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공개됐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이냐, 공공기록물이냐 등 법리 해석을 놓고 따져 묻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하지만 초미의 관심사는 새누리당 일각에서 주장해온 것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과연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한다는 말을 했는지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지금까지 공개된 내용을 능가하는 ‘폭탄발언’은 없었다.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쇼가 너무 싱겁게 끝났다. 회의록을 아무리 읽어봐도 새누리당이 평소에 제기해온 의혹에 맞는 근거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서상기 의원을 비롯해 새누리당이 의혹을 제기했던 문제의 부분을 보더라도, 당시 김정일은 NLL과 관련해서 실무협상을 진행한 뒤에 “과거에 정해져 있는 것, 그것은 그때 가서 할 문제”라고 밝히고 있다. 두 정상이 NLL 문제에 대한 합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역설적으로 이 문구는 노 전 대통령의 ‘평화협력지대’ 제안을 김정일이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일부에서 서해안을 평화공동경제수역으로 선포하는 것 자체가 평소에 NLL보다 남쪽으로 해상경계선을 설정하고 남측에 종용해온 북측의 입장을 수용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회의록 전문을 읽어보면 북측의 NLL 무효화 논리를 ‘평화협력지대’로 피해가면서 노 전 대통령이 난색을 표하는 김정일을 설득해 해주개발권에 대한 허가를 얻어낸 것으로 밝혀진다. 체제 보위를 국가의 최우선 순위에 놓고있는 북한의 입장에서 군사요충지인 해주를 내준다는 것은 호락호락한 결심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당시 뉴욕타임스는 관련 보도에서 “북측이 남측에 조심스럽지만 중요한 양보를 했다”고 표현한 것이다.
NLL을 포기했다는 주장은 억측에 불과했다. 더 나아가 국정원 발췌본이 애초에 제시했던 내용과 완전히 맥락이 다른 말들도 많았다. 이미 보도되었지만, “보고하게 해주셔서”라는 표현은 김정일에게 보고를 했다는 뜻이 아니라, 김계관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것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치하하는 내용이었다. 저자세 외교로 일관했다는 주장도 확실한 근거가 없다. 일부 거친 표현이 없지 않았지만, 오히려 서둘러 회담을 끝내려는 김정일을 집요하게 설득해 남측 기업의 이익을 관철시키고자 노력하는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은 새누리당이 포장하고 있는 ‘종북좌파’의 이미지와 한참 거리가 멀었다. 회의록 공개 파문을 보도한 뉴욕타임스가 이런 노 전 대통령을 지칭해서 “남북통일을 위해 노력한 자유주의적 대통령의 이미지”라고 규정한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그런데 지금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의혹에 따르면, 새누리당은 지난 대선 때 이미 회의록을 확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권영세 주중대사의 녹취록을 공개한 박범계 의원의 증언이나 김무성 의원의 발언에서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런 주장이 사실이라면 상황은 점입가경이다. 새누리당이 이미 회의록을 열람하고도 지속적으로 NLL 관련 발언을 왜곡해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언어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가 아니라면, 회의록 전체를 검토하지 않고 누군가 악의적으로 정리해준 내용만을 믿고 설레발을 쳤다고 볼 수밖에 없다.
내가 보기에 이 사안이 더 심각한 것처럼 보인다. 회의록을 무단으로 공개한 것이야 남재준 국정원장의 돌발행동이었다고 무마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미 회의록 내용을 알고도 이것을 공개하자고 주장한 새누리당 의원들의 태도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 명 이상이 동의하면 거짓도 참이 된다는 고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지난 윤창중 사건에서도 잘 드러났지만, 이 상황이야말로 박근혜 정부를 뒷받침하고 있는 인적 구성이 ‘오합지졸’에 가깝다는 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세상에 귀 막고 자기들끼리 공유한 내용을 사실이라고 믿는 어리석음을 이번 해프닝에서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국정원이 자기 살자고 국익에 아랑곳하지 않고 중요한 외교문서를 멋대로 공개한 것이나, 거기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면서 자칭 ‘보수당’인 새누리당이 동조했다는 것에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정보공개는 위키리크스 같은 좌파들이나 하는 일인데, 한국은 아예 국가기관이 앞장서 실천하고 있으니 말이다.
새누리당과 국정원이 이렇게 무리수를 둔 것은 회의록 내용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회의록에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명확한 근거들은 없었다. 누구 잘못인지 책임자들끼리 따져봐야 할 것이다. 일련의 상황은 과거 윤창중 사건처럼 폭주하는 기관차를 멈춰 세울 수 있는 브레이크가 박근혜 정부에 결여된 것 같다는 의구심을 증폭시킨다. 이런 정부에 향후 4년 반을 맡겨야 한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서서히 불안해하고 있다.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NLL을 포기할 수 없다는 주장은 맞다. 그러나 그 국민들이 박근혜 정부를 포기할 수는 있다. 이것이 거부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원칙이다.
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지난 칼럼===== > 이택광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항과 폭력 사이 (0) | 2013.07.26 |
---|---|
한국 보수정권의 시대착오적 ‘분리주의’ (1) | 2013.07.12 |
복기가 필요한 민주주의의 역설 (0) | 2013.06.14 |
보수의 위기 드러낸 ‘일베’ (0) | 2013.05.31 |
‘문화차이’라는 한국의 보수 (0) | 2013.05.20 |