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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내년부터 경기지역 초·중·고등학교 교장 또는 교감이 수업에 참여하도록 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교장·교감 수업 참여를 찬성하는 측은 교장·교감이 수업에 참여하면 수업기피 교직문화가 바뀌고, 학생들과 소통을 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학교장 수업 참여는 교실 현장의 생생함을 학교행정에 담아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반면 반대하는 측은 학교장은 학교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수업 참여보다는 연구에 주력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학생·학부모·교사와의 소통 및 학교 경영이 수업 참여보다 중요한다는 것이다.

■ 승진경쟁 해소·학생들과 소통 도움 ‘솔선수범’ 나서야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는 교장이 주당 4~10시간 정도의 수업을 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는 한 번 교감이나 교장이 되고나면 다시는 수업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럽 국가의 교장들이 한국 교장들을 부러워할 만하다. 그래서 그런지 수업은 물론 행정업무, 학생생활지도 등 여러 가지 일로 늘 바쁜 유럽 학교 교장들의 직업 만족도는 비교적 낮다.

반면 수업이나 학생생활지도를 담당하지 않는 한국 교장들의 직업 만족도는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경기도교육청이 교장의 수업 참여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르면 내년부터 주당 4~6시간씩 수업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고 있다. 일부 교직단체가 ‘수업하는 것은 교장권 침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만 추진된다면 ‘수업하는 교장’ 문화가 학교사회나 교직문화에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는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본다.

우선 ‘수업 기피’ 교직사회 문화가 크게 바뀔 것이다. ‘가르치는 일’로부터 시작해 교장이 되어서도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교단을 떠나는 것을 보면, 교사들의 생각이 많이 바뀔 것 같다. 나이가 들어도 수업을 해야 하는 교사에서 벗어나기 위한 치열한 승진 경쟁도 어느 정도 누그러질 것이다.

학생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더 잘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초등학교 3학년 학급담임으로서 아이들을 3주 동안 가르친 적이 있다. 담임선생님이 병가를 내서 시간제 강사를 구하는 대신 내가 들어가 주당 21시간씩 수업을 한 것이다. 매일 아침 교문에서 아이들을 만나왔지만, 수업 중에 아이들이 배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느낌이 또 달랐다. 보다 더 깊이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었고, 아이들이 생활하는 생생한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병가 낸 선생님의 어려움을 공감할 수 있었고, 학급운영을 위해 애쓰신 선생님에게 고마운 마음도 느꼈다. 그렇다고 학교 경영에 큰 공백이 초래된 것도 없었다. 조금 바빴을 뿐이다.

교장의 수업 참여는 학교 개혁의 동력인 ‘동료성 형성’에도 도움이 된다. 올해 3~6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림동화를 활용한 문학수업을 30여시간 진행했다. 모든 수업 내용은 담임선생님과의 협의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내 수업을 모든 선생님들에게 자발적으로 공개하고 전체 교사가 모인 가운데 수업사례연구회를 갖기도 했다. 이를 통해 교사들과 좀 더 친해졌다. 수업이나 교육과정 운영 등 학교 운영 전반에 걸쳐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교육과 행정이 조화를 이뤄야 균형있는 학교 경영을 할 수 있다. 교실 수업의 생생함은 학교 정책이나 행정 속에서 살아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행정 따로’ ‘교육 따로’로 갈 수밖에 없다. 학교의 동맥경화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학교장 수업 참여는 교실 현장의 생생함을 학교 행정에 담아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경기도교육청의 ‘수업하는 교장’ 추진은 교장의 직무와 권한을 새 시대에 맞게 재정립하고, 새로운 교장상을 수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자치단체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교장 임명권자인 중앙정부가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가 나서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교장이 조선인 교사와 학생을 감시하도록 비정상적으로 집중시켜 놓은 교장의 ‘절대 권력’을 새로운 흐름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교장이라는 명예와 더불어 일과 책임이 더 많아지는 독일형 교장 직무시스템은 시사하는 바 크다.

