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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든 모더니티 역사에서 결정적 영향을 미친 역사적 전환점이 있기 마련이다. 미국의 경우 1776년 ‘건국’이 그러하다면, 프랑스의 경우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 그런 위상을 가진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이런 역사적 전환점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의를 갖는 사건은 1919년 3·1운동일 것이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서 물론 한 사건이 모든 것을 좌우하진 않는다. 3·1운동 이전에 동학농민혁명, 만민공동회, 광무개혁, 의병투쟁 등 역사적 분수령들이 존재했다. 이런 대내적 사건들이 누적되어 변화된 국제 환경 아래서 분출한 것이 바로 3·1운동이었다. 우리 모더니티 역사에서 3·1운동이 특별히 주목받는 것은, 3·1운동과 그 결과로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통해 우리나라가 제국(帝國)에서 민국(民國)으로, 군주정에서 공화정으로, 전통에서 현대로의 일대 전환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감회가 남다른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과거 100년이 결코 짧진 않았다. 3·1운동 이후 1945년 일제 식민지배로부터 광복을 이뤘고, 20세기 후반에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일궜다. 그렇다면 이제 대한민국 미래 100년을 어떻게 열어가야 할까.

미래 100년의 전망을 살펴보기 위해선 현재 우리 사회의 선 자리를 돌아봐야 한다. 2019년 대한민국은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성공의 대한민국’과 ‘고뇌의 대한민국’이 그것이다. 먼저 선진국 입구에 도달해 있고 경제적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의 모범 사례라는 사실은 ‘성공의 대한민국’의 구체적인 증거다. 하지만 다른 한편 현재의 우리 사회는 저성장, 불평등, 사회갈등, 인구절벽, 각자도생(各自圖生) 문화에서 볼 수 있는 ‘고뇌의 대한민국’의 모습 또한 보이고 있다.

고뇌의 대한민국을 극복하고 성공의 대한민국을 계승하기 위해선 우리 사회가 놓인 지구적 환경을 지켜봐야 한다.

앞으로 진행될 미래 100년은 경제·사회적 대전환이 계속되고, 그 속도는 배가될 것이다. 세계사적 차원에서 ‘제4차산업혁명’ 또는 ‘인더스트리 4.0’이라 불리는 새로운 과학기술 혁명은 이미 사회 제도는 물론 개인 생활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또 20세기가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였다면, 21세기에는 미국·중국·인도 간의 헤게모니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경제 혁신과 사회 불평등의 동시 증대, 정치적 포퓰리즘의 부상과 문화적 정체성의 도전이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세계사적 대전환에 대응하여 진정한 선진국으로 성숙하기 위해선 두 가지 과제가 중요하다. 첫째, 앞서 지적한 저성장, 불평등, 사회갈등, 인구절벽, 각자도생 문화를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둘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바탕으로 동북아 협력과 번영을 일궈나가야 한다. 동북아는 세계 정치·경제를 주도하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 및 협력이 진행되는 공간이다. 동북아의 번영을 이루기 위해 요구되는 일차적 조건은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과 이에 기반한 한반도 경제·사회 번영에 있다.

과거 100년처럼, 미래 100년 또한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대한민국 미래 100년은 크게 ‘단중기 미래(2019~2045)’와 ‘중장기 미래(2045~2119)’로 나눠볼 수 있다.

단중기 미래는 ‘민주공화국 100년’(2019)과 ‘광복 100년’(2045) 사이의 기간이다. 이 단중기 미래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토대로 새로운 ‘비전 2045’를 추진해나가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그 핵심 비전은 경제·사회적으로 완전한 선진국으로의 공고화, 동북아의 협력과 번영을 선도하는 중추국가로의 도약에 있다고 봐야 한다.

중장기 미래는 ‘민주공화국 200년’(2119)으로 가는 기간이다. 이 중장기 미래 100년의 전망을 예측하긴 어려운 일이지만 단중기 미래를 기반으로 해 중장기 미래 비전을 모색해 가야 한다. 여기에는 인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고 선도하는 문화국가로의 부상을 그 중심 비전으로 삼을 만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백범 김구가 ‘나의 소원’에서 남긴 말이다. 앞으로 진행될 미래 100년은 하나의 ‘지구촌’을 형성해 가면서 그 안에 긴장과 갈등을 내연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이 그 긴장과 갈등을 완화하고 해소하는 문화국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그 방향을 중장기 미래 비전으로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3·1운동 100주년을 눈앞에 둔 한 사회학자의 소망을 적어둔다.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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