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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경기 김포 해병대 2사단의 철거된 애기봉 등탑 자리에 성탄트리를 재설치하고 점등행사를 하겠다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요청을 승인한 것을 두고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등탑 재설치에 찬성하는 쪽은 군 장병과 북녘 동포들에게 성탄절의 의미를 알리고 평화를 기원하는 일에 북한 정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평화를 기원하는 성탄트리가 오히려 남북 긴장과 갈등을 조장하면서 결국 전방 지역 장병과 주민들만 힘들게 할 뿐이라는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 성탄절은 그저 종교 축제, 정치적인 해석은 ‘비정상’

지난 10월 말쯤 경기 김포시에 있는 애기봉 등탑이 1971년 세워진 이후 43년 만에 군부대에 의하여 철거됐다. 너무 뜻밖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등탑은 지난 43년간 그 자리에 ‘평화의 상징’으로 서 있었고, 노무현 정권 시절 전방의 성탄트리들이 모두 철거될 위기 상황에서도 그대로 남아 그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를 국민의 공감대, 특히 종교계(기독교와 불교계가 번갈아 사용함)와 상의도 없이, 갑자기 허물어 버린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중에 시설물이 노후해서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래도 너무 경솔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요청으로 비록 작아지고 낮아졌지만, 다시 등탑이 세워져 오는 23일부터 불을 밝힌다고 한다. 그런데 반대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 이유는 당장 북한이 반발하고 있고, 북한의 위협으로 해당 지역 주민들의 안전이 우려되고 있으며, 가뜩이나 꼬인 남북관계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염려 때문이다.

성탄절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기본적으로 성탄절은 세계적인 종교 기념일이다. 즉 하나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날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란 말은 ‘그리스도께 예배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 성탄절은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누구나 인정하는 종교 축제일이다. 따라서 애기봉에 성탄트리를 세우는 것은 군 장병들에게 성탄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고, 북녘 너머에 살고 있는 동포들에게도 성탄의 기쁨을 통해 평화와 사랑이 넘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43년 동안 성탄트리를 세웠던 곳에 다시 성탄트리를 세우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협박을 우려하지만, 지난 43년 동안 아무 일이 없었다.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북한의 선동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이 등탑이 북한 체제를 부정하거나 소멸을 선동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북한 당국도 표면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그래서 종교인의 교류도 있고, 종교단체에서 지원도 하고 있다. 과거 북한이 연평해전이나 연평도 민간 지역 포격사건을 일으키기 전에는 한국의 기독교가 인도적, 민간 차원에서 수천억원의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세계적인 종교 축제인 성탄절을 맞아 잠시라도 성탄트리에 불을 밝히는 것을 문제 삼는다면 종교를 억압하거나 ‘종교의 자유’라는 말이 거짓이거나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북한 당국은 우리와 평화협상을 말하고, 세계 앞에 핵무기 개발을 포기한다고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장거리 로켓을 개발해 시험 발사하고, 여러 차례의 핵실험 등 평화와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여 왔다. 그런 북한이 애기봉 등탑 점등에 대해 평화를 해치는 것으로 시비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북한이 협박을 통해 얻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 사회도 좀 더 의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성탄트리’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치적인 것도,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탄생의 의미를 되새기며,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고 남북이 평화적 통일을 이루기를 바라는 염원인 것이다.

평화를 상징하는 성탄트리 불빛을 보고, 전쟁이나 살의(殺意)를 느끼거나 이를 조장하는 말을 한다면, 그것은 그렇게 느끼는 사람의 문제라고 본다. 또 종교에 대한 몰이해에서 오는 억지다. 정부가 애기봉 등탑을 세우는 것을 허용한 것도 ‘종교의 자유’에 대한 보장을 확실하게 보여준 것이다. 이제 애기봉 등탑 불빛에 우리 모두의 희망을 모아 보자.

