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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서구 문화권에서 지혜의 대명사는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다. 성경 열왕기상 3장에 기록되어 있는, 두 여자가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자식이라 다투는 사건의 재판은 아주 유명하다. 이 쟁론에 대해 솔로몬은 칼을 가져오게 하여 아이를 둘로 나누라고 하고, 아이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주장을 철회하는 여자를 생모로 판정한다. 역사는 이 지혜로운 처결을 일러 ‘솔로몬의 재판’이라 부른다.
중국에도 이와 꼭같은 이야기가 있다. 원나라 때 이잠부(李潛夫)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희곡 <회란기(灰란記)>가 그것이다. 이 희곡에 포청천(包靑天)이 등장한다. 마씨 집안의 첩이 아들을 낳았는데, 이를 질투한 정실부인이 남편을 독살하고 첩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뒤 남편의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그 아이를 자기가 낳았다고 우긴다. 포청천은 땅바닥에 석회로 동그라미를 그린 다음 아이를 그 안에 세우고 두 여자에게 팔을 잡아당기게 한다. 정실부인은 사력을 다해 아이를 끌었으나 첩은 아이가 아파하자 손을 놓아 버리고 만다. 판관은 첩이 진짜 어머니란 판결을 내린다. 이 장면은 명나라에 이르러 원나라 희곡을 모은‘원곡선(元曲選)’의 삽화에도 나온다.
솔로몬의 재판이나 포청천의 재판은 모두 친어머니를 분별하는 데 목표를 두고 그 증명을 생모로서의 모성 본능에서 찾았다. 자신의 몸으로 낳은 생명에 대한 희생적 사랑은 사람이거나 동물이거나를 막론하고 다를 바가 없다. 황순원의 단편소설 ‘피’에서는, 새끼 다람쥐를 이용하여 어미 다람쥐를 잡는 인간의 교활한 지혜를 매우 비판적으로 그린다.
하지만 20세기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 고대와 중세의 고색창연한 모성론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의 서사극 <코카서스의 백묵원>은 중국의 <회란기>를 중세 러시아의 코카서스 지방으로 옮겨 놓았다. 반란 중에 총독이 살해되고 그 부인은 어린 아들을 버려둔 채 도망간다. 이 아이를 기른 이는 젊은 하녀였다. 반란이 진압된 후 총독 부인은 아이를 찾으려 한다. 총독 부인과 하녀 사이에 아이를 두고 <회란기>와 같이 백묵으로 그린 동그라미 재판이 벌어진다. 이 작품에서는 하녀 쪽에서 먼저 손을 놓고, 작가를 대신한 재판관은 양모의 손을 들어준다. 진정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니로서의 구실을 올곧게 하는 어머니가 아이를 길러야 한다는 논리가 앞의 두 이야기에 대한 반전의 형국이 된다.
지난 11일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국민에게 표를 달라는 보수와 진보 양당의 행태는, 꼭 백묵 동그라미 안에 서 있는 아이의 양팔을 잡아당기는 두 여자의 자기주장을 닮았다. 두 여자는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적임자라는 주장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종국에 가서 아이가 아플까봐 팔을 놓아주는 여자도 없었다. 다시 말해 아이가 나라라면 좋은 어머니 같은 정당은 끝까지 없었다는 말이다.
어느 당이 더 나라를 사랑하고 존중하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정당·정책·인물이 실종된 ‘3무 선거’가 주류를 형성했고,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평가를 적용하기도 어려웠다. 여러 악재들이 순차적으로 판세를 좌우하면서, 마치 두 여자를 편드는 주변의 입방아처럼 풍설이 난무했다. 어느 쪽이 진짜 모성애를 가진 생모인지, 또는 생모가 아닐지라도 어느 쪽이 진짜 아이를 더 사랑하는 어머니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4000만이 넘는 국민의 마음이 모인 표심의 향배다. 안정 속의 개혁을 바라는 미래의 요구를, 마치 몇 사람이 의논해서 도출한 결론처럼 명료하게 피력했다.
우리 국민은 평소 두 여자의 기득권에 눌려 침묵하고 있다가도 4년에 한 번은 무서운 재판관이 된다. 보다 큰 재판이 8개월 후에 다시 열린다. 이 재판의 결과에 따라 아이의 운명이 달라진다. 두 여자는 모름지기 이 아이를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근본을 암행어사의 마패처럼 숨기고 있는 국민이 곧 재판관이기 때문이다.
[총선 이슈 진단]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경향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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