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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논의 중인 ‘노후 거점 산업단지 구조고도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놓고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특별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쪽은 노후화된 산업단지를 고부가가치 산업 위주로 체질을 개선하면 경쟁력을 높이고 노동자들의 삶도 나아지는 연쇄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하는 쪽에서는 특별법 개정안에 따라 산업단지 입지규제를 풀게 되면 대형 백화점이나 호텔, 주거시설 등이 공단에 들어오게 되고, 제조업체들은 결국 문을 닫고 쫓겨나게 될 것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 노후 거점단지 시설 개선, 우수한 인재 유치해야

산업단지는 1964년 구로공단(지금의 서울디지털단지)이 처음 지정된 이후 지금까지 50년간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지금도 산업단지에는 약 7만개 기업에서 200만명의 근로자가 근무하고 있고, 국내 제조업 생산의 68%, 수출의 80%를 차지하는 등 국가와 지역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20년 이상 된 산업단지는 기반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고 노후화가 심각해 산업재해에도 취약하다. 그래서 떠나는 기업은 자꾸 늘고 새로운 기업을 유치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더욱이 높은 청년실업률에도 불구하고 산업단지의 열악한 근무환경 및 정주여건 때문에 청년들이 산업단지 내 취업을 기피해 입주기업들은 인력 수급에 애를 먹고 있다. 과거에는 산업단지가 단순히 생산만 하는 지역이었지만 이제는 문화가 있는 일자리,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일자리, 가사와 보육을 병행할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하면 우수한 인재를 끌어들일 수 없게 됐다.

이러한 노후 산업단지의 현실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도 2009년부터 반월시화, 남동, 구미, 익산의 4개 시범단지에서 구조고도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1000개 이상의 산업단지를 대상으로 하는 현행 구조고도화 사업은 정부의 역량과 재정이 분산돼 정책 효과가 미미하고, 국토교통부의 재생 사업과 별개로 추진되는 등 부처 간 칸막이로 인해 한계가 뚜렷하다.

또 구조고도화 사업은 산업단지 전체 면적의 10% 미만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토지수용도 허용되지 않는 등 사업 추진 절차가 복잡하다. 따라서 산업단지 전체에 대한 관리·지원을 담고 있는 현행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산집법)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도록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 노후 산업단지가 있는 지역 국회의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이에 따라 올해 5월 노후 산업단지 중 지역별 거점을 선정해 범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체계적으로 집중 육성할 수 있도록 하는 ‘노후 거점산업단지 구조고도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 제정안이 발의되었다. 그런데 일부 조항에 대해 부처 간 이견이 존재해 자칫하면 특별법 제정이 늦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산업통상자원위원장으로서 문제의 조항들을 수정 보완해 별도의 특별법을 발의한 것이다.

일부에서 특별법이 제정되면 “백화점·호텔·오피스텔 등 상업시설이 마구잡이로 허용되고 개발차익을 노린 제조업은 유통·서비스, 부동산임대업 등으로 바뀌고 제조업 공장은 연쇄적으로 문을 닫아 대량 실직 사태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그동안 추진해 온 구조고도화 사업이 민간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백화점·호텔 등 수익성 위주로 추진되었기 때문에 생긴 우려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노후 산업단지에서 수익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일부 수도권에서 가능할지 몰라도 지방에 있는 산업단지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특별법은 산업단지 내 폐업 또는 미활용 유휴 부지를 사업 대상으로 보육·문화·복지·안전을 위한 공공시설을 확충하는 데 목적이 있다. 애초부터 수익성보다는 공공성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법을 제정해야 하는 것이다.

또 일자리 감소에 대한 근로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보완장치로, 민원 발생 우려가 있는 사업에 대해서는 지자체·이해관계자 등이 별도로 협의하는 절차를 두도록 하고 있다. 특별법을 통해 전국의 노후 거점산업단지를 매력적인 일터로 탈바꿈시키고,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한다면 지역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 기대한다.

