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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가 작지 않은 화제다. 팝송을 즐겨 듣던 한 사람으로 영국 밴드 ‘퀸(Queen)’과 그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 현대사에서 팝송의 전성시대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였다. 내가 팝송을 듣기 시작한 때는 1970년대였다. 중학생이 돼서 매일 심야 라디오방송을 듣고, 잡지 ‘월간팝송’을 읽고, 빌보드 차트를 눈여겨보곤 했다.

여기서 팝송 이야기를 꺼낸 것은 예술과 사회의 관계 때문이다. 예술사가 아르놀트 하우저에 따르면, 예술과 사회는 분리되지 않는다. 하우저는 내재적 방법과 예술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기성 이론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다. 예술 역시 지식의 한 형태라면, 어떤 지식도 사회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는 이론틀을 제시하고, 사회 속의 예술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배우 라미 말렉이 출연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돌아보면, 전후 자본주의가 ‘황금 시대’를 끝낸 것은 1970년대 초반이었다. 복지국가의 위기(1970년대), 신자유주의의 등장과 공고화(1980년대), 정보자본주의의 부상과 금융자본 세계화의 절정(1990년대)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와 2008년 금융 위기와 신자유주의의 파국이 이어졌고, 이후 최근까지 불안과 분노를 수반한 포스트신자유주의로의 이행이 진행되고 있다.

하우저의 이론틀을 응용해 말하면, 1970년대의 레드 제플린과 핑크 플로이드, 1980년대의 퀸과 U2, 1990년대의 라디오헤드와 스매싱 펌킨스, 2000년대에 들어온 다음엔 에미넴이 시대적 변동에 대한 음악적 반응이었다. 이들의 노래에는 사회경제적 변화에 맞선 자아정체성의 대응이 담겨 있었다. 내 경우를 돌아봐도, 핑크 플로이드의 ‘타임(Time)’, U2의 ‘위드 오어 위드아웃 유(With or Without You)’, 라디오헤드의 ‘크립(Creep)’, 에미넴의 ‘루즈 유어셀프(Lose Yourself)’를 즐겨 들으며 살아왔다.

1970년대 중반 ‘보헤미안 랩소디’로 내 삶에 걸어 들어온 퀸의 노래들은 1990년대 초반 ‘더 쇼 머스트 고 온(The Show Must Go On)’까지 작지 않은 듣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런 팝송이 내게 가장 멀어졌던 시기는 1980년대였다. 핑크 플로이드나 퀸보다는 김민기, 정태춘, 민중가요를 더 많이 좋아했고, 더 열심히 불렀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프랑스 아날학파가 주조한 개념인 망탈리테다. 망탈리테란 특정한 시대에 개인들이 공유하는 집단적 사고방식 및 생활방식, 다시 말해 집합적 무의식 또는 심성을 뜻한다. 이론적으로 망탈리테는 수백 년에 걸친 장기지속의 역사에 대응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사회변동의 속도가 빠른 사회에선 세대에 따른 망탈리테의 차이를 생각해볼 수 있다.

세대적으로 접근하면, 196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선 산업화세대의 망탈리테, 민주화세대의 망탈리테, 그리고 청년세대의 망탈리테가 존재해 왔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내게 소환한 것은 민주화세대의 망탈리테다.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가 부른 ‘그날이 오면’과 퀸이 부른 ‘보헤미안 랩소디’는 나를 포함한 민주화세대의 긴장하고 갈등하는 망탈리테를 구성하는 한 요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날이 오면’이 구조적 차원의 해방에 대한 열망을 반영하고 있었다면, ‘보헤미안 랩소디’는 개인적 차원의 자유에 대한 희구를 담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86세대’로 대변되는 민주화세대가 모두 팝송을 즐겨 들었던 것은 아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청년세대 또한 작지 않게 공감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하여, 음악이 좋으면 즐기면 그만이지 사회학자 아니랄까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나를 탓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내가 얘기하려는 것은 민주화시대를 돌아보며 재발견하는 망탈리테의 실체다. 민주화시대의 심층의식은 욕망과 이성,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 민족주의와 세계주의의 경계에서 배양됐고, 그 긴장하고 갈등하는 양상을 집합적 무의식으로 내면화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심층의식 역시 시간의 풍화를 견디지는 못할 것이다. 프레디 머큐리가 절규하듯, “누구든 알 수 있어. 내게 정말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지식사회는 이제 민주화세대의 망탈리테와 민주화시대의 심층의식에 대한 고고학적 탐구를 시도할 때가 된 것으로 보인다. 무엇을 놓아두고 무엇을 간직한 채 우리 사회와 문화는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애틋한 마음으로 지켜본 한 사회학자의 소회를 적어둔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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