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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공감]이효리는 57㎏이다

opinionX 2019. 2. 27. 14:05

화제의 그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보았다. 가수 이효리씨가 자신의 몸무게를 공개했던…. 무대화장을 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에서 그녀는 잠시의 주저도 없이 “지금 57㎏이에요”라고 말했다. “속근육이 쪄서인지, 입던 옷들은 다 맞다”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나와 이효리씨 사이에 접점이 생기는 날이 오다니! 동영상을 보기 며칠 전, 나는 체중감량을 돕는다는 유료 애플리케이션에 가입했다. 내 목표 몸무게는 57㎏. 그런데 ‘원조 아이돌 이효리’가 그 몸무게라지 않은가.

쉰이 넘은 여고 동창들은 만나면, “탤런트 누가 하는 파운데이션” “누가 바르는 립스틱”이라며 서로의 화장품을 내놓고 떠든다. 그만큼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얼마나 많이, 대중매체에 재현되는가는 세대를 막론하고 그 내용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기호에 영향을 미친다. 여배우 제인 폰다와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 시인이며 여성운동가인 로빈 모건은 미디어에서의 여성 재현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의기투합해 2005년 여성미디어센터(Women’s Media Center)를 만들었다. 이 기관은 2012년부터 ‘미국 미디어에서의 여성 현황’이라는 연례보고서를 낸다. 보고서는 뉴스,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공연예술, 게임 등을 망라해 여성이 어떻게 재현되는지만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숫자가 제작 분야에서 일하는지, 어떤 지위를 차지하는지를 촘촘히 분석한다. 198쪽에 이르는 올해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메인 뉴스 시간 앵커와 기자의 63%가 남성인 반면 37%가 여성이었고,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영화 100편 중 96.4%가 남성이 감독했던 영화인 반면 여성 감독은 3.6%였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경우, 남성 연출자가 75%인 반면 여성 연출자는 25%였지만, 그나마 이 수치는 전년도에 비해 4%포인트 상승한 것이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스컬리 효과’에 대한 연구보고였다. 스컬리는 1993년부터 2002년까지 방영된 뒤 2016년 다시 후속편이 나온 인기 텔레비전 드라마 <X파일>의 여자 주인공. 물리학을 공부한 뒤 법의학을 전공한 박사이자 FBI 요원이다. 이성적인 남성이 감성적인 여성을 구하는 대부분의 드라마 구도와는 달리, <X파일>의 스컬리 박사는 초자연적인 ‘감(感)’을 믿다가 곧잘 곤경에 빠지는 남성 동료를 단단한 논리와 과학적인 지식을 동원해 구해내는 냉철한 여성이다.

지난 2월12일 여성가족부에서 발간한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 개정판은 “방송이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외모를 보여주고 다른 외모 각각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도록 권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여배우 지나 데이비스가 창설한 ‘미디어 속의 젠더 연구소’는 지난해 허구의 인물인 스컬리 박사가 여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X파일>을 본 경험이 있는 2021명의 25세 이상 이공계 전공 여성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X파일>을 여덟 시리즈 이상 본 열성 시청자들은 그보다 적게 본 응답자들에 비해 더 높은 비율로 이공계 직업을 갖고 있었고, “내 딸이나 손녀가 이공계 직업을 갖도록 격려하겠다”고 답했다. 남녀를 불문하고 일곱 살만 되면 ‘수학’과 ‘남자’를 짝지어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자란다는 아동발달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비추어보면, 허구의 인물인 스컬리 박사가 사회에 끼친 영향은 여성 노벨상 수상자 못지않은 셈이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내놓은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가 입길에 오르내린다. ‘음악방송 출연가수들은 모두 쌍둥이?’라고 표현하며 아이돌 그룹의 외모획일성을 지적한 대목이 논쟁에 불을 붙였다. 나라가 외모까지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는 반발이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2017년부터 이른바 ‘마른 모델 퇴출법’을 시행해왔고, 루이뷔통, 구치 등의 세계적인 패션기업들은 ‘모델헌장’을 마련해 일정 기준 이하의 마른 모델은 자사의 패션쇼와 광고에 세우지 않고 있다. 모델들의 건강을 보호하는 한편, 어린아이들이 비현실적인 신체 이미지를 가져 자기비하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세상 어느 누구의 얼굴도 같지 않은 다양성은 미디어의 영역에서도 지켜져야 한다.

<정은령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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