<김동철 |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장>


1967년 갓 완공된 구로공단 전경(왼쪽)과 1970~1980년대 경공업 수출공단 시절을 거쳐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탈바꿈한 현재의 모습(오른쪽). (출처 : 경향DB)



■ 땅값 폭등… 대다수 노동자·중소 상인에겐 ‘재앙’

‘산업단지 구조고도화 사업’은 노후화된 산업단지의 체질을 고부가가치 산업 위주로 개선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을 말한다. 이를 통해 산업단지의 경쟁력이 향상되고 단지 내 업체의 생산력과 노동자들의 삶도 나아질 것이라고 한다. 이 구조고도화 사업의 모범사례로 서울디지털밸리(옛 구로공단)를 많이 꼽는다. 구로공단이 있던 자리에 가보면 지금은 대형 아웃렛 등 세련된 건물들이 즐비하고, 깨끗한 외관의 아파트형 공장들이 들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구로공단에서 삶을 일구던 수많은 노동자들과 중소 상인들,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대다수 노동자들과 중소 상인들은 구조고도화 사업이 실현되자 구로공단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구조고도화 사업 후 구로공단의 땅값이 큰 폭으로 뛰었다. 많은 제조업체가 오르는 부동산 가격을 견디지 못해 지방으로 이전하거나 폐업했고, 노동자들은 업체를 따라 지방으로 이주하거나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제조업체가 떠난 자리는 지식산업센터라는 그럴듯한 이름의 아파트형 공장에 입주한 업체들이 대신했다. 아파트형 공장은 공간, 소음 등의 문제로 제조업체가 입주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다. 자연히 작은 콜센터, 인력파견 업체, 간단한 설비만을 갖춘 업체들이 입주했다. 이런 영세업체에서 노동자들은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불안정한 고용상태로 일할 수밖에 없다. 서울디지털밸리 노동자들은 전국 평균임금의 80%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으며 많은 노동시간에 시달리고 있다.

대형 아웃렛 등이 들어선 자리는 공장은 물론 중소 상인과 노동자들이 삶의 터전을 일구는 곳이었다. 과연 현재의 모습이 공단 내 업체들의 생산력을 높이고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한다는 구조고도화 사업의 목적에 걸맞은 것일까. 아니라면 애초 내걸었던 것은 눈속임용이고 상업자본과 투기자본의 이익을 만드는 것이 실제 목적이었을까. 마치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미명 아래 세입자들을 내쫓고 부동산 투기세력의 배만 불린 뉴타운 사업과 많이 닮아 있지 않은가.

최근 국회는 ‘노후 거점산업단지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법안’을 심의하고 있다. 산업단지의 입지 규제를 풀어 복합용도로 개발한다는 것이다. 복합용도에 들어서는 것은 대형 백화점, 호텔, 주거시설 등 제한이 없다. 게다가 시범사업으로 추진 중인 구조고도화 사업의 근거가 된 ‘산업집적 활성화 및 공장 설립에 관한 법률’(산집법) 등이 정한 규제마저도 적용받지 않고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별법안은 구조고도화 사업 대상으로 ‘그 밖의 노후 거점산업단지 구조고도화를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업’이라고 규정해 사업 대상을 넓혀 놓았고, 특례규정을 두어 산집법 등의 적용을 배제해 관련 법들이 정한 제한을 받지 않고 구조고도화 사업을 전국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일까. 구조고도화 시범 사업단지로 지정된 경북 구미공단의 반도체 제조업체 KEC는 구조고도화 사업을 홍보하면서 ‘제조업 탈피’ ‘관광소비도시화’라는 문구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다. 제조업체 스스로 제조업 탈피가 구미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하며 생산이 아닌 관광소비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창하고 있다.

구미지역의 평범한 시민 5만여명이 구조고도화 사업에 반대하는 서명에 참가했다. 공단을 관광소비도시로 만들면 문을 닫는 제조업체가 생기고 노동자들은 모두 쫓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특별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서울디지털단지 사례보다 더 재앙적인 결과가 자신들에게 닥칠 것이라는 점을 체감한 것이다.

특별법안 발의자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노동자를 비롯한 우리네 평범한 사람들의 대변자인가. 아니면 산업용 부지를 담보로 횡재를 노리는 기업 및 투기세력의 대변자인가. 대다수 사람들은 법안 때문에 생존이 휘청거릴 재앙을 맞게 된다. 제조업 살리기가 아니라 거대 자본 및 투기세력의 이익만을 채워 줄 특별법안을 당장 철회하길 바란다.

<김유정 | 전국금속노동조합 법률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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