급을 늘리겠다면서 오히려 반대되는 정책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하워드는 도시와 농촌의 장점을 살린 전원도시의 조건으로 6가지를 제시했다. 도시의 인구를 제한(3만~5만명)할 것, 주변에 농업지대(그린벨트)를 보유할 것, 산업을 확보할 것, 도시의 번영에 따른 이익을 지역사회를 위해 보유할 것, 토지를 공유할 것, 주민들의 권리를 최대한 향유할 수 있도록 할 것 등이다. 영국의 전원도시를 한국에 재현하자는 게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다만 정부가 추진하는 신도시가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고 지속가능한 공간인지 알고 싶은 것이다.

정부는 신도시 개발지구 지정작업을 2019년까지 마무리하고 2021년부터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군사작전을 하듯 주택공급계획을 밀어붙일 기세다. 이미 2기 신도시는 많은 곳이 미분양 상태다. 교통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아침마다 출근전쟁을 하는 곳이 부지기수다. 인구는 감소 추세다. 현재의 눈으로 5년, 10년, 20년 뒤의 부동산시장을 보는 게 옳은지 의문이다. 일본은 도쿄 주변에 70만채가 넘는 신도시의 빈집 문제로 골치다. 3기 신도시의 도시계획은 무엇인가. 오늘의 결정이 내일의 짐이 될 수 있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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