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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승 | 신라대 교수·바이오식품소재학
과학자는 보수적일까 진보적일까? 과문해서 우리나라의 통계는 잘 모르겠으나 미국 과학자에 대한 통계는 본 적이 있다. 2009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과학자의 무려 52%가 진보(자유주의), 35%가 중도였고 보수는 9%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미국인 전체를 대상으로 한 통계는 결과가 많이 다르다. 미국인의 경우엔 20%가 진보, 38%가 중도, 37%가 보수라고 응답했다. 미국 내 과학자와 비과학자 사이에 매우 큰 차이가 존재함을 볼 수 있다.
물론 극단적 보수주의자에 가까운 조지 부시 대통령 치하 8년에 대한 미국 과학자들의 반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 논란을 필두로 각종 연구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과학자들을 괴롭혔다. 게다가 과학 예산의 삭감으로 온갖 연구비가 감소되다 보니 노벨상 수상자 48명이 부시의 재선을 막기 위해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 지인의 지도교수는 정치적 스트레스로 정신과 진료까지 받았단다. 그렇다고 해도 이 결과는 놀랍다. 특히 우리나라 과학자들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기본적으로 과학자들은 일정 정도 진보적 성향을 갖게 된다. 과학은 계속 새로움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안되는 것을 되게 하고 금기시하는 것을 파헤치기 때문에 기존의 윤리와 부딪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하는 일과 개인의 성향이 다른 경우도 많다. 또한 새로운 시도가 꼭 진보적인 것도 아니다. 유전자 변형식품이나 환경 분야에서는 옛것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진보라고 불리기도 한다. 진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지점이다.
19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이 끝났다. 과학기술계 일각에서는 이번 총선 전부터 과학기술계 후보들의 원내 진입을 위한 노력을 해왔다. 각 정당에 비례대표 상위순번 공천을 요구하고 소위 “친과학 후보”를 선정하기도 했다. 18대 국회의 경우 순수(?) 과학기술계 의원들이 13명으로 전체 국회의원의 4%가 조금 넘었다고 하니 그런 노력이 필요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국회의원 후보 중 법조인의 비율이 가장 높고 언론인이 두 번째였다는데 법조계와 언론계가 온갖 비판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 국회의원 배출이 그 분야의 발전과 상관관계가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이런 노력 때문인지 19대 국회에는 과학기술계 출신 또는 친과학기술계 당선자가 전보다는 상당히 늘었다고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70%가량이 새누리당으로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정당 소속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인들은 유달리 보수적인 것일까? 어째서 과학기술 관련 부처인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 해양수산부 등을 통폐합시킨 정당에 더 많은 과학기술계 인사들이 소속되어 있는 것일까?
그 이유라고 회자되는 몇 가지 분석은 이렇다. 박정희 시절 우리나라 과학 입국을 시작했고 그 장녀도 공대를 보냈다는 향수가 이공계에 퍼져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 우리나라 과학자들은 외국과 달리 계급적으로 보수적이라는 분석, 과학기술계 출신 국회의원이라지만 실제는 관련 기업 종사자이거나 관련 학과 졸업자에 불과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별로 의미가 없다는 분석, 과학기술도 돈이 없으면 못하기 때문에 경제력이 센 정당에 붙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 등등이다.
그런데 혹시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야권이 과학기술계의 문제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오죽하면 관련 단체에서 새누리당의 공천에는 아쉬움을 표하는 성명을 낸 데 비해 민주통합당의 공천에는 분노한다는 성명을 냈을까. 통합민주당의 40명 비례대표 후보 가운데 과학기술계 인사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좀 심했다. 심지어 4대강 사업에 그렇게 반대를 했으면서 관련 연구자 한 명도 공천하지 않았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진보진영이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눈에 있다. 조금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때때로 그들의 시각은 기계문명을 거부했던 19세기 초의 러다이트운동을 연상시키기까지 한다. 현대 과학기술에 부정적 측면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거기에만 너무 집중하는 모습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뭔가를 하지 말자는 것보다는 뭔가를 하자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과학기술계에선 올 연말에 있을 대선이 흥미롭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여권의 가장 유력한 후보는 전자공학과 출신이고, 야권의 유력 후보 중 한 인사는 의사에 IT 벤처기업인 출신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공계 출신이라고 이공계 정책을 잘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문제는 출신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사상이고 철학이다.
아무튼 여러 대선 후보들이 대선에 나오기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과외를 받는다던데 과연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과외도 받을까 궁금하다. 제대로 과외를 받았다면 이번주 토요일 과학의 날(21일)을 좋은 기회로 삼을 것이다. 이런 기회에 과학기술계 현안과 관련된 자신의 비전을 보여주는 정치인을 본다면 진보와 보수를 떠나 점수를 좀 더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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