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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정치시평]진보적 성찰성

opinionX 2012. 4. 15. 11:37

조희연|성공회대 교수·정치사회학


오래전부터 나는 진보의 자기성찰성 혹은 진보적 성찰성이라고 하는 화두를 가지고 있다. 이는 진보가 스스로를 성찰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이나 태도인데, 우리가 통상 적에게 들이대는 비판의 잣대를 진보와 좌파가 스스로에게 적용해보는 감수성을 갖자는 취지다. 진보의 성찰성은 진보가 더 많은 대중적 지지를 받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적의 장점을 ‘전유’할 수 있는 전략능력을 제고하게 할 수도 있다.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며 심각한 민주당 지도부 (경향신문DB)



이번 총선에서도 고비마다 이러한 성찰적 감수성을 가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가졌다. 예컨대 김용민 파동을 생각해보자. ‘보수의 공세에 대해 정면돌파’한다는 시각에서가 아니라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접근했다면 어땠을까. 김용민의 설화는 그것이 과거에 이루어진 일이고, 주로 성인 인터넷방송에서 이루어진 가십성 말들이며, 김용민을 ‘기독교의 적’으로 몰고 가는 보수언론의 광기, 심지어 조선일보의 무가지 공세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적을 비판하던 잣대를 조금이라도 들이댄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강용석이 술판에서 자신을 떠벌리기 위해 한 발언을 다룬 우리 사회의 기준을 거울로 볼 때도 그렇다. 결과론적으로 보더라도, 1000표 안팎의 초박빙 선거구가 10곳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선거결과의 구도 자체가 바뀌었을 수도 있었다는 전략적 관점에서도 그러하다. 


 이 외에도, 민주통합당의 경우, 공천에서부터 선거에 이르는 과정에서, 더 많은 성찰적 감수성으로 전략을 구사했더라면 다른 경로를 걸을 수도 있었다. ‘무죄 추정’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것으로 공천의 개혁성이 빛을 바래는 것을 방치하거나, 불법선거운동을 하다가 적발되어 자살한 사건을 해당 지역구 ‘무공천’으로 유야무야 넘어간다거나, 공천심사위원회의 심사결과가 거의 누더기가 되어 계파 간에 비례대표를 나눠먹기 하는 과정 등에서 ‘반대 진영이 그런 일을 했더라면’ 하는 성찰적 감수성은 실종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민간인 불법사찰의 폭로과정에서도 조금 더 섬세한 감수성을 견지했더라면, ‘이전 정부에서도 사찰이 있었다’는 식의 역공은 발을 디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조금 다른 문제이지만, ‘당내 패권주의’나 트위터상의 과잉진영논리 같은 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때로는 이러한 성찰적 감수성에 기초하게 되면, 우리가 가진 내재적 딜레마를 인정하고 그것을 정면돌파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진솔하게 천착하게 만들 수도 있다.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나 제주 해군기지 문제 같은 것도 그렇다. ‘자기들이 집권했을 때는 좋은 일이라고 추진하다가 야당이 되니까 반대하니 얼마나 무책임한가’라는 식의 여당 공세에 대해, 국민들에게 납득할 수 있게 이러한 변화를 논리적으로 해명하는 노력도 이러한 감수성에서 출발할 수 있다. 


사실 독재가 폭력적으로 작동하던 엄혹한 시절에는 이러한 미덕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물론 너무 도덕적이라거나 결과론적 논리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일리가 있다. 치열한 전투에서 좌고우면하지 않는 돌파 자세가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성찰적 감수성이 비단 정치적으로 불리한 결과만을 낳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번 선거는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서울 관악구의 이정희 후보 진영의 여론조사 조작 파동에 대해, ‘상대방 후보도 그랬다’고 해서 쉽게 진영논리로 갈 수도 있었지만, 내가 보는 한에서는 자기성찰성에 기초한 ‘용퇴’의 선택으로 갑자기 이정희에게 찬사를 보내는 분위기로 반전되었던 것이 그 예이다. 


나는 앞으로 진보가 대중적 세력으로 되어 갈수록, 높은 진보적 성찰의 감수성과 방법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과 사를 구분하는 문제, 공금 사용에서의 엄격성, ‘전략적 승리’를 위해 쉽게 ‘전술적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질 수 있는 방만함, 성희롱과 같은 문제에 대한 느슨함 등 많은 문제들에서 진보적 성찰성을 가지고 더욱 엄격함을 가져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진보 일반이 아니라 나에 대한 화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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