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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안전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는 국민안전처를 지난달 19일 출범했다. 하지만 안전처 출범 직전 안전행정부(현 행정자치부)가 국가직 고위공무원을 광역 시·도 안전담당 실·국장으로 파견하는 내용의 ‘지방자치단체의 행정기구와 정원기준 등에 관한 규정 등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정부는 재난대응을 강화하기 위해 안전처와의 연결고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면 지방자치단체들은 전형적인 고위직 ‘자리늘리기’라며 지역 현장을 잘 아는 지방공무원이 안전담당 실·국장을 맡아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 중앙·지방 간 협업, 체계적인 재난관리 위해 필수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국민의 기대 속에 출범한 국민안전처는 통합 재난대응시스템 구축과 재난현장의 대응역량 강화를 통해 ‘안전한 대한민국, 행복한 국민’을 실현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재난현장 최일선에서 대응 및 복구 등을 총괄·조정하는 지자체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데 최근 발생하는 재난은 대형화·특수화·복합화 양상을 나타내는 등 기존의 정형화된 재난과는 다른 특성을 갖고 있어 지자체의 역량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에 정부에서는 지자체의 재난대응역량을 강화하고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재난관리를 위해 시·도에 재난안전 전담 실·국을 설치하고 실·국장을 국가공무원으로 임명하는 지방재난안전조직 개편을 추진 중이다. 이는 몇 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먼저, 국가와 지방정부 간 견고한 재난관리 협업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지자체가 재난관리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으나, 대규모 재난의 경우에는 중앙정부의 협조와 지원이 절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직 실·국장은 중앙의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국가 재난대응자원의 신속한 활용, 재난정보의 전달·공유 등을 통해 지방정부를 지원하는 가교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중앙과 지방의 재난안전정책이 상호 조화를 이루고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소통창구 역할을 할 수 있다.

다음은, 효율적인 재난관리 측면에서도 국가공무원의 임명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두 개 이상의 시·도에 걸쳐 발생하는 대규모 재난의 경우에는 한정된 인력과 재원으로 인해 재난대응자원 투입, 대응지역 등에 대한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한다. 따라서 장기간 재난안전분야의 전문성과 경험이 풍부한 공무원이 중앙, 지방, 유관기관 등 기관 간 역할·책임,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 활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재난관리를 효율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또한 중앙과 지방 간 활발한 인사교류를 통해 재난안전분야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인사교류는 중앙에서 일방향으로 지자체에 국가공무원을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대응 경험이 풍부한 지자체 공무원도 중앙부처에서 근무하게 되는 등 쌍방향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이를 통해 중앙과 지방의 정책을 상호 경험하게 되어 내실있는 정책을 수립할 수 있고, 조직도 활력을 얻을 수 있다.

일부에서 지자체의 자치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으나, 지자체장의 지휘·감독하에 직무를 수행하게 되므로 지자체의 자치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지금도 국가공무원인 시·도의 부단체장, 기획관리실장, 소방본부장 등은 각 지자체에서 성실하게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일관성 있고 지속적인 재난안전 업무를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재난안전관리의 중요성에 비해 지자체 공무원들이 재난안전관리 업무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아, 결과적으로 우수인력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재난안전은 경제, 문화 등 다른 분야에 비해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재원의 투자도 소극적인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난관리정책을 효과적으로 유지하고, 일관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분명한 임무와 역할을 부여받은 국가직 공무원을 임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

<이병철 | 국민안전처 안전기획과장>


박인용 초대 국민안전처 장관 후보자(오른쪽)가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 해당 지역 재난 대응 경험자가 현장 지휘 맡아야

정부는 지난달 19일 재난안전 컨트롤타워로 국무총리 소속 국민안전처를 출범시켰다. 또 지난달 18일에는 시·도의 실·국 설치 기준을 변경하는 ‘지방자치단체 행정기구 및 정원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광역시의 실·국 설치기준을 확대한 규정 개정안의 10월30일 입법예고 사항을 변경한 것으로, 시·도에 재난안전 담당 실·국을 2015년 5월30일까지 설치 완료토록 하고 담당 실·국장은 국가공무원으로 임명하겠다는 내용이다. 정부의 정책방향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점을 제기할 수 있다. 첫째, 재난대응과 관련한 국가 역할에 대한 인식의 문제이다. 행정체계상 재난안전 담당 실·국장은 현장지휘자가 된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많은 재난 전문가가 지적한 내용이 9·11사태 당시 현장지휘자가 바로 일선 소방서장이었던 미국의 재난안전대응 체계였다. 재난대응의 현장지휘자는 그 지역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하며, 중앙정부는 현장지휘자의 요구에 따라 필요한 물자와 인력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의 재난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면 울산과 같이 석유화학 시설이 집중된 경우 유독가스·화학약품 유출과 폭발성 화재가 발생하게 된다. 부산과 같은 경우는 태풍 등 강풍에 의한 항만시설의 파괴나 해일에 의한 침수 피해 등이 발생하게 되며, 강원도와 같은 산림지역은 산불피해가 가장 우려된다. 따라서 지역재난상황 대응을 위해서는 해당 지역에서 오랫동안 재난대응을 한 경험자가 현장지휘자가 돼야 하며, 이는 재난대응 선진국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만약 국가직으로 임명할 경우 해당 지역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며, 세월호 대응에서 나타나듯이 어쩌면 수영을 할 줄 모르는 해경간부처럼 화재현장 경험이 없는 관료가 재난안전 담당 실·국장이 될 개연성도 있다.

둘째, 재난대응 측면 이외에도 지방자치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는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조직구성은 원칙적으로는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모든 지방자치 선진국의 사례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지방자치단체의 기구·조직·공무원 보수 등을 지방 자율에 맡기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이 모든 것을 중앙정부가 관리하고 있다. 그동안 인건비를 늘리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적 특성에 따른 행정기구 구성을 위해 실·국 수의 규제를 완화해 줄 것을 수차례 건의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방의 요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갑자기 시·도에 재난안전국을 신설하고 담당 실·국장을 국가공무원으로 임명하겠다는 것은 지방자치권의 심각한 침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중앙정부가 국민의 재난안전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것도 신뢰하기 어렵다. 현재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최일선에서 지키고 있는 소방관에 투입되는 예산이 2014년 기준 총 3조2000억원인데, 이 중 95% 이상인 3조400억원을 광역자치단체가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담배세제 개편 과정에서 시·도는 약 1조원 규모의 소방안전세 도입을 건의했으나 정부의 반대로 겨우 3000억원 내외의 소방교부세를 신설하는 데 그쳤다. 2015년 이후 충원되는 소방인력 7000명에 대한 인건비 4000억원이 추가로 필요한 시점이기에 소방안전에 대한 정부약속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앙정부는 아마도 재난안전 실·국장의 국가직 임명 논리로 효과적인 물적·인적 동원체계를 주장할 것이다. 이는 재난상황에서도 지방직과 국가직의 차이를 두겠다는 의지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지방자치가 20여년이 지났음에도 지방의 역량을 강화하는 길을 모두 막아 놓고 중앙정부 고위관료를 지방에 내려보내는 20세기식 행정으로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어렵다.

현재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인 소방관들이 주민의 안전을 지키고 있는 만큼 재난안전 실·국장의 국가직 임명을 철회하고, 지방자치단체 자치조직권에 대한 규제완화 및 재정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지역주민의 안전, 나아가 국민안전을 위한 가장 바람직한 정책방향일 것이다.

<김홍환 |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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