갈수록 수업이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수업이 흔들리면 학교가 흔들린다. 리더는 가장 중요한 일을 앞장서 실천하는 사람이다. 이제 교장이 솔선수범해 ‘수업 참여’를 실천할 때다. 선생님들과 함께 흔들리는 수업을 바로잡고 함께 가야 할 때이다.

<박준표 | 경기 남양주 월문초등학교 교장>


서울 소의초등학교 심영면 교장 (출처 : 경향DB)



■ 획일적 시행 문제…‘연구하는 교장·교감’ 추세 역행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내년부터 교장·교감에게 수업을 하도록 제도화하겠다는 명분은 첫째 법적으로 교장·교감의 수업이 가능하다는 점, 둘째 학생들과의 소통 및 교사 격려를 위해 교장실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점, 셋째 선진국 중에서도 교장·교감이 수업하는 국가가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미래지향적인 ‘연구하는 교장·교감상’을 제안하고, ‘수업하는 교장·교감상’에 대한 반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교장·교감의 학생과의 소통 및 교사 격려는 수업보다 더 큰 교육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세계 모든 국가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교장·교감에게 단순한 교과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한 인성·생활교육 등 삶의 지혜를 체득시키는 전체 학생의 담임선생님이자 학부모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교장·교감은 학교 경영자이자 교육책임자로서 부분이 아닌 모든 학생, 학부모, 교직원에 대한 교육과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초중등교육법 제20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교장·교감의 학생교육’의 의미를 지극히 한정적·자의적으로 해석해 교장·교감에게 획일적인 수업을 부과하려는 경기도교육청의 정책방향은 교무 통할과 장학, 그리고 전체 학생, 학부모와의 소통과 교감 등 학교경영 전반에 대한 교장·교감의 업무특성을 축소시키는 우를 범하는 정책일 수밖에 없다.

둘째, 최근 들어 학교장·교감은 법령, 조례 그리고 교육청에서 하달하고 있는 교육행정 지침과 공문을 통해 마치 ‘만물박사’와 같은 과도한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특히 학부모 민원, 지역사회 협력, 학교시설, 학교폭력, 학교급식 등 지원, 교내 각종 위원회 준비·참석·결과보고, 교육청이 요구하는 잦은 출장 등으로 인해 고정된 형태의 수업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아울러 갑작스러운 교장·교감의 업무발생은 학생 수업의 불규칙성을 가져와 오히려 교과진도의 어려움, 학생들의 학업성취 지장의 부작용도 초래할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교육감과 일부 교원들은 ‘교장은 교장실에서 나와야 한다’는 구호로 수업하는 교장을 요구한다. 하지만 교장은 교장실에서 학생, 학부모, 교사와 상담하고, 교장실 밖에서는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학교 전체를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셋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경우 소규모 학교를 중심으로 수업교장이 있긴 하나, 규모가 크고 학부모 및 지역사회의 요구를 반영하는 학교의 교장은 수업방법 및 교재개발, 수업지원 정책 개발 등의 장학 연구활동이 주된 업무이다. 2013년 교수·학습에 대한 OECD 국제조사보고서는 학교장의 핵심적인 역량으로 수업리더십(장학지도)과 학교행정 경영을 제시하면서, ‘연구하는 교장상’을 강조하고 있다. 수업리더십의 기능으로서 학습공동체 개발·지원, 수업적 피드백 제공, 수업 모델 개발, 교수학습 환경 지원 등과 같은 장학 연구능력을 강조하고 있는 반면, 교장의 직접 수업을 강조하지는 않고 있다. 이러한 선진국들의 ‘연구하는 교장·교감상’ 추세에 역행해 교장·교감을 교실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는 정책은 결코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이 시대가 바라는 교장·교감상은 학생, 학부모, 교사와 소통하고 24시간 불철주야 단위학교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교장·교감상’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교사 격려, 학생과의 소통이 그토록 소중한 가치라면 교육감과 장학직이 먼저 학교를 순회하며 수업하는 시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교육감이 교장·교감에게 수업을 하라고 요구하기에 앞서 교장·교감을 격려·성원해 사기를 진작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기대한다.

<안양옥 | 한국교총 회장·서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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