<유만석 목사 | 한국교회언론회 대표>


지난 22일 오후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의 애기봉 등탑에 기독교시민단체들이 설치한 성탄절 조명이 점등되고 있다. _ 연합뉴스



■ 성탄트리 점등 순간, 군 비상경계 돌입 ‘비극적 현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12월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연합군과 대치하고 있던 독일군 참호 속에서 한 병사가 크리스마스 캐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나지막이 부르며 작은 성탄트리를 손에 들고 걸어나왔다. 처음엔 깜짝 놀랐던 연합군 병사들도 이내 찬송가 ‘참 반가운 신도여’를 부르며 참호에서 나와 마주 걸었다. 이들은 서로 가족 사진을 돌려보고 축구경기까지 벌였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마스 휴전’이다. 이 병사들은 후일 군사재판에 회부되기도 했지만, 크리스마스가 낳은 기적이었다. ‘크리스마스 휴전’ 100주년이 되는 올해 한반도에서도 남과 북의 병사들이 가족 사진을 돌려보며 축구경기를 벌이는 기적이 일어날까? 불행하게도 2014년 한반도의 애기봉에 세워진 9m짜리 거대한 성탄트리는 크리스마스 휴전은커녕 군사적 도발과 무력충돌을 부르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지난 10월 해병대는 애기봉 등탑을 철거했다. 너무 낡아 안전상 문제로 철거가 불가피했다는 게 군 설명이었지만, 엉뚱하게도 대북 저자세 시비가 일었다. 북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대북 심리전 상징인 등탑을 철거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그러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군을 질책했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애기봉 전망대에 성탄트리를 다시 세워 점등행사를 열겠다고 나섰다. 지난해 등탑 점등을 불허했던 국방부는 한기총의 요청을 받아들여 애기봉에 임시 성탄트리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즉시 반발했다. 북한은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북남 사이 대결과 긴장을 더욱 격화시키고 전쟁위험마저 몰아오는 엄중한 도발소동”이자 “반공화국 심리모략전의 일환”이라며 “초강경대응전의 징벌세례를 받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한기총이 애기봉 성탄트리를 통해 북한 주민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 탄생의 복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기총 의도와는 달리 북한이 자기 체제를 겨냥한 고도의 심리전으로 여기고 있다는 게 문제다. 대북전단과 마찬가지로 이른바 ‘도발 원점’인 애기봉 트리를 향해 얼마든지 총격이나 포격을 가할 수 있다.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 우리 군은 애기봉 성탄트리 점등행사에 맞추어 비상경계태세에 돌입하고, 크리스마스는 물론 트리의 불빛이 꺼질 때까지 외출외박 금지, 비상근무, 5분대기의 긴장 상태로 낮과 밤을 지새우게 될 것이다. 애기봉 성탄트리는 최전방 군 장병들의 종교활동을 침해할지도 모른다.

애기봉이 위치한 김포 시민들 역시 언제 날아들지 모를 총탄에 가슴을 졸이며 성탄절과 연말연시를 보내야 한다. 수십억원의 예산을 들인 평화공원 조성사업도 물거품이 되고, 관광객 50만명 목표 달성은커녕 현재의 관광객마저도 발길을 돌릴 것이다. 이쯤에만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총탄 몇발 주고받는 데서 끝나지 않고 국지전이나 전면전으로 비화한다면 어쩔 것인가.

예수의 사랑과 평화의 상징이 되어야 할 성탄트리가 애기봉에 세워지면서 군사적 긴장과 대결의 상징이 되고 있다. 이것이 한반도의 비극적 현실이다. 동독의 마지막 총리 로타 드 메지에르는 “상호존중 없이는 동·서독의 미래도 없다”고 말했다. 이제 남과 북도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통해 상생의 미래를 논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보수층에 기댄 대북 강경정책에서 벗어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작동시키기 위한 일대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애기봉 성탄트리는 그 첫걸음이 될 수 있다.

100년 전 벨기에 서부전선에서 일어났던 ‘크리스마스 휴전’의 기적이 2014년 한반도 애기봉에서 멋진 역설로 재현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진성준 |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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