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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쌍둥이 ㄱ과 ㄴ이 있다고 하자. 한날한시에 태어난 두 사람이지만 ㄱ은 ㄴ을 자기와 같은 쌍둥이로 인정하지 않았다. 자라는 동안 내내 ㄱ은 ㄴ에게 얼굴이 못생겼다, 키가 작다며 놀리기 일쑤였고, ㄴ이 갖고 놀던 장난감을 힘으로 빼앗기도 했다. ㄴ에 대한 ㄱ의 무시와 혐오는 점점 심해져 급기야 욕설과 폭행으로 이어졌고, 결국 참다 못한 ㄴ이 ㄱ에게 소리쳤다. “너는 뭐가 잘났다고 그래! 나 때리지 마! 그리고 네가 더 못생겼어!” ㄴ에게 처음으로 큰소리를 듣게 된 ㄱ은 순간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ㄴ에게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가 있어? 그리고 그렇게 고함치면서 말하면 안되지! 너 한 대 더 맞을래?” 과연 ㄱ은 ㄴ에게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걸까?
미투 운동부터 최근 있었던 이수역 술집 폭행건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로 우리 사회의 성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성갈등이란 사실 오랜 시간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성차별에 대해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발생한 성차별의 ‘사회적 진화’라 할 수 있다. 비록 그 갈등으로 인해 여러 진통이 있겠지만 그것은 우리 사회가 보다 성숙한 ‘성평등’을 이룩하기 위해 불가피한 성장통과 같다. 최근 불거진 우리 사회의 성갈등은 이미 뿌리 깊게 자리한 성차별에서 기인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남녀차별부터 사회구조적 차별, 거기에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여성 혐오 표현까지 우리 사회의 성차별은 그 뿌리가 매우 깊고도 강하다. 지하철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맞으면 지하철 폭행녀 사건이 되고, 여성이 남성을 때려도 지하철 폭행녀 사건이 되는 웃지 못할 현실이 우리 사회의 남성중심적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차별과 혐오에 대해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고 그것은 이내 갈등이란 형태로 사회에 드러나기 마련인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미러링이다. 이는 오랜 시간 남성으로부터 들어온 여성 혐오 표현을 참다 못한 여성들이 같은 방식으로 남성들에게 되돌려주는 것을 말하는데 이를 통해 여성 혐오 표현이 얼마나 심각한지 남성들이 직접 느끼게 하는 것이다. 단순히 외모 전체가 아닌 눈, 코, 입, 가슴, 엉덩이, 다리까지 온몸을 부위별로 조각내어 남성들에게 평가받아야 했던 여성들이 남성들 스스로가 대물이라며 자부하던 그들의 성기를 향해 “너희 거 작아”라고 평가함으로써 그들 또한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감격’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누군가가 자신의 몸에 대해 조롱하거나 평가하는 것이 불쾌한 일이었구나. 그러니 이제 누구도 타인의 몸에 대해 조롱하거나 평가해서는 안되겠구나’ 하고 남성들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채 자신의 성기를 조롱하는 표현에 대해서만 발끈하는 것을 보면 앞서 언급한 쌍둥이 이야기에서 ㄱ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른다.
물론 타인에 대한 조롱이나 혐오 표현을 옹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 어떠한 혐오 표현도 우리 사회에서 용인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남성들이 자신들에 대한 혐오 표현에 분노를 느끼며 그러한 혐오는 근절되어야 한다고 목청 높여 이야기하려면 그에 앞서 그동안 우리 사회에 퍼져있던 여성 혐오 표현에 대해 남성들부터 사과하고 앞장서서 근절하자고 소리 높이는 것이 맞는 순서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차별’에서 ‘성갈등’을 넘어 서로가 서로를 혐오하지 않는 ‘성평등’으로 향하는 길이다.
스스로 ‘대물’이라 부르며 자부하던 남성의 그것은 여성들의 미러링으로 하염없이 작아지고 있다. 아니, 정작 ‘대물’을 쪼그라들게 만드는 것은 미러링 표현 자체가 아니라 ‘그런 표현을 하다니 맞을 만하다’는 남성들 스스로의 옹졸한 인식이다. 이 땅의 남성들이여, 진정 대물이라면 그간 여성들에게 가해진 숱한 혐오 표현에 대해 먼저 인정하고 사과부터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6.9㎝이니 소추니 하는 단어들에 부들부들 떨며 화부터 내는 것은 어딘지 영 대물스럽지가 않다.
<김종현 | 자발적 거지&소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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