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고영재 | 언론인
농촌이 무너진 지 오래다. 농민들에게 팍팍한 삶의 고갯길은 힘겹기만 하다. 농업정책은 농민들의 마음을 사기에는 어딘가 진정성이 모자라다.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정치적 소외의 설움도 깊어지고 있다. 빈말이라도 정치인들의 관심은 한 가닥 위안이 될 터. ‘나랏님’에 도전하는 이들도 농업정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없는 것으로 비친다. 농사꾼 강광석씨를 만났다.
-오늘의 농업, 농촌은?
“한국농업은 농산물가격 불안정, 농가소득감소, 부채증가, 파산의 악순환에 있다. 농산물가격의 불안정은 무분별한 수입개방과 농업 정책의 오류가 그 원인이다. 농업피해를 전제로 한 FTA 협상이 대표적인 사례다. 농산물시장을 지나치게 시장주의로 접근하면 정부의 가격개입력이 약해져 결국 농민도 소비자도 손해 보는 결과를 낳는다.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관세를 없애 농산물을 수입하고, 떨어지면 시장에 맡기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정책의 근본적 변화가 없으면 농업의 미래는 없다. 자식에게 물려주기 싫은 농업의 현실이기에 농촌의 미래 또한 암울하다. 65세 노인이 우리 동네 청년회원이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싹은 자라게 마련이다. ‘희망적인 미래’의 조건은?
“농산물 생산과 유통에 국가가 직접 개입하는 방식으로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국민들 식탁에 꼭 올라야 하는 기초 농산물에 대한 수매제를 제도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국민이 일년동안 소비할 곡물, 채소 양을 미리 조사하고, 안정적인 재배면적을 확보하고 이것을 국가가 적정가격에 구입해 국민에게 더 싼 가격에 공급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농지 공개념 도입도 절실하다. 헌법에 경자유전의 원칙이 명시되어 있지만 우리 동네만 해도 소작지가 전체 면적의 50%가 넘는다.”
▲ 농사꾼 강광석씨를 만났다
농촌의 현실은 어둡다
그래도 빛과 희망이 아직 남아 있다
-농정당국의 대표적인 병폐는?
“농촌사회의 양극화가 심각하다. 농정당국이 오히려 이를 조장하고 있다. 대농이나 영농법인, 수출농 육성정책과 신지식인 선정 등이 그것이다. 중소농에 대한 지원은 관심 밖이다. 유령법인이 수두룩하다. 당국은 막대한 자금이 지원되는 사업을 제대로 관리하지도 않는다. 거액을 투자해 하우스를 짓고, 일본에 꽃을 수출하다 망한 농민들이 있다. 잠깐 잘 되다가 농약이 검출되고 환율이 떨어진 데다 쓰나미가 덮친 탓이다. 당국의 권장으로 밀농사가 크게 늘었다. 밀 자급률을 10%까지 올린다고 했다. 덕분에 올 밀농사는 풍작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수입 밀 관세를 내려주는 특혜를 연장해 주었다. 재고가 더욱 늘어난 밀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한치 앞도 못 보는 정책, 미국 곡물메이저 눈치만 보는 정책에 농민들만 죽어간다.”
-농촌, 농업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녔다. 위정자가 간과하고 있는 값진 가치들은?
“전문가들은 담수기능, 공기정화기능, 자연경관기능, 전통문화보전기능 등을 꼽고 있는데 ‘고향기능’을 추가하고 싶다. 언제든 찾아 위안을 얻을 곳이 있다는 건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농촌은 모든 도시인의 고향이다. 지치면 도둑고양이처럼 스며들어도 핀잔주거나 거부하지 않는 그런 곳이 고향이다.”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에 농업은?
“농업의 인류사적 기능은 인류를 먹여 살리는 것이다. 이는 숭고한 사명이다. 농업은 부족-지역-민족별로 분업과 협력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것을 신자유주의가 허물었다. 농산물이 교역의 대상이 된 순간부터 인류는 굶어죽기 시작했고 농민은 토지를 잃었다. 상품으로써 농산물을 인류를 먹이는 숭고한 생산물로 이해하고 귀중하게 생각하는 정신부터 복원해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가 ‘20-50 클럽’에 가입했다고 호들갑인데 식량자급률 25% 가지고 국격이니 국력이니 말하는 것이 볼썽사납다.”
-이른바 ‘억대 소득 농민’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한마디로 허구다. 강진의 경우 순소득이 1억원이 된다는 사람이 한 면에 한 두 사람 될까? 농정실패의 책임을 농민에게 전가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핍박받는 농민들, 저항의 힘이 미약하다.
“농민들은 어차피 농산물을 가지고 싸우는 수밖에 없다. 군청에 나락을 쌓아놓고 싸우는 방식으로는 이길 수 없다. 출하를 거부하고 정부하고 직접 협상하는 방식으로 싸움을 해야 한다. 지난번 우유파동에서 낙농가들이 보여주었다. 거듭, 국가수매제의 필요성을 외치고 싶다.”
-농촌 풍경이 바뀌고, 문화도 변하고 있다.
“마을입구에 있었던 ‘점방’이 사라지고, 면 소재지를 가도 저녁 9시만 되면 불 켜진 식당이 없다. 대형마트가 재래시장 상권을 잠식하는 현상은 시골도 예외가 아니다. 소소한 나물, 마늘, 양파를 내다파는 농민들이 설자리가 없다. 내년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취학예상 학생이 9명이란다. ‘전교 석차 10위’ 안에 드는 건 떼어 놓은 당상이다.”
-귀농자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살림살이가 어려운, 강퍅한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이 더 많이 내려 올 것이다. 좋은 일이다. 우리 마을도 젊은 부부가 귀농을 했는데 아이들이 셋이다. 마을에 활력을 심어주고 있다.”
-귀농희망자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농사로 먹고 살기 힘드니까 부인은 영양사로, 남편은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부부도 있다. 그냥 직장을 도시에서 시골로 옮긴 꼴이다. 성공사례는 환상이거나 적어도 부풀려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단칼에 결심하되,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가난하게 살 각오도 중요하다.”
강광석씨는 병역의무를 마친 직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소작 땅이 포함된 논 9000평, 밭 2000평이 그의 일터다. 벼와 비닐하우스 오이, 깨, 고추, 콩 농사를 짓고 있다. 농사 경력 15년, 마흔 두 살 젊은 농군이다. 본지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하는 필자이기도 하다.
농촌의 현실은 어둡다. 그래도 빛과 희망이 아직 남아 있다. 젊은 농민들의 고뇌가 그것이다.
'주제별 > 환경과 에너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시농부의 농담(農談)]땅의 숨통을 막는 장마 (0) | 2012.07.20 |
---|---|
[기고]기후변화와 식수 전용 저수지 (0) | 2012.07.16 |
[경향마당]에너지공동체로서의 배려심이 필요하다 (0) | 2012.07.15 |
[기고]상수원 저수시설 안전관리 ‘빨간불’ (0) | 2012.07.09 |
[사물과 사람 사이]떠난 자리의 품격 (0) | 2012.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